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학회 칼럼 '작은 나눔'에 대하여
작지만 아름다운 움직임 '나눔'
‘그래서?’ “나눔은 행복의 연장선”이라며 선행 가득한 일상을 얘기한다. 인터넷엔 전직 유명 스포츠 스타가 은퇴 전 마지막 1년 동안 받아야 할 연봉 전부를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뉴스가 화제다. 마땅히 칭찬받을 이야기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보기 드문 용기를 실천한 그들이 문제라는 게 아니다. 오늘도 만만치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이해득실을 꼽아보는 우리 서민들에게 그네들의 ‘나눔’은 솔직히 ‘나도 한 번?’이라는 마음보다 ‘나는 아직’이라는 마음이 더 들게 만든다는 말이다. ‘나눔’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란다. 하지만 인지상정이 어디 그런가? 경기가 어려우니 나눔 온도가 그 어느 해보다 떨어졌다는 방송기자의 말에도 당장 ‘내 코가 석 자야’라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 우리네 같은 무명씨들은 나눌 방법이 없나? 순수하지 못하면 나눌 수 없나? 다소 때 묻은 나눔은 정말 의미가 없단 말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연말 서울시 중구청사 내 환경미화원들이 남는 시간을 쪼개서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해 만든 금액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또 지난달 17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나눔 강연 프로젝트 ‘나눔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두 번째 강연에 참석한 시민은 ‘점심밥 굶기’ 행사를 통해 모은 후원금으로 마련한 생필품과 현금을 전달했다.
나에겐 효과도 미미한(?) 한 끼의 다이어트지만 받는 이웃에겐 분명 절실한 ‘따뜻함’이었을 것이다. 아예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기사도 있다. 발달 및 지체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 부산혜송학교 학생들은 비슷한 장애를 겪고 있는 생면부지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저금통을 모아 기부했다 . 이런 소식들을 접할 때면 여유가 없어서 나눌 수 없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럽다.
행복 호르몬이 정상치의 3배까지 올라가고, 혈압 및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불면증과 만성 통증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나타나며, 장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과학기사나 인문학기사 중에는 ‘나눔’이 신체적 효과뿐만 아니라 ‘행복’과 ‘성공’의 진정한 비밀 열쇠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내용도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스스로 생각해도 ‘뻔뻔하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당장 나 쓸 돈도 부족하다는 이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이른바 ‘나눔 소비’다. 언젠가 국민MC 유재석이 착용하고 나와 화제가 된 시계가 있었다. 일명 ‘커피콩 시계’라 불리는 이 제품을 사면 총 금액의 30%를 몽골 고아원과 인신매매 착취 학대, 필리핀 태풍 피해 지역 후원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시계, 조명, 장식품, 가방 등 이처럼 따뜻한 마음과 실천이 담긴 다양한 제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알아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고 나온 것만으로 기부되는 카페부터, 누군가를 위해 밥값을 내 주는 ‘미리내 식당’, 소비자가 N마크 제품을 사면 해당 기업이수익금 일부를 적립해서 사회에 기부하는 ‘행복 나눔 N캠페인’ 등 마음만 있다면 내게 필요한 걸 사면서 이웃도 돕고 내 마음마저 행복한 선택이 가능하다. 하다못해 편의점에서 커피 하나를 고를 때라도 눈여겨보면 깨알 같은 나눔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유리창에 뽁뽁이를 붙이고 틈새마다 문풍지를 달고 얼 만한 곳은 단열재로 채워 넣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실내 온도가 몇 도쯤 훅 올라간다. 우리 사회도 똑같다. 커다란 기부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한 사회를 구석구석 온전히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오히려 마음이 담긴 ‘작은 나눔’들이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 금액이 적어도 ‘괜찮다.’ 나를 조금 생각한 선택도 ‘괜찮다.’ 어쨌든 무언가 나누려고 꼼지락거려보자. 끝나가는 이 겨울과 다가오는 봄이 한결 따뜻할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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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GI, 창가학회 소식, 창가학회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한국S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