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기능 가운데 가장 신기한 것이 의무적으로 깔려 있는 위성위치측정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s, GPS)일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총아라 하는 이도 있다. 아래 동영상을 먼저 시청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구정지궤도의 위성들을 활용하는데 시간의 오차를 어떻게 막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의 실험 물리학자 다니엘 클레프너(Daniel Kleppner)는 물리학자 노먼 램지(Norman Ramsey)와 함께 원자시계가 더 정확하게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힘을 보탰고,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이며 이론 물리학자 사톈드라 나스 보즈(Satyendra Nath Bose)가 예상했던 희귀한 근본물질 상태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됐는데,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92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12일 전했다.
부인 베아트리체가 남편이 손자 다윈의 고교 졸업을 축하하려고 딸 소피를 찾았다가 낙상해 끝내 별세했다고 확인했다.
클레프너 박사가 중력의 영향을 감지할 만큼 정밀한 시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얘기를 스승으로부터 들은 것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펠로우십일 때였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더 많은 정보를 찾아내려고 램지의 책 'Nuclear Moments'(1953)를 읽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한 뒤 교수진에 램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의 연구그룹에 신청서를 내 받아들여졌다.
램지 박사는 1940년대 자신이 수행한 연구로 1989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그 연구는 원자와 분자가 흡수한 전자기 방사선의 빈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의 실험 기술은 원자 자기 공명의 바탕이 돼 오늘날 의료계에서 쓰이는 M.R.I. 기술로 발전했다.
각 원소의 원자는 어떤 새인지 지저귐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유한 주파수로 진동한다. 램지 박사의 연구는 과학자들이 원자 시계로 알려진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장치는 그 진동을 측정하고 그 정보를 사용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시간을 유지하게 한다. (예를 들어, 1초의 공식 측정치는 세슘 원자의 9,192,631,770회)
최초의 원자 시계는 1954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물리학자인 제롤드 R 자카리아스(Jarrold R. Zacharias)에 의해 만들어졌다. 클레프너 박사가 램지 박사 연구실에 합류했을 때, 그는 연구의 정확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가능한 오랫동안 원자를 관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믿었다. 진동을 더 오래 추적할수록 시계가 더 정확해진다. 램지 박사는 원자들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하기보다 일종의 그릇에 가두자고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클레프너 박사의 획기적인 기여의 토대가 됐다.
2011년 역사 프로젝트 인피니트(Infinite) MIT 인터뷰를 통해 클레프너 박사는 이 아이디어를 설명했는데 "언뜻 보기에는 이 원자가 있는데, 매우 높은 정밀도로 그 주파수를 보려고 하는 것 같다. 당신은 그들을 매우 섬세하게 다뤄야 하고 그들이 벽에 부딪히고 덜컹거리게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알람 시계를 앞뒤로 두드려 보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수소 원자에 대해서는 이것이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것이 우리가 추구한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H. 마크 골든버그(Mark Goldenberg)와 함께 만든 타이밍 장치는 수소 메이저(Hydrogen Maser)라고 불렸다. 과학자들은 1962년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 저널에 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수소 메이저는 실용적인 용도가 많았다. 예를 들어 통신 신호의 정확한 타이밍을 허용해 GPS 위성들의 거리를 측정하고 보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전파천문학에서 고해상도 이미징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심우주 탐사선과의 통신을 개선했다.
1959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클레프너 박사는 하버드 대학 조교수로 임명됐다. 그는 1966년까지 그곳에 머무르다 종신직을 얻지 못하자 MIT로 옮겨 2003년 은퇴할 때까지 재직했다. 매사추세츠주 벨몬트에 거주했다.
1970년대 중반, 클레프너 박사는 보즈-아인슈타인 응축(Bose-Einstein Condensation BEC)이란 희귀한 물질 상태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 원자 속 전자가 같은 방향 또는 스핀을 갖는다면, 원자는 분자를 형성할 수 없다. 전자들은 결합하는 대신 서로 튕겨 나오게 된다. 하지만 보즈와 아인슈타인은 원자가 극도로 낮은 온도로 냉각돼 압축되면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로 들어가 상전이를 겪을 것이란 가설을 정립했다. 전자의 스핀은 동일한 방향을 가질 것이고, 그들은 개별 입자로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대신 하나의 큰 입자로 작용할 것이다.
클레프너 박사가 1976년 이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고 MIT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하지만 동료이자 저온 물리학 전문가 톰 그레이탁(Tom Greytak)과의 대화가 그의 생각을 바꿨다. 수소 메이저에 대한 초기 연구를 바탕으로 클레프너 박사는 찾기 어려운 물질 상태를 만드는 방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와 연구팀은 테스트 요소로 수소를 선택했는데, 이 결정으로 인해 진행 속도가 느려졌다. 그는 나중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밀도에서는 수소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노력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실험실들도 이 경쟁에 가담했다. 1995년에 성공한 첫 번째 과학자는 콜로라도에 있는 연구 기관인 JILA의 에릭 코넬(Eric Cornell), 볼프강 케털리(Wolfgang Ketterle), 칼 바이먼(Carl Wieman)이었다. (케털 박사는 데이비드 프리처드(David Pritchard)와 함께 수학했는데 그 역시 클레프너의 제자였다) 위 세 사람은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마침내 1998년, 클레프너 연구 그룹은 응축수를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이탈리아 베로나 컨퍼런스에서 성공했다고 발표했을 때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2006년 국립과학훈장을 수상한 것을 기념한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난 수소와 일종의 사랑에 빠졌다"면서도 "보즈-아인슈타인 응축법과의 이 사건은 내게 상당한 상처를 남겼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끈기는 결실을 맺어 2000년 MIT-하버드 초저온 원자 센터(MIT-Harvard Center for Ultracold Atoms)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초대 소장으로 이 분야에서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했다.
클레프너는 1932년 12월 16일 뉴욕에서 오토와 베아트리체(타웁) 클레프너의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0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민 온 부친은 가난하게 자랐고, 나중에 광고대행사를 설립했다고 했다. 모친은 뉴저지에서 자랐고 버나드 대학에 다녔다.
뉴욕주 뉴로셸 교외에서 자란 그는 목재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노젓는 배를 만들어 항해를 배웠다. 그는 또 전자기기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물리학에 대한 그의 사랑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고등학교 때 시작됐는데, 당시만 해도 "물리학자들은 원자폭탄으로 전쟁을 빨리 끝낸 영웅으로 여겨졌다"고 MIT 인터뷰를 통해 돌아봤다. 그는 매사추세츠의 윌리엄스 대학을 3년 만에 졸업한 후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떠났다. 영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그는 베아트리체 스펜서를 만났다. 그에게는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분명 그녀에게는 더 설득력이 필요했던 것 같았는데 둘은 1958년 결혼했다.
그의 아내, 딸과 손자, 두 아들 폴과 앤드루, 다른 세 손주, 여동생 수전 폴크먼을 유족으로 남겼다.
클레프너 박사가 받은 영예는 국가 과학 훈장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노벨상 다음으로 물리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울프상을 2005년 수상했다. 2014년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 1997년 물리학 교육에서 주목할 업적을 이룬 이에게 수여하는 오에스테드 메달(Oersted Meda)을 받았다.
클레프너 박사는 고등학교에 물리 교사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고, 그래서 2002년에 교사 모집을 돕기 위해 '물리 과학 교육 기회'란 서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는 또 해당 주제에 대한 기초 지식 이상을 가진 MIT 신입생을 위한 고급 물리학 과정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그와 로버트 J. 콜렌코프(Robert J. Kolenkow)는 2013년 이 과정을 위한 교과서 "An Introduction to Mechanics"를 집필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이 강좌는 '마조히스트의 역학'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어렵기로 이름났다.
M.I.T. 인터뷰 말미에 클레프너 박사는 학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문제를 선택하는 이 문제는 물리학에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젊은이들에게 한 조언은 그저 자신의 관심사를 따라가고 뭔가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흥미로운 곳으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