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6. 큐티
누가복음 4:25 ~ 37
배척과 사역
관찰 :
1)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의 예
- 25절 ~ 27절. “내가 참으로 너히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a.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척하는 갈릴리 나사렛의 사람들에 대하여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는 자가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로 엘리야 때에 이방 여인 시돈 땅 사렙다의 한 과부를 구원하신 일과 엘리사 때 많은 나환자들 중에 이방인 수리아 사람 나아만 만이 깨끗게 함을 입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b.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에 예수님이 이사야의 글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신 것을 의심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c.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갈릴리 나사렛의 사람들의 현상이 반복되는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 28절 ~ 29절.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a.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통한 사실만을 지적했음에도 회당에 있던 이들이 분을 내고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로 밀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습니다. 인간들의 완악함을 보게 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잣대로 해석하고, 그것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마저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 30절.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a. 무리들의 악독함에 대해 예수님은 권능으로 그들의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습니다.
b.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밀어서 낭떠러지에 밀어버렸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처단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죽으시는 방식은 예수님이 스스로 붙잡히시고,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실 뿐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심
- 31절 ~ 32절.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와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a. 예수님은 가르치심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과 같이 말씀을 하시는 이는 없었습니다.
b.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치실 때 유대인들의 오류를 잘 아시고 그 문제들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으로서 반박할 수 없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정한 이들이 심각한 것입니다.
- 33절.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a.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내쫓으시는 권위를 보여주셨습니다.
b.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에게서 말씀으로 꾸짖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직접 그 권위를 보여주신 것이고,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심에 있어서 숨기거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 36절.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a. 귀신의 역사가 있을 때 예수님처럼 권위와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는 일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들도 귀신이 들린 현상에 대해서는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들어온 귀신을 내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권위와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으신 것입니다.
- 37절.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a.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스라엘 전체에 거대하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커다란 반응을 보였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는 형태의 사건들은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입니 다.
b. 그러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거대했을지라도 주님은 그러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셨습니다.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사역을 이루어가셨습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의 권능은 질병도, 귀신도 꾸짖어 쫓아내시는 권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증거한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형태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권능은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만들어져서 공급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권능이 시공간의 간격을 뚫고 이 땅에 임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귀신의 증거를 받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아예 말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범을 통해서 보더라도 귀신의 증거를 이용하는 것은 언제나 속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험하고, 그야말로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목적이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예수님 사역의 목적이 아니었던 것닙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귀신의 일을 멸하려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것은 귀신이 좋아하는 주장입니다. 귀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도 미련한 것이지만, 귀신의 권능을 감히 주님과 빗댄다는 것은 또한 미련하고 무지한 것일 뿐입니다. 주님이 귀신을 내쫓으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의 일환이었습니다.
4)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하지만 꾸짖으시고 귀신들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기를 원하셨지만, 귀신의 증거를 받아들이거나 이용하거나 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도들도 동일합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 귀신의 증거가 설령 맞았을지라도 결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인용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귀신이 하는 증언을 받아들이거나 인용하는 것도 결코 주님의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성락교회 김귀동 목사의 베뢰아 사상이 이단인 이유이고, 그것을 인용하는 인터콥의 최바울 선생과 같은 이들이 문제가 있는 이유입니다.
적용 :
1) 귀신의 증거, 거짓된 증거를 내 눈에 보기에 유리하다고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속이는 것이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의 증거는 세상의 유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맨 먼저 사탄이 사람을 속인 거짓말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거짓말입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대표적인 거짓말입니다. 굉장히 맞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우리를 속이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귀신의 궤계를 허락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귀신의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언제나 날이 서게 벼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씀으로 세상을 관통하는 관점과 지혜를 간구드립니다.
2) 주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그로 인해서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지만, 사람들로 인해서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주님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님을 좇는 자들이 그러한 관점을 소유하고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은혜를 누리는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관점에 주님의 관점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참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참된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