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일(월)
* 시작 기도
주님...
부활주일이 지나고 오늘은 4월의 첫날이자 월요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면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골 2:2-3).
나는 이 말씀을 너무나 내 방식대로 오해하였습니다.
‘보화’라고 하니까 지극히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보화로만 생각하여 금은보화인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물론 세상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나왔으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헛다리를 짚어도 너무 잘못 짚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보화를 말씀하셨건만 나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이는 것에만 치심하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한 나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지요.
그런 나는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아 그 심판 안에서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스도가 왜 보배이신지를 이제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던 자에서 그 이름을 향유하는 자로 바뀌었음을 고백합니다.
물론 나의 연약함으로 순간순간 넘어지고 자빠지기도 하지만 이제 나의 눈은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옮겨졌습니다.
오늘이라는 이 시간에 주님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나의 영안을 열어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기를 원하오니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 곧 그리스도로 나를 채우소서.
이 아침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1:1-10
제목 : 아도니야가 요압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50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 나의 묵상
열왕기서는 원래 히브리 원전에는 사무엘서나 역대기와 같이 상하권으로 분리되지 않고 한 권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원 제목은 ‘왕들’이란 의미의 ‘멜레킴’이다.
우리 성경은 70인역을 따라서 열왕기서를 두 권으로 나누고 각각 열왕기상, 열왕기하로 부르고 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차 바벨론 포로 귀환 이전에 바벨론에 거주했었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본서는 솔로몬 시대부터 남북 분열 왕국 전반기까지의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를 비판적 시각에서 기록해 놓았다.
역대기서 역시 열왕기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어서 그 내용면에서 다소 중복되는 면이 있지만, 그 관점은 전혀 다르다.
열왕기서를 기록한 관점은 ‘선지자적 관점’으로 기록하였다.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BC586년에 남유다마저 바벨론에 멸망한 상황에서 선민 이스라엘로 하여금 멸망까지 자초한 과거 자신들의 죄악된 삶을 회고하고 반성케 하기 위하여 비교적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다.
반면 역대기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귀환한 상황에서 ‘제사장적 관점’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 택한 당신의 백성에게 그들이 잘못할 경우 징계는 하시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분임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역대기서는 선민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다윗 언약을 열왕기서에 비해서 강조하고 있으며, 다윗 가문을 배반한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BC1050년 사울의 즉위로 시작된 이스라엘 신정 왕국은 사울을 이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솔로몬 시대에는 근동 지역에서 애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성해지고 경제적 번영도 누리게 되며, 특히 이스라엘의 여망이었던 성전도 건축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누렸던 영광은 일순간에 불과하였다.
솔로몬 사후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면서 남과 북의 왕조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된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들에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왜 여호와의 선민인 우리가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해야 하는가’였다.
특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마저도 파괴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문에 답을 주어서 그들에게 믿음과 정체성을 다시 심어주게 된다.
열왕기서가 이스라엘 민족이 몰락한 원인으로 제시하는 답은 한 마디로 ‘지난 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역사의 주권자이시고 사랑의 주이신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데 있다는 것’이다.
열왕기서 기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왕들의 행적을 가감 없이 기록하면서 그들의 선행과 함께 악한 행적을 비판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이 그들의 타락과 범죄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멸망의 원인을 밝혀서 그들이 멸망당했다는 정당성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비록 범죄하여 심판을 받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지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도니야가 왕권을 잡으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윗의 노쇠함은 다윗 왕가에 권력 다툼의 빌미를 제공한다.
당시 70이 가까운 다윗은 공식적으로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정치적 야망을 가진 이들이 이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다윗의 후계자는 솔로몬의 출생과 더불어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로 다윗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삼하 12:24-25)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이런 상황이지만, 왕의 후계자가 외견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생존해 있던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장자였던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구하면서 살았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삼상 13:14) 지금은 왕(사울)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다윗)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라면 마땅히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알아서 행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는 오히려 아버지의 뜻과 무관하게 행동하는 패륜아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직 아버지 다윗이 왕위에 있는데도 말이다.
아도니야는 아버지 모르게 모반을 준비한다.
아버지의 신복이었던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군사들을 동원하여 은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소헬렛 바위 곁에서 짐승을 잡고 솔로몬을 제외한 모든 동생들과 왕의 신하들을 다 초청하여 즉위식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도니야와 같은 자였다.
육신적으로는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이 부모님을 속이면서 부모님 몰래 그 뜻을 거역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 하나님을 속이며 거짓을 행했던 나는 아도니야보다 더 악한 자인 것이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런 내가 한심할 따름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패역을 일삼았던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그러나 아도니야와 나의 차이점은 아도니야는 그렇게 행동하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지만, 나는 복음으로 찾아오신 주님으로 인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고 영생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거짓과 불의, 속임과 수군거림, 육에 속한 헛된 정욕, 탐욕 등은 나를 하나님과 분리되게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떠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온전히 찾아오신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오래 참으심 때문이다.
그 은혜로 나는 아들의 생명을 얻어 아버지께로부터 태어난 생명이 되었고, 아들에게 속한 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날마다 아들이 있는 곳에 나도 함께 있으며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에게 주신 그 영광을 나도 보는 기쁨을 누린다.
주님께서 창세전부터 아버지께 복종하여 사랑을 받음 같이, 나도 아들의 계명에 복종하여 아들의 사랑 안에 거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사랑이 영광으로 계시된 것처럼 날마다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영광 가운데 거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크신 은혜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죽기에 합당한 죄인을 아들을 통하여 살리시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그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신 은혜는 오직 주님의 주권입니다.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자를 돌아서게 하셔서 아버지의 품으로 품어주시며 아버지의 품속이 나의 거할 안식처가 되게 하심은 오직 아버지의 오래 참으심이요 또한 은혜입니다.
아도니야와 같이 패역한 자, 영적으로 죽었던 자를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으니 이제 그 사랑을 힘입어 날마다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날마다 그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을 기뻐하는 아버지의 아들로 살기 원합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오늘도 면목 없음과 염치 없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이 종을 받아주옵소서.
말씀묵상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깊이 주님을 만나고 영광을 보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도 영원을 잇대어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