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5. 큐티
누가복음 4:14 ~ 24
이 글이 오늘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
관찰 :
1)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다
- 14절.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a.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 이후에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셔서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b.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면서 주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더욱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온전하고 굳건하게 감당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 15절.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a. 이 때 예수님은 배척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종교지도자들이 시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 예수님은 바른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미 열세 살 때 성전에서 서기관, 제사장들과 성경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왜곡되고 잘못된 성경 해석을 한다는 것을 아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경을 더욱 연구하셨고, 바른 말씀을 증거하는 것을 중요한 사역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c. 예수님의 말씀은 권능과 함께 했고, 참으로 온전하고 순전한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렇기에 “뭇 사람”, 즉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이사야 61:1 이하를 찾아 읽으시다
- 16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a.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과거의 안식일 때와 같이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성경을 안 읽어도 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하시고 연구하시고 자주 읽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b. 예수님이 성경을 자주 읽으시고 연구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 17절 ~ 19절.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a. 예수님은 자신이 자라신 나사렛에 가셔서 안식일 날 회당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61:1 이하를 일부러 찾으셔서 읽으셨습니다.
b. 양피지 성경은 한 번에 쫙 펴서 성경을 찾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장절로 구분이 된 것은 13세기에 와서야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절을 의도적으로 찾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사야의 그 말씀이 응하였음을 선포하셨습니다.
c.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잠시 잠깐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언제나 임재하셨습니다.
- 20절.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a.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찾아 읽으신 이사야의 말씀에 대하여 왜 그 본문을 읽으셨는가 의아해 하면서 예수님을 주목하여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선포하시게 됩니다.
- 21절.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a.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가난한 자, 곧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는 죄의 포로된 자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눈 먼 자를 포함하여 영적인 눈이 먼 자들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빼앗겨 억압되고 눌린 자가 자유를 되찾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b.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주의 은혜의 해가 임하게 되었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3)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시는 예수님
- 22절.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a. 예수님은 왜 그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응하게 되었는지를 부연 설명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리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은혜로운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b. 그러나 그들이 듣기에도 예수님의 자기 증명은 너무나 맞는 말씀이었고 그렇기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예수님의 신분 혹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목수라는 정체만을 보는 것으로 인해서 그들에게 괴리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c. 그렇게 예수님이 자신을 증거하였지만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만 생각하고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자신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목수이자 석수인 가난한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23절 ~ 24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a.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는 자가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b. 예수님은 이후에 그 예로 엘리야 때에 이방 여인 시돈 땅 사렙다의 한 과부를 구원하신 일과 엘리사 때 많은 나환자들 중에 이방인 수리아 사람 나아만 만이 깨끗게 함을 입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c.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될 수많은 사역자들을 위하여 친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은 이미 다른 동네에서 “뜨신” 상황이었습니다. 뭇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으셨기에 구태여 자신을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 뻔한 나사렛으로 가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고의적으로 이사야 61:1의 말씀을 읽으시고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셨음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부정하는 이들에 대해 엘리야와 엘리사 때의 이방인만이 구원을 입은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나사렛의 유대인들이 격분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예수님은 이러한 결과를 이미 아셨을텐데 왜 일부러 이렇게 하셨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어나게 됩니다. 22절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은혜로워서 다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이방인들에게도 임할 수 있다는 말씀에 버럭 성질을 내면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방인들에게 나눠주어야 할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던 말씀을 근거로 지금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을 뿐인데 이들은 마치 개가 그 입에 물린 고깃 덩어리를 빼앗긴 것처럼 성질을 내고 악독한 반응을 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대해 얼마나 많은 왜곡이 자행되고 있었는지를 보게 되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철저히 믿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로 이방인들에게 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사랑으로 그 백성을 대해 주셨는데, 이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괴악하게 변질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심으로 하나님을 자신들 만의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다른 이들, 이방인들에게 그 은혜가 넘어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게 된 유대인들의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전용물로만 이용하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자신들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게 막아버린 것입니다.
2)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누구에게, 중국인들에게, 일본인들에게 북한의 사람들에게, 모슬렘들에게, 불교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에 부애가 나는 일이 있다면 똑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기꾼들에게, 살인자에게, 악독한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임해야 합니다. 담배 피는 자들, 술마시는 자들, 마약하는 자들, 동성연애자들, 강도들 ....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하는 일에 쓰임받는 것은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이나 목사나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이들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다 해당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오늘 말씀에서 주님의 마음을 조금 보게 됩니다. 이방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낭떠러지까지 밀고가 떨어뜨려 죽이려는 이들의 악독함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더러운 모습입니다. 이것을 심판하고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생각하는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민족에게 나눠지는 것에 대해서, 진실로 기쁨으로 반응하고 순종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방인’으로 규정하는 부류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는 절대로 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할 때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2) 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는 안 돼라고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지워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마음에 부응하는 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3) 어제 북경한인교회에서 11년 만에 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느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설교자가 은혜를 가장 크게 받는 것이 귀하고 귀한 은혜입니다. 주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