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되어 있는데..
다시 말해 형제를 얼마만큼이든지 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구원에 참예케 되었는지의 확인에 있어 결정적인 사안이라는 것이고, 실상은 구원에 참예케 되었는지에 있어서의 증명과 같은 것이며, 전적으로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러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의 모든 핵심과 근간인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실체인 것이자 최고봉이며 전부와 같을 수 있는 것으로..
본질적인 측면으로 볼 때는 진정하고 제대로 된 말씀의 신앙인가 아닌가의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사실상 단순하게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진실한 말씀의 신앙이 구원에 참예케 됨을 확인하는 척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과 관점이 생각 이상으로 당연하고 마땅할 수밖에 없는 것임은 구원에 참예케 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며 전적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야 말로 본질적인 측면으로 볼 때는 말씀의 사람이 된다는 것으로..
실제로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말씀의 동산인 에덴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참으로 바로 그러한 인생들 중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구원의 역사에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참예케 되는 것인데..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 믿음으로 인해서만 반드시, 진정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구원, 곧 구원에 참예케 됨이라는 것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으로 볼 때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합당한 사랑, 다시 말해 말씀의 핵심이자 실체이며 최고봉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자가 있다면, 또는 실천하게 된다면 그러한 자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인 자가 확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사실은 원론적으로는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사실상 단 한 구절일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겨자씨만큼이라도 제대로 믿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일지라도 실제로는 아무나 가능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다시 말해 실상 잘 통찰해 보면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여전히 머물고 있고 아직도 변함없이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된 상태에 있는 자인 것이라면 실질적으로는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깨닫고 믿게 될 수 있는 것 자체부터가 원론적으로는 불가능인 것으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직접적, 실제적인 하늘의 힘과 도움이 없이는 온전히 깨닫거나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바로 그러한 사실이야 말로 반대로 바꾸어 말하면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제대로 알고 믿고 있는 자인 것이라면 그와 같은 성령님으로 인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힘과 도우심이 반드시 함께 하고 있는 자인 것으로..
이미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이고 하나님의 것으로 거듭난 자인 것이라는 사실이 그 자체로 증명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로 그러한 자들은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다른 그 누구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며 사모하고 의지함에 있어서도 더 우선이 되기 쉽다고 볼 수 있고,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러한 예수님 자체로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감사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 있어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맏음, 진정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의 기도에도 합당하고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며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믿음이 됨에 있어서도 모두 같은 연장선상인 것이며, 결코 다른 이치이거나 원리일 수 없는 것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그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문제와 위기들 등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즉시로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최우선으로 해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생생하고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더욱 강렬하고 풍성하게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더더욱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러면서 가면 갈수록 더 여러 모양의 구체적이고 헌신적이며 희생적인 크고 작은 사랑들의 실천은 물론 심지어는 요한일서 3장 16절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대로 구주 예수님을 따라, 또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사랑까지도 가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일서3:1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11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