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 귀환자들의 명단과 수
39 사제는, 예수아 집안 여다야의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
40 임메르의 자손이 천오십이 명,
41 파스후르의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
42 하림의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다.
43 레위인은, 호다우야의 자손들인 예수아와 카드미엘의 자손 칠십사 명 이었다.
44 성가대는, 아삽의 자손 백사십팔 명이었다.
45 문지기는, 살룸의 자손, 아테르의 자손, 탈몬의 자손, 아쿱의 자손, 하티타의 자손,
소바이의 자손 백삼십팔 명이었다.
46 성전 막일꾼은, 치하의 자손, 하수파의 자손, 타바옷의 자손,
47 케로스의 자손, 시아의 자손, 파돈의 자손,
48 르바나의 자손, 하가바의 자손, 살마이의 자손,
49 하난의 자손, 기뗄의 자손, 가하르의 자손,
50 르아야의 자손, 르친의 자손, 느코다의 자손,
51 가짬의 자손, 우짜의 자손, 파세아의 자손,
52 베사이의 자손, 므운의 자손, 느푸심의 자손,
53 박북의 자손, 하쿠파의 자손, 하르후르의 자손,
54 바츨릿의 자손, 므히다의 자손, 하르사의 자손,
55 바르코스의 자손, 시스라의 자손, 테마흐의 자손,
56 느치아의 자손, 하티파의 자손이었다.
57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은, 소타이의 자손, 소페렛의 자손, 프리다의 자손,
58 야알라의 자손, 다르콘의 자손, 기뗄의 자손,
59 스파트야의 자손, 하틸의 자손, 포케렛 츠바임의 자손, 아몬의 자손이었다.
60 성전 막일꾼과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은 모두 삼백구십이 명이었다.
61 자기들의 집안과 종족, 그리고 자신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면서도,
텔 멜라, 텔 하르사, 크룹, 아똔, 임메르에서 올라온 이들은 다음과 같다.
62 곧 들라야의 자손, 토비야의 자손, 느코다의 자손 육백사십이 명이었다.
63 이 밖에 사제들 가운데에는, 호바야의 자손, 코츠의 자손, 바르질라이의 자손들도 있었다.
바르질라이는 길앗 사람 바르질라이의 딸 가운데 하나를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그 이름까지 받았다.
64 이들은 족보를 뒤져 보았지만 이름이 들어 있지 않아, 사제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제외되었다.
65 총독은 그들에게, 우림과 툼밈으로 판결을 내릴 사제가 나설 때까지 가장 거룩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66 온 회중의 수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었다.
67 이 밖에도 그들의 남녀 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 있었고, 남녀 성가대가 이백사십오명 있었다.
68 낙타는 사백삼십오 마리, 나귀는 육천칠백이십 마리였다.
69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 가운데에서 공사에 쓸 기금을 바친 이들이 있었다.
총독도 금화 천 드라크마와 쟁반 쉰 개, 사제 예복 오백삼십 벌을 금고에 기부하였다.
70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공사 금고에 바친 것은 금화가 이만 드라크마, 은이 이천이백 미나였다.
71 나머지 백성이 바친 것은 금화가 이만 드라크마, 은화가 이천 미나, 사제 예복이 예순 일곱 벌이었다.
72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문지기들과 성가대와 백성 일부와 성전 막일꾼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저마다 제 성읍에 자리를 잡았다
율법을 봉독하다
일곱째 달이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저마다 제 성읍에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