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승부사’ 박종환(75) 감독이 프로축구 성남시민축구단(가칭) 초대 사령탑으로 임명됐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3일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시청 청사에서 박 감독에게 감독 임명장을 수여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다.
경기 후 목욕하고 식사하면서 소주 한 잔하던 조기축구선수 다시 감독에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일화 천마팀 사령탑을 맡아 프로축구 리그 최초 3연패(1993~1995년)를 달성했던 박종환 감독은 이로써 17년 만에 친정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유지재단(통일재단)이 운영하던 성남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은 성남시가 인수해 내년부터 시민구단으로 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에 참가한다.
와글와글 합창단박종환 감독이 올해 출범한 성남시민프로축구단 초대감독에 선임됐다. 박 감독은 23일 성남시청에서 진행된 공식 취임식을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4강 신화를 이끈 지도자로 성남시민축구단의 전신인 성남일화의 초대감독을 맡은바 있다. 성남시청제공
박종환 감독은 1983년 멕시코세계선수권 ‘4강 신화’ 등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도자다. 특유의 스파르타식 훈련과 강한 카리스마로 ‘독사’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대표팀 감독만 5번을 지냈다. 일화의 3연속 우승을 이끈 그는 2006년 11월 대구FC 사령탑에서 물러나며 현장을 떠났다.
‘멕시코 4강’ ‘프로축구 리그 최초 3연패’ 신화 주인공
7년 만에 현직 감독으로 복귀한 박종환 감독은 23일 임명장을 받은 자리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감독직을 수락했다”며 “성남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확실하고 모범적인 팀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는 똑같다”며 “내가 오랜만에 나와서 구식축구를 한다고 하는데 전술은 예전과 큰 변화가 없다. 그동안 축구를 자주 보고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임명장 수여식에서 취재진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박종환 감독의 건강 문제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1936년생이라고 되어 있는 박 감독은 스스로 “1938년에 태어났다”고 밝혔다.
그래도 한국 나이로는 76세이며, 만으론 75세다. 지난 5월 27년간 맨유 지휘봉을 잡았다가 은퇴를 선언했던 알렉스 퍼거슨(스코틀랜드·72)보다도 세 살이 많다. ‘맨유의 전설’로 불리며 영국 축구계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바비 찰턴(76)과 비슷한 연배다.
한국 프로축구에선 유례를 찾기 어려운 나이다. 올 시즌 한국 프로축구의 최고령 국내 사령탑은 울산의 김호곤(62) 감독이었다. 김호곤 감독이 올 시즌을 끝으로 울산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이차만(63) 감독이 경남FC 사령탑이 되면서 60대(代) 감독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런데 70대 중반의 박종환 감독이 이번에 K리그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그가 역대 최고령인 75세에 성남 지휘봉을 잡으며 한국 프로축구 감독의 평균 연령은 꽤 올라가게 됐다. 참고로 프로축구 역대 최연소 감독은 앞에 언급된 이차만 감독으로, 1986년 12월 36세로 부산 대우 로얄즈 감독에 올랐다. 이듬해 그는 대우를 챔피언에 올리며 최연소 우승 감독의 영광을 차지했다.
1996년 국가대표 감독 박종환. 국내축구팬들은 그라운드서 선수들을 질타하는 박 감독의 포효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됐다.(왼쪽)2003년 대구FC 축구감독 박종환. 그라운드를 떠난 지 7년만에 복귀했다.
건강 걱정하는 취재진에 “나하고 한 번 뛰어볼래?”
“나하고 한 번 뛰어볼래?” 이날 박종환 감독은 건강을 염려하는 취재진에게 오히려 반문했다. 그의 건강관리 비법은 조기 축구다. 박종환 감독은 70대 이상이 회원 자격을 가지는 전국장수축구진흥회에 가입돼 있다. 황해도 옹진 태생의 그는 ‘이북5도팀’의 단장 겸 선수다.
박 감독은 지금도 일주일에 2~3번씩 그라운드를 누빈다. 그는 “하루에 30분씩 세 게임을 무난히 소화한다”며 “누구에게도 체력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포지션은 미드필더.
지금도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기에 가능한 위치다. 이북5도 팀은 올해에만 전국대회 우승 1번, 준우승 2번의 성과를 남겼다. 박 감독은 “경기 후 목욕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하는 소주 한 잔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했다.
이제 곧바로 내년 준비를 해야 하는 박 감독은 팀 구성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난 시즌 성남 경기는 딱 한 경기만 봤다”고 솔직하게 밝힌 그는 “다들 지금도 ‘벌떼축구’를 할거냐고 묻는데 선수 전원이 공격하고, 수비도 하면서 한 발 더 뛰는 게 벌떼축구”라며 “유럽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내 방식대로 하면서 팬들도 즐겁게 보고 이길 수 있는 그런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야구처럼 입으로 하는 거 아니니까.”
워낙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악명이 높아 지금 성남 선수들이 떨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스파르타식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라며 “선수 특성에 따라 보듬어주거나 자극을 주는 차별화된 지도 방식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그답게 마지막 각오도 화끈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자신이 없었다면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요. 야구처럼 입으로 하는 거 아니니까. 고집 피우고 그런 축구는 하지 않겠소. 정말 잘할 테니 걱정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