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다시 대간 하나봐라." 백두대간 7 (삿갓재-빼재)
2007. 11. 04. 맑음
총산행시간 : 11시간 40분 (24.2km)
산행후기
지난달 육십령에서 출발할 때는 8부능선 아래로는 녹음이 짙은 초가을이었는데
오늘 황점에 도착하니 가을이 무르익어 삿갓골에는 현란한 단풍 물결이 춤을 추며 반기고
등로에는 낙엽이 소복이 쌓여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합니다.
오늘 진행하는 황점에서 빼재(신풍령)까지의 덕유산 구간은 24km에 이르는 장거리 구간입니다.
부드러운 덕유능선 뭐~ 별로 힘들게 없을 것 같지만 아닙니다.
횡경재를 지나 빼재까지 대간이 어느 한 구간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 희생양이 누구냐고요? 바로 꼭지입니다.
백암봉(송계삼거리)을 내려서면 두 어 구간만 약간 힘들고 그리고는 빼재까지 순한 오솔길이라고 뻥을 쳤는데
갈미봉을 내려서면서 무릅을 절뚝거리더니 빼봉(?)을 내려서니 아예 다리를 질질끌며 내려가더군요.
빼재까지 파도타기 하듯이 작은 봉우리들을 넘고 넘으며 꼭지님 하시는 말씀
“두 번 다시 대간 하나봐라.”
그 후 대간 휴우증인지 꼭지가 무릎이 계속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었는데, 원장선생님 말씀
“무릎 연골이 약간 손상되었고 관절염도 있는데 그렇게 무리한 등산을 하면 큰일납니다.”
4주정도의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리고 운동은 수영같은 가벼운 걸로 하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꼭지님이 다음과 같이 하소연 했답니다.
“원장님, 저요 다음에는 20km 걸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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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정
06:50 황점통제소
황점은 꼭지와 자주 찾은 곳이라 낯설지가 않습니다.
제 작년인가, 남덕유산에 올라 서리꽃을 보고 황점으로 하산하기위해 영각매표소로 차를 끌고
올라가다가 차가 빙판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공단직원까지 불러내어 생고생 시킨 곳
그리고 겨울에는 유난히 추웠던 기억이 납니다.
마을 옆 큰 나무가 있는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합니다.
동네 개들은 다 늦잠을 자는지 인사를 않네요. '워리~~!' 부를 수도 없고 대신
돌담따라 피어난 노란 국화꽃이 쪼르륵 달려나와 마중을 합니다.
초겨울인데도 계곡에는 가을빛이 화려하고 등로에는 낙엽이 소복이 쌓여있어서
오랜만에 가을의 정취를 마음것 즐기는 대간산행이 됩니다.
아침 햇살이 파고드는 숲 속의 풍경은 선경이 따로 없네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의 몸도 마음도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인생사 별것인가요?
앤돌핀 팍팍 솟아나는 행복이 이곳에 있는데 말입니다.
삿갓대피소에 올라섭니다. 늘 그렇지만 쓸쓸한 장의자만이 객을 반기는 곳이지요.
주능선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흔들어 댑니다. 황홀했던 가을날의 서정은 간곳없고
계절의 무상함만이 가득합니다. 곧 서리꽃 만발한 겨울이 올 테고, 처녀치마 화사한 봄이 오고
원추리 중봉을 물들이는 여름, 그리고 구절초 향기 짙은 가을이 오겠지요. 우리 인간사도 이와 같겠지요.
대피소를 지나 헬기장에 올라서니 맑은 하늘사이로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무룡산 오름길은 예전의 낡아빠진 나무계단을 철거하고 입체형의 새로운 계단을 설치해놓았네요.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보는 삿갓봉과 남덕유산 서봉을 향한 조망이 일품입니다.
무룡산에는 새로운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가야할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의 부드러움은 더욱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상수리나무와 키 작은 산죽길이 정겨운 구간이지요.
무룡산에서 이어지는 백암봉, 중봉, 향정봉까지 덕유의 주능선은 언제 걸어도 환상적입니다.
사계절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걷는 내내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지고
봄, 여름, 가을에는 온갖 야생화가 피어나 산상화원을 이루지요. 특히 겨울에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서리꽃이 그 자리를 대신해주는 덕유산 최고의 구간입니다.
황점들머리
지난달 육십령에서 시작할 때는 구절초 향기 짙은 초가을이었는데
지금은 단풍사이로 겨울을 맞이하는 가을의 스산함이 느껴집니다.
수줍음 많은 아침 햇살도 단풍앞에서는 요염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좌측은 옛날 금빛 원숭이가 살았다는 금원산, 우측은 뱀이 엄청많은 월봉산입니다.
삿갓봉인데 남덕유에서 출발할 때는 발이 달린 것처럼 가까이 갈 때마다 도망을 가더군요.
가야할 무룡산, 이제부터 덕유의 부드러운(?) 능선길이 시작됩니다.
무룡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월봉산방향
무룡산에서 뒤돌아본 삿갓봉, 남덕유산과 서봉
무룡산에서 바라본 가야할 대간 길
가야할 동엽령방향
첫눈?
주능선은 벌써 앙상한 가지만 남았네요
동엽령 가는길에 바라본 향적봉과 중봉입니다.
뒤돌아본 무룡산과 삿갓봉, 남덕유와 서봉
동엽령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나무판자 이정목... 앞으로 이런 이정표는 다시 볼 수 없겠지요.
'대간이 사람 잡네' (횡경재-빼재)
12:40 백암봉에 올라섭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백암봉’이라는 작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 정상석은 없어지고 송계삼거리라는 이정목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정목을 옆에 끼고 뒤를 돌아보는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네요.
서봉과 남덕유산에서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막힘없이
시야에 들어오고 가야할 대간길도 아늑하게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서서 돌이 되고 싶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조망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돌이 되어서 늘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대간은 언제 하나요.
백두대간은 이곳에서 3시 방향 우측입니다.
주봉인 향적봉을 거치지 않아서 아쉬움이 따르지만 포근한 육산에 매료되어 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덧 송계사 갈림길인 횡경재가 허리를 내어주지요.
14:25 횡경재
빼재(신풍령)까지는 7.8km 아직까지는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다행이도 등로도 부드럽고 키작은 산죽과 폭신한 낙엽길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지봉아래 싸리덤재까지는 돌부리 하나 없는 편안한 육산이지만 싸리덤재를 지나면서는 대간맛을
톡톡히 보게 되는 구간입니다. 못봉과 대봉, 갈미봉, 빼봉.. 빼재까지 하산길이지만
오르고 내려야할 봉우리가 많아 꼭지가 걱정이 됩니다.
싸리나무가 많은 싸리덤재에는 <횡경재→1.2km>이정목과 <등산로아님>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등산로아님 방향으로 내려서면 오수자굴에서 백련사로 향하는 등로와 만나게 되지요.
꼭지와 잠시 휴식하고 싸리나무를 헤치며 30여분 헉헉대며 오르니 헬기장입니다.
여기가 정상인가 했는데 못봉은 저만치 도망가 있네요. 하지만 향적봉과 칠봉이 시야에 들어와
위안을 받습니다. 헬기장을 지나니 조망이 멋진 못봉(지봉)입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옛날에는 이곳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네요.
연못속으로 흰구름이 흘러가면 마치 연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여 못池자를 써서
지봉이라고도 한다는데 정상석에는 『못봉』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조망에 대한 즐거움도 잠시뿐 고도가 또 급하게 떨어집니다. 저 아래가 ‘월음재’인데
급경사를 40여분 겁날 정도로 내려갑니다. 얼마나 푹 꺼졌으면 달빛조차도 가려지는 ‘월음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하여튼 신나게 내려갑니다. 또 올라갈 일이 걱정이지만 그렇다고 뒤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아니라 다를까 꼭지가 투덜댑니다. “무슨 산이 이래?”
달그림자 아름답다는 월음재에서 잠시 휴식합니다. 잡목너머로 호음산이 겨우 모습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능선이네요. 저 능선도 언제 함 걸어봐야지 다짐을 합니다.
꼭지를 스틱으로 잡아당기며 대봉을 오릅니다.
저기 대봉만 오르면 빼재까지는 편안한 하산길이라며 안심시키고 스틱에 힘을 줍니다.
키작은 잡목너머로 드문드문 조망이 트여 거창의 아름다운 산군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아름답네요.
백암봉에서 뒤돌아본 풍경입니다
가야할 대간길입니다. 부드럽게 보이는데 이게 사람잡습니다.
멀리 향적봉이 보입니다
송계사 길림길인 횡경재
못봉
월음령
꼭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굴이 퉁퉁부었습니다
16:20 대봉
이름에 걸맞게 정상도 크고 조망 또한 원을 그으며 엄청 크게 보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못봉이 우뚝하고 그 뒤로는 중봉과 향적봉, 설천봉라인이 하늘금으로 다가옵니다.
발아래로는 거창 북상면의 시골풍경이 포근하게 느껴지고 월봉산에서 금원산과 기백산으로
이어지는 거창의 유명한 산줄기들도 저녁햇살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갈미봉과 호음산은 그 능선의 윤곽이 뚜렷하고 부드러워 얼른 달려가고 싶네요.
저 호음산을 따라 수승대에서 필봉, 금원산으로 올라 덕유산을 한 바퀴 돌아 수승대로 다시
내려서면 도상거리 약 48km의 덕유환종주가 된다고 합니다.
삿갓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언젠가 한번 도전하고 싶은 곳이라 눈여겨 보아둡니다.
대봉에서 갈미봉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으나 꼭지의 체력이 떨어져 40분이나 소요되네요.
갈미봉에는 작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정상부는 잡목에 가려 조망이 되지 않습니다.
또 고도가 급하게 떨어집니다. 잔돌이 흘러내리는 급경사 비탈길입니다.
꼭지가 무릎을 절뚝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주저앉습니다. 다리를 거의 끌다시피 진행합니다.
대지는 서서히 어둠에 잠기기 시작하고 등로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족적이 보이지 않으니 어디가 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네요. 랜턴을 켰지만 빛이 반사되어
시야가 더 흐려집니다. 그렇다고 랜턴을 끌 수도 없어 리본에 의지한 채 감각으로 진행합니다.
몇 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또 오르고 내립니다. 휴~~ 덕유산이 사람을 잡네요.
삼각점이 있는 빼봉에 도착하여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오늘의 대간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