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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깨침의 순간들-한암스님
1995-11-14
한암스님은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 1898년 금강산 장안사의 행응선사에게 득도하였다. 본관은 온양 方씨이고 이름은 重遠이며 법호는 漢巖이다.스님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영특하고 총기가 뛰어나 한번 의심이 나면 풀릴때까지 캐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9세때 서당에서 史略을 읽고 있던 중원은"태고에 天皇氏가 있었다"는 대목을 접하고 춘장에게 "천황씨 이전에는누가있었습니까"하고 물었다.당돌한 어린소년의 질문에 훈장은 당황했다. "천황씨 이전에는 盤古氏라는임금이 있었지"라고 대답했으나 만족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반고씨 이전성에는 누가 있었을까요"훈장은 그 이상 소년의 회의를 풀어주지 못했다. 10여년 동안이나 유학을 널리 공부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마음의 眞性을찾고 극락왕생하며 부모의 은혜를 갚자는 명세하고 출가를 결심했다.新溪寺 普雲講會에 있던 어느날 보조국사의 <修心訣>을 읽다가"만일 마음밖에 부처가 있고 自性밖에 법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佛道를구한다면소신연비의 고행을 하고 팔만장경을 모조리 독송하더라도 이는 마치 모래를가지고 밥을 지으려는 일과 같이 오히려 수고스러움을 더할 뿐이다"라는대목에서 스님은 홀연히 마음과 몸이 송연하여 마치 죽음의 시각을 맞이한극한 의식을 느꼈다.
스님은 또 성주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스님께 "금강경"의 한구절 "무릇형상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형상있는 것이 형상 있는것이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볼지니라"라는 말을 듣고眼光이 홀연히 열리면서 한눈에 우주 전체가 환히 들여다 보였다.
스님이 30세 되면 1905년 봄에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에 조실로 젊은 선승들을 지도하다가 1910년 선승들을 해산시키고 맹산 우두암에 들어가서 홀로앉아 保任에힘쓰고 있었다.어느날 스님은 부엌에 홀로앉아 아궁에 불을지피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홀연히 悟하였다.그悟한 경계가 청암사 수도암에서開悟와 차이는 없으나 다만 깨달음의경지가 분명해짐을 느끼고 두편의 시로오도송을 읊었다.
着火廚中眼忽明從玆古路隨綠淸若人問我西來意岩下泉鳴不濕聲
부엌에서 불붙이다 별안간 눈밝으니,이걸 쫓아 옛길이 인연을 따라 분명하네.
날보고 西來의 뜻을 묻는 이가 있다면
바위 및 우물소리 젖는 일 없다 하리.村孤亂犬常疑客山鳥別鳴似嘲人萬古光明心上月一朝掃盡世間風마을개 짖는 소리에 손님인가 의심하고,산새의 울음소리는 나를 조롱하는 듯,만고에 빛나는 마음의 달이하루 아침에 세상 바람을 쓸어 버렸네.
한암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있었고,
滿空스님은 예산 정혜사에 있을때였다.
"한암이 금강산에이르니 雪上加霜이 되었다. 지장암 도량내에業鏡臺가 있으니 스님의 업이 얼마나 되는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마땅히 30방망이를 맞아야 옳다""맞는뒤에는 어떻게 되는고""지금 한창 잣서리할 때가 좋으니 속히 올라오라""
岩頭의 잣서리 할 때에 참여하지 못함은 원망스럽지만 德山의 잣서리할시절은원하지 않노라""암두와 덕산의 명함은 이미 알았거니와 그들의 성은 무엇인가""도둑이지나간 후 3천리가 넘었거늘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 성은 물어서무엇하랴""금선대 속에 있는 寶花가 金玉으로도 비하기 어렵다"
만공스님은 마지막에네모진 백지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서 한암스님에게 보냈다.한암스님은 1951년 아침에 죽 한 그릇과 차 한잔을 마시고 손가락을꼽으며 "오늘이 음력 2월14일이지"하고 말한후 사시에 이르러 가사와장삼을 찾아서입고 禪床위에 단정히 앉아서 태연히 열반에 들었다.아홉살에 반고씨 이전에무엇이 있었느냐고 궁극을 캐묻던 어린 소년은1951년 2월14일 76세때에 바로 그 반고 이전의 궁극의 세계로 갔다. 아니어쩌면 한암스님을 그 궁극의세계를 넘어서 더 멀리 날아갔는지도 모른다.그때 스님의 세수는 76세. 법납은 54세였다.
ㅡ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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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편지
모두에게 겸손했던 한암 스님
〈1〉한서운(韓瑞雲) 보살님에게
윤창화 <민족사 대표>입력 2014.06.06 15:39댓글 0
한암선사(漢岩, 1876~1951)의 편지를 연재한다. 한암선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종정을 네 번이나 역임했으며, 오대산 상원사 선원에서 27년 동안 거의 두문불출하고 납자지도와 좌선에 매진하셨다. 한암선사의 편지는 약 45통이 남아 있다. 스님들에게 쓴 편지는 순한문체이고, 거사들에게는 국한문체, 보살님들에게는 순 한글로 썼다. 윤창화 대표의 번역과 해설로 선사의 면면 너머 스님의 법향을 편지 속에서 만나본다.
〈편집자 주〉
한서운(韓瑞雲) 보살님에게
다녀가신 후 지금까지 기력이 강건하시고, 염불 잘 하신다니 반가운 말씀 다 아뢰올 수 없사오며, 법문 못 들으신 것을 한하시니, 법문은 신심으로 만나보는 것도 법문이요, 선지식이라고 믿고 생각하시는 것이 모두가 법문이오며, 재수형통하기를 기도하시는 것도 법문이오며, 화두는 별도로 찾으실 것 없이 일심으로 염불하시는 것이 화두와 다르지 않습니다. 화두도 일심, 염불도 일심, 모두가 일심이라야 성취하오니, 온갖 사무 보시는 중에 일심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간단없이 염불하시면 일거양득으로, 세(世) 출세간이 다 구족하게 성취하십니다. 보내신 금액은 잘 찾았습니다. 이곳은 다 무사합니다. 이만 그치옵나이다.
기축(1949년) 삼월 초삼일
산승 한암 사상(답장 올림)
〈추신〉 보내신 금액은 잘 받았사오나 생일은 이 어려운 때에 무슨 생일 여부가 있습니까? 너무 황공 감사합니다. 생축 망축 축원은 다 전과 여히 성심 거행합니다.
아름다운동행_260703
이 편지는 한암선사가 1949년 3월 3일에 강원도 홍천에 살고 있는 한서운(韓瑞雲) 보살에게 보낸 편지이다. 법명은 일여행(一如行)인데, 아마도 홍천 지역에서는 가장 신심 있는 보살님이었던 것 같다.
한암(漢岩)선사는 경봉선사 등 스님들과 왕래한 편지에서는 100% 한문을 사용했으나 여성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 한글 편지이다. 아무래도 보살님들은 한문 독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글 편지가 아주 단아하고 예술적이다. 당시 한암선사는 오대산 상원사에 계실 때였고, 입적(1951년)하기 2년 전으로 74세셨다.
〈편지의 법문〉 : 한서운 보살이 정월 해제 때 상원사에 왔었으나 대중공양 준비 등으로 바빠서 미쳐 한암선사의 해제법문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한서운 보살이 그것을 한탄하자 한암선사는 법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신심으로 상원사에 와서 이렇게 만나는 것도 법문이고, (나를) 선지식이라고 믿고 생각하는 것도 법문이고, 재수형통하기를 기도하는 것도 법문이고, 모두가 다 법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문 듣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말라하셨다.
그리고 화두는 별도로 찾을 것 없이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이 화두와 다르지 않으니 화두도 일심, 염불도 일심, 모두가 일심이라야 성취된다고 일러주신다. 이 역시 한 편의 법문이다.
신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한자로 써야할 것도 모두 한글로 쓰셨다. 예컨대 편지 끝에 ‘산승 한암 사상’에서 ‘사상’은 한자 ‘謝上’으로 ‘올림’이다.
〈추신〉에서 ‘전과 여히 성심거행’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히’는 한자 ‘如히’이다. 이와 같이 한자는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으셨다.
〈추신〉에서 “생일은 이 어려운 때에 무슨 생일 여부가 있습니까? 너무 황공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암선사의 생신은 음력 3월 27일이고, 이 편지를 보낸 날자는 3월3일이다.
아마 한서운 보살님이 한암선사께 편지를 보내 곧 다가올 큰스님 생신을 걱정한 모양이다. 당시는 남한에도 좌우익이 대립하여 도시는 물론 산 속 오대산에도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때였다. 한암선사는 이렇게 어려운 때에 생일은 무슨 생일잔치를 하느냐고 기겁하고 있다.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황공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편지 내용에서도, 그리고 추신에서도 너무 겸손한 모습이다.
ㅡ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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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BSM64jM3hc?si=i82Z1sV2col5oTzY
조선불교조계종 초대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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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에 불을 지르라 한 한암스님월간국가유산사랑 상세- 국가유산청 https://share.google/rdCHosQnbZpPnPv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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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과 만공, 한 스승 아래 다른 길 걷다” https://share.google/tn2y5lJzMN8tHn1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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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의 시대 바위 같던 한암 스님은 현대인의 의지처" < 불서 < 출판 < 기사본문 - 법보신문 https://share.google/5cvR61vmuWkSgQw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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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通度, 구도(求道)의 길 (89) 한암중원(漢巖重遠) 대사 < 양산트레일, 미래를 디자인하다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양산신문 https://share.google/b0UMISuQHGOeFak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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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과 함께 나도 태워라", 세상에 이런 스님도 있었다-오피니언ㅣ한국일보 https://share.google/RT5TJNnWuTwjZhB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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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스님 [상] < 나의 발심수행 < 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https://share.google/7NCa0j8v8gLv6fX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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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https://share.google/sccvvHtaLrdC35R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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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가장 닮은 한국불교의 고승 ‘한암’ | https://share.google/ctyKMX3gv3yFUlp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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