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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들에게 ‘식재료’란 무엇일까? 음식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료? 다른 재료와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미완의 음식? 하지만 모든 식재료는 그 자체로서도 하나의 훌륭한 음식이 아닐까.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 인기 요리 블로거인 이재건 푸드칼럼니스트, 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 등 세명의 맛 전문가에게 철 따라 꼭 챙기고 싶은 식재료를 물었다.
[맛 전문가가 추천한 계절 별미] 박찬일 셰프
입맛 돋우는 ‘미더덕’·달콤한 ‘포도’ 과일 대표 향내 ‘복숭아’·고소한 ‘삼치’
박찬일 셰프가 추천한 봄철 식재료는 미더덕이다. 경남 창원시 진동면 고현리가 주산지. 보통 찌개나 찜 같은 데 넣어 먹지만 미더덕의 진면목은 회에 있다. 도토리처럼 껍질을 반 이상 깐 것을 생으로 먹으면 입속에서 터지는 바다의 향과 맛이 일품이다. 현지에서는 미더덕찜이 인기다. 미더덕 살만을 발라 덮밥도 하고 젓갈도 담그고 장아찌도 담근다.
박 셰프는 “신선한 미더덕은 3월부터 6월 초까지 만날 수 있다”며 “입맛 없는 봄에 꼭 챙기라”고 당부했다.
여름 식재료로는 포도를 추천했다. 향이 가득한 포도를 입에 물면 풍부한 과즙이 흘러넘친다. 당도는 보통 14~15브릭스(Brix). 내부의 당도를 지키기 위해 포도는 껍질에 하얀 분가루를 만드는데, 분가루가 많아야 상품으로 쳐주기 때문에 농부들은 이 분가루를 지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알이 100개라고 하면 30개는 솎아줘야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아진다”며 “포도 알갱이에는 농부들의 노고가 알알이 맺혀 있다”고 박 셰프는 말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식재료로는 복숭아를 들었다. 복숭아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몸의 면역력을 키워주고 식욕을 돋운다. 특히 포도와 함께 복숭아는 향이 좋다. 박 셰프는 “어린 시절 드나들던 시장을 생각하면 시장 전체에 진동하던 과일냄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며 옛날 추억을 전했다. 그는 복숭아향이 관능적이고 섹시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베어 물면 달달하게 번지는 단맛과 향내를 꼭 느껴볼 일이다.
미더덕, 포도, 복숭아, 삼치.
겨울 대표 식재료로는 삼치를 꼽았다. 삼치는 고등어·꽁치와 함께 등푸른생선 중의 하나다. 비교적 살이 무르고 부드러우며 기름기가 많아 고소하다. 씹는 맛보다는 고소함과 향미를 즐기기 위해 먹는다.
전남 고흥의 외나로도 인근에서 많이 잡힌다. 4~6월을 제외하고 연중 잡히지만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의 삼치를 최고로 친다. 큰 것은 크기가 1m 이상이고 무게가 3㎏이나 나가는 대형 어종이라 도시에서는 회로 맛보기 힘들다. 여수나 고흥으로 가야 회로 즐길 수 있다. 보통은 작은 삼치로 구이를 해먹는다. 박 셰프는 “기름을 두르고 자작하게 튀기듯 구우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며 꼭 챙겨먹을 것을 권했다.
[맛 전문가가 추천한 계절 별미] 이재건 푸드칼럼니스트
자양강장제 ‘굴’·암세포 억제하는 ‘딸기’ 식이섬유 많은 ‘옥수수’·살 꽉 찬 ‘고등어’
“요즘처럼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엔 역시 굴을 먹어줘야죠. 바다내음을 한껏 품은 이 녀석은 가을에 살이 오르기 시작해 겨울에 맛의 절정을 이룹니다.”
푸드칼럼니스트 이재건씨는 겨울철에 반드시 맛봐야 할 식재료로 굴을 꼽았다. 굴은 피로해소를 돕는 타우린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바다의 자양강장제’로 불린다.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므로 날 것을 선호하지 않는 서양에서도 굴만큼은 생으로 먹는다. 이씨는 “사시사철 생굴을 먹을 수 있지만, 가장 맛 좋은 굴은 겨울에 난다는 걸 잊지 말라”고 누차 강조했다.
이제는 겨울에도 딸기를 수확할 수 있지만, 딸기의 제철은 엄연히 봄이다. 이씨가 뽑은 봄철 대표 식재료 역시 딸기다.
“딸기는 봄과 닮은 점이 많아요. 싱그러운 생김새에서는 봄기운이 느껴지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함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과도 같아요.”
딸기는 맛도 맛이지만 몸에도 이롭다. 우선 항산화 작용이 뛰어난 비타민C가 풍부하다. 암세포 억제에 도움이 되는 성분인 엘라직산도 들어 있다. 좋은 딸기는 꼭지가 진한 초록색을 띠고 말라 있지 않아야 한다. 또 열매살의 붉은 빛이 전체적으로 퍼진, 딱 보기에 좋은 것이 맛도 좋다.
굴, 딸기, 옥수수, 고등어.
이씨는 또 해마다 여름이면 쫀득쫀득 차진 맛이 특징인 옥수수가 생각난단다. 특히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생옥수수를 좋아한다고.
“아삭하면서도 달콤한 생옥수수는 휴가철 별미 중의 별미죠. 그중에서도 알갱이가 촘촘하고 껍질이 선명한 초록빛인 게 상품입니다.”
특히 먹을 때 우유를 곁들이면 영양학적으로 더욱 훌륭해진다는 게 이씨의 조언이다.
“가을 식재료로는 고등어를 빼놓을 수 없죠. 이 시기 고등어는 살이 꽉 차오른 데다 기름기까지 적당해 어떻게 조리를 해도 넉넉한 풍미를 자랑합니다.”
고등어에는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가 많은데, 이 영양분은 심혈관계질환의 발병을 막아주고 두뇌·눈·신경·관절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 이씨는 “고등어는 보약과도 같은 식품으로, 조리하기 쉬운 데다 맛까지 뛰어나니 가을철이 되면 잊지 말고 꼭 먹어보라”고 권했다.
[맛 전문가가 추천한 계절 별미]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
신진대사 돕는 ‘산나물’·열기 식히는 ‘상추’ 심신 달래는 ‘토란’·회춘 보약 ‘늙은호박’
계절을 거스르지 않는 제철 식재료는 사찰음식의 기본과도 같다. 이는 ‘음식을 식도락의 대상이 아니라 약으로 대하라’는 부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몸에 시기적절한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제철 식재료가 보약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선재 스님이 권하는 봄의 보약은 쑥이나 머위 같은 산나물이다. 역동의 계절인 봄은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시기다. 쌉쌀한 맛을 지닌 산나물은 신진대사의 주축 역할을 하는 간의 활동을 돕고 비타민을 공급해준다. 특히 머위의 여린 줄기로 된장국을 끓이거나 나물요리를 하고, 잎으로 쌈 또는 무침을 해먹으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이 되살아난다.
상추는 여름 식재료로 대우받을 만하다. 선재 스님은 “서늘한 성질을 지닌 상추는 여름철 몸의 열기를 식혀준다”며 “채소의 뿌리가 아닌 잎에 영양분이 모이는 여름엔 잎채소를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상추로 만들 수 있는 별미에는 상추대궁전이 있다. 쫑상추의 굵은 대궁을 반으로 갈라 방망이로 두드려준 다음, 묽은 밀가루 반죽을 묻혀 부치면 끝. 여기에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색다른 상추 맛을 느낄 수 있다.
머위, 상추, 토란, 늙은호박.
여름에 채소 잎에 모였던 영양분은 가을이 되면 뿌리로 옮겨간다. 선재 스님이 가을에 맛봐야 할 식재료로 토란·마·연근 같은 뿌리채소를 꼽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토란에는 만성피로에 효과적인 칼륨이 많이 들어 있어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된다. 토란의 끈끈한 점액질은 소화 촉진과 변비 예방에 좋다. 토란은 알뿐만 아니라 토란대도 별미다. 토란대에 날콩가루를 묻혀 찜통에 찐 후 참기름·통깨·집간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맛깔스러운 찬이 만들어진다.
겨울 식재료로는 늙은호박이 제격이다. 늙은호박은 ‘동지 전에 늙은호박을 많이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영양가가 많다. 특히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회춘 보약’으로도 불린다. 선재 스님은 늙은호박을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늙은호박전과 늙은호박국을 소개했다. 늙은호박국은 씨를 털어낸 호박을 납작하게 썰어 들기름에 볶은 뒤 물을 붓고 푹 끓이다 소금과 어슷 썬 청·홍고추를 넣어주면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