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봉산 언저리로
낮이 길어지니 일과를 끝내면 산책이나 산행에서 시간 여유가 있다. 와실서부터 무작정 걷는 경우와 시내버스를 타고 얼마간 이동하는 두 가지 유형이다. 연초가 내륙이라 전자는 바다를 보기가 어렵고 후자는 호수 같은 진동만이나 탁 트인 대한해협을 볼 수 있다. 오월 넷째 목요일은 퇴근 후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연초교를 지나 수월삼거리 방향으로 걸었다.
거제는 삼사십 년 사이 조선소 근로자들이 대거 유입되어 짧은 기간에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예전 신현읍은 네 개 행정 동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중심지는 고현동이고, 삼성조선소 근처는 장평동이다. 수월과 수양을 묶어 수양동이고 상동과 문동을 합쳐 상문동이라 부른다. 네 곳 다 주민자치센터를 갖춘 동장이 있고 선출직 시의원도 두었지 싶다. 옥포는 옥포대로 번성했다.
일 년 넘게 거제에 머물다 보니 웬만큼 인문 환경이나 자연 지리를 꿰뚫고 있다. 토박이 성 씨는 누구네 집안이고 유배를 다녀간 역사 인물이 누군지도 알게 되었다. 조선소 인력 관리나 작업 공정은 잘 몰라도 근로자들은 수시로 스쳐 지났다. 해안가 곳곳의 봉수대나 성터에도 올라봤다. 등산로나 산책로도 익숙해져 간다,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가 아니라 맛집은 순례하지 못했다.
사월 초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은 주말은 산행으로 소일하며 거제 풍광을 완상했다. 제철을 맞은 두릅을 가득 채집해 혼자는 감당을 할 수 없어 급식소로 보내 동료들과 봄내를 나누기도 했다. 오월 중순에도 주말을 거제에 머물면서 비가 그쳐가는 이른 아침 국사봉으로 올라 자생하는 곰취를 따 와 와실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 쌈으로 잘 싸 먹었다. 산나물 채집은 현지인보다 더 밝다.
수월삼거리에서 수양마을 앞으로 들었다. 아직 시골 분위기 농촌에 빌라나 전원주택이 들어선 개발지역이 혼재했다. 개교 역사가 짧을 중학교가 보였다. 하천 건너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선 산기슭에는 초등학교가 위치했다. 도시 개발을 계획적으로 하지 않아 천변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농로를 넓힌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동녘 산자락 주작골에서 연결된 작은 국사봉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양동에서 들녘 사이 주택이 들어선 개울을 따라 양정으로 올라갔다. 양정지구는 최근 고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 산골이 대단지 주거지로 바뀌었다. 입주가 시작되자 신설된 초등학교도 있었다. 지난해 몇 차례 연초에서부터 걸어 문동을 거쳐 고현천 천변을 걸었던 적이 있다. 늦가을에 다녀갔을 때는 해가 짧아져 산그늘이 내려와 날이 금방 어두워져 고현으로 가니 캄캄한 날 있었다.
수양천이 흘러오는 개울바닥은 갈대와 달뿌리가 세력을 떨쳐 무성하게 자랐다. 어디선가 날아와 저녁 식사거리를 찾으려던 왜가리 한 마리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나래를 펼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양정마을 이정표에서 새로 뚫린 도로를 따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독봉산 산기슭으로 향했다. 독봉산은 고현을 둘러친 계룡산과 분리된 ‘독뫼’와 같은 산이라 독봉산이라 불리는 듯했다.
초행이라 그곳 사는 사람에게 등산로 입구를 물어 산기슭으로 올랐다. 낮은 산 중턱에 이르니 최근 새로 뚫은 등산로가 나왔다. 정상으로 가는 길과 산등선으로 가는 길로 나뉘었다. 산등선으로 가니 양정저수지로 내려서는 길과 독봉산 웰빙공원으로 가는 길로 다시 나뉘었다. 정상까지는 퇴근 후 산책이라 시간이 부족할 듯해 웰빙공원으로 들었다. 신록이 녹음이 된 숲이 싱그러웠다.
산허리로 난 숲길을 한동안 가니 고현천 천변에 조성된 공원이 나왔다. 잔디가 조성되고 운동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날이 저무는 즈음이라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산책객들이 귀가하려는 즈음이었다. 고현천 건너 계룡산이 흘러내린 상동지구에는 곳곳에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공원을 지나 고현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고현 시내로 들어 수협마트에서 몇 가지 생필품을 샀다. 20.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