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모 찬송의 각 부분들을 조금 더 자세히 묵상해 봅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레지오 단원이 된다는 것은 각자 단원들의 결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거룩한 일을 하시려는
하느님의 선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거룩한 삶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레지오 단원들은 하느님께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생각하면 기쁘고, 그분과 함께 있음이 벅찬 위로와 안도의 은총임을 알고 고백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 이시로다.”
레지오 단원들의 받는 칭송은 하느님의 거룩한 도구가 됨으로 인해서 모든 이들이 행복을 누리게 됨을 뜻합니다.
그래서 내 손과 발과 마음이 모두 하느님을 드러내어 행복이라는 말이 나를 통해 모든 이에게 미칠 것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작고 부족한 모습을 통해 하느님이 이 행복을 주시니 나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그 느낌이 바로 하느님의
‘거룩하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인자하심은 세세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미치시리라.”
하느님은 우리를 통하여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 뜻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 등의 제한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좋고 나쁜,
그리고 옳고 그른 모든 이들이 나의 모든 삶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영향 말입니다.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그리고 그 첫 손에 꼽히는 일들이 사람들의 삶의 우선 순위를 고쳐내는 일입니다.
당신 팔의 큰 힘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세상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기준으로 생활을 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레지오 활동의 모든 것은 ‘나의 힘으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
하느님의 뜻으로’, ‘하느님 안에서’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삶의 주인에서 ‘종’의 신분으로 우리가 내려가 우리부터 교만에서 물러나 모든 교만한 이들에게 그들 삶의 참 중심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임을 알게 하는 것이 우리 활동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권세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는 우리의 습관에 성모님의 말씀은 제동을 거십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권력이나 명예나 돈 등으로 상을 받는 삶이 아닌 세상 어느 인생도 보잘 것 없이 생각지 않고
존중하는 데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을 살려내고 구해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자리입니다.
레지오 단원의 활동의 방향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 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오히려 은혜는 가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베풀어집니다.
보잘 것 없는 이에게 그 삶의 존엄성을 생각하고 지켜주는 것이 우리가 ‘은혜’라고 부를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부요한 자의 빈손은 그가 이미 세상에서 스스로를 위해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으므로
그 부유함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진 이가 더 가지는 일정한 방향을 법칙으로 정해놓은 것 같지만
주님의 뜻은 우리의 현실로 해석할 수 있는 가치가 전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로서 주리는 이에게 내밀어진 주님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성모님의 노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뜻마저도 제멋대로 해석하고 모두가 죄인이 되어 버린 의인이 하나도 없는 의로운 나라 이스라엘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그저 벌이나 피하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오히려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품으신 사랑을 거두어 들이시지 않습니다.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악한 세상을 두고서도 사랑을 그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랑을 내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그만큼 강하기에 하느님의 약속인 사랑을 알고 사는 레지오 단원들도
그만큼 강하게 절망적인 세상에 희망을 심고 가꾸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작은 소녀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정신’입니다. 그 뒤를 따르는 우리가 됩시다
정호 빈첸시오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