▲ 각 생물종들의 모유 내 단백질 함량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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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흐릿흐릿해지고 등에 자꾸만 식은땀이 나고 허해지는 것 같고 머리가 핑핑 돌아 어지러워질 때 한번씩 고기를 먹어주면 눈이 번쩍 뜨이고 생기가 돈다는 이야기를, 나 또한 주변 가까운 어른들께 적잖이 듣고 자랐다.
물론 지금까지도 어쩌면 이러한 현상들은 너무도 편협한 채식식단으로 오랜 날을 지내왔거나 어쩌면 고기에 대해 맘 속부터 가져왔던 환상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앞선 글에서 석가모니 예를 들기도 했지만 불완전한 채식식단으로 인한 마음적·육체적 영양부족이 우유나 달걀 같은 동물성 단백질 과다 섭취로 이어질 수 있고, 이것은 오히려 체내의 철분부족을 가져와 다시금 고기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한다는 논리는 참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옛 시절을 살아오신 어른들은 아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이나 높은 집안에서나 즐겨 접할 수 있었던 육식문화를 어떤 신분상승의 하나로, 가난과 굶주림을 벗는 이상적인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맘 속 한 편에 늘 자리해 두고 염원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헐벗고 굶주렸던 일반 사람들이 먹고 살 수밖에 없었던 콩죽이나 여타 잡곡 그리고 김치나 된장 같은 발효식품의 위대함을 과학적으로 평가받지 못했던 시절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선조들이 생일 때나 구경할 수 있었던 흰 쌀밥조차도 지금에 와서 득보단 실이 많은, 거부해야 할 ‘삼백’(흰 쌀밥, 흰 밀가루, 흰 설탕)의 하나로 자리해 있다.
실제로 그때 당시의 서민들의 먹는 문화는 생각보다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참으로 웰빙을 추구하고 몸에 맞는, 몸을 위한, 그야말로 이치를 헤아리는 그러한 건강식단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요리의 실제 의미는 세상이치를 헤아리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선조들의 식단이 그토록 건강밥상이었음에도 헐벗고 굶주렸던 이유는 바로 그 식단의 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바로 수확하는 대부분의 농작물을 관아에 넘기거나 지주에게 몽땅 바쳐야 하는 ‘악법’에 있었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가난의 시절을 겪어 오신 어른들의 이따금씩의 ‘고기예찬’은 필자를 쓸쓸하게 한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 ‘고기 먹는 일’은 따지고 보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유’, ‘누릴 수 있는 여유’, ‘가지고 있다는 의미’, ‘남들처럼 행복할 수 있는 권리’의 의미로 여겨졌을 수 있는 일이다.
앞선 글에서 사람이 굳이 모유 시기 이후에도 다른 동물의, 그것도 성격과 질이 다른 젖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논한 것에 대해 조금 더 보충의 의미로 위에 참조할 만한 비교표를 적어놓았다.
미국의 영양학자 중 특별회원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수잔 하발라(suzanne havala, 저서「Being vegetarian for dummie」)는 그 역시 우유를 완전제품으로 강력한 세뇌를 당한 보통의 미국인에 불과했었다고 한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스스로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젖(밀크, 모유)은 종(種)에 따라 구분을 해야 한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종만을 위하여 젖을 생산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소젖을 마시기 시작한 것일까? 성장한 소도 소젖을 마시지 않는데 말이다. 왜 소는 계속해서 소젖을 마시지 않으며 인간은 왜 개젖이나 곰젖은 마시지 않는 것일까?"
수잔 하발라가 습득을 강요받았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완전식품’이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 정의는 ‘우유 따위와 같이, 건강상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단독 식품’이다. 그야말로 그것은 완전한, 적어도 그거 하나면 족할 것 같은 아주 흡족한 기분을 갖게 하는 참으로 바람직할 것 같은 식품! 바로 모두가 들어온 바와 같이 ‘우유와 달걀’이 당당히 거기에 속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제 몇 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왜 동물성 단백질이 그토록 우리 마음 속에 필수불가결한 식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어떻게 해서 그러한 당위성을 입증 받았을까? 또는 왜 완전한 식품으로 칭송하는 음식이 식물성이 아닌 동물성인가?
식물성 단백질이 동물성 단백질보다 왠지 한 등급 아래일 것만 같고 혹은 이 둘의 영양분이 같다고 치더라도 식물 쪽은 무언가 부족한 듯 보이는 이유(현재까지도 동물성 단백질을 양질의 고급 단백질이라 하고 식물성 단백질을 낮은 질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에는 아래와 같은 수십 년 전의 실험 결과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존 로빈스는 이야기한다.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 단백질보다 더 뛰어나다는 결론을 도출시켜준 중요한 역사적 실험결과가 하나 있었다.
1914년 오스본과 멘델의 단백질 실험이 그것이었는데, 그들은 생쥐의 실험을 통해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 생쥐가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한 생쥐보다 더 빨리 자란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해냈던 것이다. 다소 단순하고 간단명료했던 이 실험은 이후로 동물성 단백질을 식물성 단백질보다 우위의 위치인 A급 단백질로 놓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1940년 좀더 세분화한 실험으로 이어졌고 여기에서, 실험의 대상이 된 생쥐의 성장에 필요한 필수적인 아미노산 10가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그 물질들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생쥐성장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이후의 계속적인 실험을 통해 생쥐의 성장을 가장 촉진시켜주는 이상적인 아미노산 배합비율을 산출해 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단백질이 바로 동물성 단백질, 그 중에서도 특히 ‘달걀’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의 유형과 비슷했다는 것이다.(ROBIN HUR, FOOD REFORM: OUR DESPERATE NEED, HEIDELBERG PUBLISHERS, 1975, PAGE 2,95-6)
이 실험결과 주위로 점차 모든 가축동물 사육연맹단체의 이해와 거대한 자본이 모여들게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 이는 곧 거대한 ‘완전식품’의 논리를 도출해내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그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단체나 사람들은 바로 ‘미친’ 이로 취급받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지금까지도 소수 양심가들의 주장은 그렇게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까다롭거나 좀 독특하고 별난 논리주의자’ 쯤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임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우리는 사람이 직접 먹고 마시는 중요한 일에 대해, 생쥐를 가지고 한 실험결과를 토대로 맹신하고 있는가? 지금까지도 그 이론은 왜 대세인 것일까? 거기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본의 힘이 작용을 하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 정녕 식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단백질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좋은가?
그보다 우리는 동물성 단백질의 과잉 포장된 이론에 여태껏 몸을 맡기고 혹사시켜 오진 않았을까? 도대체 요즘 들어 그토록 부르짖는 단백질은 그럼 우리 몸에서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모든 열량의 얼마를 단백질로 채워야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것일까?
두 번째로 단백질은 우리 몸에 어떻게 필요하며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필자도 헬스를 즐긴다. 공연일정으로 집을 떠나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늘 꾸준히 운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가 원하는 것은 스스로가 필요한 만큼 불편 없이 움직여주는 내게 알맞은 신체이다. 간혹 사진에 걸린 우람한 체형의 보디빌더들을 보며 감탄도 하지만 필자는 지금의 몸에 큰 불만이 없다.
그런데 당연히 헬스장을 오가면서 자주 듣게 되고 접하게 되는 것이 ‘단백질’에 관한 것이다. 보디빌더들이나 보디빌더를 꿈꾸는 사람들 대부분은 보충제라는 것에 관심이 많다. 탄수화물 보충제나 단백질 보충제 같은 것 말이다. 액기스로 많은 양질의 단백질을 알약으로 보충할 수 있어 선호의 대상이기도 하다.
필자는 채식을 하면서도 이 부분, 바로 단백질에 관한 부분은 온전히 주관적 자아를 실현했다고는 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채식인들도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으니 식물성 단백질이라도 많은 양을 넉넉하고 충분히 섭취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늘 필자를 따라다녔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큰 관심사도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공급을 최상으로 하라는 것이 명제이고 간혹 누구누구는 하루에 달걀 흰자 몇십 개를 먹는다더라 하는 소문을 쉽사리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보디빌더 혹은 체력소모를 많이 하는 운동선수들과 같은 사람들은 과다한 단백질이 필요한 것일까? 튼튼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그토록 많이 필요한 것인가? 단백질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단백질은 실제 효소교체, 혈액세포 재생, 머리카락이나 손톱의 자람, 항체를 생산하는 등의 특정과제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헬스장에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동물성 단백질이 근육생성에 중요한 벽돌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단백질은 정말 몸을 움직이거나 운동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배우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그의 책 「남자들을 위한 아놀드의 보디빌딩」에서 “좋은 식사의 기본은, 내 공식에 따르면 몸무게 1킬로그램 당 1그램의 단백질이면 충분하다”며 보디빌딩을 위해서 심지어 총열량의 70%까지 단백질 섭취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아놀드의 체험에 인한 공식대로라면 건장한 80킬로그램의 남자에게 필요한 하루 단백질의 양은 많아야 고작 80그램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시간이 되신다면 이것을 하루평균 섭취 칼로리에 비교해서 수치계산을 한번 해보시라.
채식주의자이면서 운동선수인 사람은 전체 인구에 비교했을 때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채식주의자이면서 운동선수인 소수의 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놀랍도록 대단하다.
아놀드 이외에도 학자 겸 운동선수인 데이브 스콧은 그 누구도 두 번 이상 우승기록을 갖지 못했다는 ‘하와이 철인 삼종경기’에서 무려 4번이나 우승을 했고 이외에도 완전채식주의자이면서 1일3종 경기에서 세계기록을 갱신한 식스토 리나레스, 원거리 달리기 올림픽 메달을 9개나 땄던 파보 누르미, 400미터 장애물 8년 연속 우승의 에드윈 모세, 2세부터 채식을 해온 자유형 역사상 최초기록 보유자가 된 머레이 로즈, 채식가이면서 보디빌더였던 안드레아스 칼링 등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채식주의자 스포츠맨들이 있다. 스포츠맨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 과학자 등의 인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가수 박창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