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솔직해지기
바오로 사도는 유다 사람이었고 바리사이였다. 수도이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당대 훌륭한 바리사이 스승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 한마디로 지극한 열성으로 율법을 지키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다(사도 22,3). 그는 새로운 길인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모두 붙잡고 또 죽일 작정으로 감옥에 넣었던 인물이다(사도 9,2; 22,4). 그런 사람이 어떻게 180도 변해서 박해하던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더 나아가 사도가 되고 교회의 큰 기둥이 되었을까? 이게 가능할까?
그날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고 거기서 예수님 목소리를 들었다(사도 9,3-4). 의기양양하던 그가 넘어졌다. 그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그 하늘의 빛은 그의 깨달음이었을 거 같다. 600가지가 넘는 율법을 다 외울 수는 있어도 그것을 다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깨달음이고, 솔직히 자신도 다 지키지 못한다는 고백이었을 거 같다. 설령 다 지킨다고 해도 온 마음으로 지키는 건 아니라는 걸 보았던 거 같다. 요즘 말로 엘리트인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데 다른 흙수저들, 먹고사느라 율법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율법도 다 지키지 못하는 이들은 정말로 저주받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나.
우리는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져야 한다. 윤리적으로 교리적으로 잘 살고 싶고, 좋은 일도 많이 하며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길가에 버려진 빈 페트병 하나 줍는 것도 망설이고, 구원과 관계없는 작은 법규들도 슬쩍슬쩍 어기는데 어떻게 금욕, 봉사, 희생을 일상으로 실천하겠나. 맨날 이런 생각만 하는 건 아니지만 ‘너는 죄 없어?’라고 묻는다면 없다고 대답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율법은 언제나 죄와 벌을 말한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갈라 3,10; 신명 27,26).” 하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은총으로 감춰 놓은 속내를 보게 되고, 나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된 걸 거다. 잘 하지는 못해도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구원되기를 원하니, 내가 섬기는 하느님은 불쌍한 나를 법대로 다루지 않고 좀 아니 많이 아니 끝까지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셔야 했다. 뵌 적은 없지만 소문으로 들은 율법을 밥 먹듯 어긴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하셨고, 그래서 그분에게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던 거였다. 그분이 바로 자신이 원하던 하느님의 모습이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그렇게 하셨을 거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열심히 지켰어도 자신은 끝까지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깨달은 거 같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 회개는 뉘우치고 통회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나도 잘 안 되고 잘 못하는 데 그가 그런다고 나무라면 안 되지 않나. 그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죄는 알고 내 죄를 하늘과 땅이 다 봤는데 말이다. 이런 우리 처지를 잘 아신 예수님은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그래야 나도 심판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웃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은 보상으로 심판받지 않는 게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고 믿으라는 말씀이다. 벌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고 용서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내가 용서받고 이해받기를 바라는 거처럼 그를 용서하고 이해한다. 하느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셨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웃에게 그렇게 하면 된다.
예수님, 심판과 판단은 제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니 막거나 예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심판하면 심판받고, 단죄하면 단죄받는 줄 압니다. 이해하면 이해받고, 용서하면 용서받고, 사랑하면 사랑받음을 알게 됩니다. 제가 이웃에게 되어주는 제 마음에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주신다고 믿습니다(루카 6,38).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죄인들을 대하셨던 아드님의 마음을 제게 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