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연휴. 향산(香山) 자락을 거닐었습니다. 황츠메이(黄刺玫, 노랑 해당화)조경수로 많이 심어놨더군요. 청명한 북경의 봄날이었습니다.
행락 인파를 비켜서 걷다가, 발길이 머문 곳입니다. 완안꽁무 (万安公墓). 우리말로 하면 '만안공묘'가 됩니다. 1930년에 조성된, 북경 최초의 현대식 공원묘지입니다. 경비원 몇명만 눈에 띄일 뿐, 한적했습니다.
1921년, 진독수와 함께 중국공산당을 창건했던 리따자오 (李大钊, 이대교)의 무덤이 있습니다. 입구에 '북평 (북경의 옛이름)향산만안공묘전지석'이라고 씌여진 초석이 서있습니다.
이대교의 무덤입니다. 원래 훼손됐었다고 하는데요. 별도구획을 조성하고 보수공사를 거쳐 1983년에 외부에 개방했습니다. 이대교 기념관이 있구요.
이대교의 석상뒤로 이대교와 그 부인의 무덤이 있습니다. 다시 그 뒤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비가 있습니다. '공산주의 운동의 선구, 위대한 막스주의자, 이대교 열사는 천추에 길이 빛날것이다' 라고 씌여져 있는데요. 등소평의 글씨입니다.
올해가 중국공산당창건 90주년입니다. 그래서인지 능원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고즈넉합니다. 측백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부드럽습니다.
남회근 선생의 '금강경 강의'라는 책에 보면 이런 귀절이 나옵니다. 우리의 손을 보라고. 항상 무언가를 움켜쥐려 안으로 오무리고 있다고. 그것이 돈이건 명예이건 사랑이건. 사람의 갈망은 손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태어날 때 주먹을 쥐고 태어나, 평생을 그런 손 모양으로 산다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갈망을 버리고 비로서 손바닥을 편다고. 손바닥이 펴진 이들이 누워있습니다. 내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완안꽁무의 전체 면적은 8만6천 평방미터입니다. 1930년 이래, 관리나 군부 인사, 사회운동가, 혁명열사, 문화예술인, 외국인이나 해외화교 등이 이곳에 묻혔습니다. 요컨대 행세 좀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까닭이겠지요. 문화혁명기간에 이곳 역시 수난을 겪습니다. 홍위병들의 눈에 이곳은 봉건잔재가 온존되는 곳이었습니다. 이승을 넘어 저승까지 확장되는 보수반동들의 욕망이 서려있는. 비석들은 심하게 훼손됩니다.
1978년 공원묘지가 복구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부러져나간 비석들이 보입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묘지는 나름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꾸어차오런 (郭超人). 중국관영통신사 신화사의 사장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부부묘입니다.
부부의 맞잡은 손. 그 움켜쥠이 아름다웠습니다.
이 비석도 나름 독특한데요. 이렇게 씌여져 있습니다. '친애하는 아빠엄마: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그리워할거에요! (亲爱的爸爸妈妈: 我们永远怀念您)'
我们永远怀念您 我们永远怀念您 我们永远怀念您...
최근 만들어진 묘비 대부분에 이렇게 씌여져 있습니다.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 된듯.
공원묘지 한쪽, 회랑식 납골당이 있었습니다. 1991년부터 지어서 2000년까지 확장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군데군게 비어있는 곳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전부 '임대'됐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매매'가 아니라 '임대'입니다.
토지의 사적소유가 인정되지않는 사회주의국가 중국. 묘지는 물론, 납골당조차 장기임대해야 합니다. 묘지나 납골당의 임대기간은 20년입니다.
칠십이 다된 할머니의 묘도, 열여섯살 소녀의 묘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죽음이 나이를 가리지 않지요.
최근에 조성된 무덤들은 특징이 있더군요. 값비싼 대리석을 썼습니다. 모양도 요란합니다. '재력 과시'의 경연장 같습니다. 개혁개방이 불러온 장묘문화의 변화입니다.
지금은 노인이된 왕년의 홍위병들. 그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중국에서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것이 묘지의 부족과 묘지값의 급상승입니다. 중국정부는 공원묘지의 매년 사용면적을 제한한다고 하는데요. 이곳 완안꽁무의 경우, 내년 할당면적이 이미 소진됐고, 지금은 2013년 사용희망자를 접수받더군요. 그런데 사망증명서가 있어야 접수가 가능합니다. 유족들은 망자의 유골을 다른 곳에서 임시보관하다가, 몇년후에나 이곳에 매장할 수가 있는거지요.
그럼에도 묘지값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이곳 완안꽁무의 20년 임대료는 평방미터당 21만 8천위안. 한화로 3천7백만원되는 돈입니다. 3년사이에 3배로 뛴 가격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북경 아파트의 평방미터당 평균가격이 2만 3천위안 이라고 하니, 집값의 9배에 해당됩니다.
일반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이런 공원묘지에 묻히는 것.
그래서 일겁니다. 북경 인근 산자락들에 흔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흙으로 쌓아올린 봉분입니다. 일반 서민들이 불법으로 매장한 것이지요.
죽음은 모든 이에게 공평합니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권력이 있거나 권력이 없거나. 위인이거나 범인이거나. 모두가 빈 손바닥을 펴고 눕습니다.
하지만 망자를 '영원히 그리워하기 위한' 표식의 형태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풍수 좋은곳의 대리석 비석 밑에, 누군가는 길가에 흔적도 없이 묻힙니다.
중국공산당 창건 90주년. 자신들이 파괴했던 공원묘지에 우후죽순으로 대리석 비석들이 다시 서는 것을 보며, 왕년의 홍위병들은 어떤 감회에 잠길까. 다시 한번 궁금해졌습니다.
북쪽으로 향산이 보였습니다. 그저 푸르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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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덕분에 중국 구석구석을 알게 됩니다. 베이징에 가게 되면 인사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감사드리구요. 북경에 오시면 연락주시지요...
맞잡은 손이 인상적입니다.
그렇지요?..
공원묘지가 아니라 조각 예술공원 같네요.
이쁘게 봐주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