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아
잘 지냈니? 너의 출산소식을 기다렸지만 편지 길도 끊겨 몹시 궁금했다. 거의 두달이 다되어가는데 아이는 잘 크는지 ? 그리고 광주엔 너무나 아픈 일들이 있어 혹시 동생 승철이라도 다치지 않았는지 빠른 생각이 미치는구나. 5월과 6월이 한 장에 담긴 달력에 이제 모든 괴로움의 순간들이 모질게 조금씩 정리되어 간다. 5월의 그날들. 화염속의 내 고향 광주, 비 내리는 뜰에 붉게 피어 있는 장미꽃이 저주스럽고, 기독교방송은 종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려주었다.
휴교기간 중에 애 키우기에는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했겠구나. 네 집주소를 잃어버려 이렇게 학교로 띄운다만, 미덥지 않아서 말이 자꾸 끊어진다. 이해해라.
애 아빠는 들어가 있다. 오늘이 한 달째다. 성북을 다녀오면서 버스 속에서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듣는다. 차창 밖으로는 또 비가 내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저 거리가, 이 세상이, 내가, 모두 물에 잠겨버렸으면! 내 마음이 사나워진다.
그이는 며칠후면 다른 곳으로 이송될 모양이다.
우리 아이들은 잘 큰다. 다섯 살짜리 큰애는 개구쟁이다.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슬퍼서 울면 엄마 눈 아파? 하고 내 얼굴전체에 다가온다. 여동생 우유를 빼앗아 먹고 그 대신 끔찍이도 제 동생을 귀여워한다. 제 아빠를 만나고 온 후로는 내 앞에서 일체 아빠를 찾지 않는다. 아이들이 먼지 비극을 알아버린 것 같아서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그렇지만, 73년 가을 그가 동대문에서 서대문으로 갈 때 그때보다 더 내가 침착할 수 있는 게 이 두 아이들 때문인 것 같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나는, 단속반에 ?i겨 리어카를 끌고 달리는 노점상들의 얼굴과 만났다. 저분들은, 그렇다, 지금 나보다 더 위급하다. 몇 포기의 상치를 따와 길 모퉁이에 자리잡은 할머니는 급히 도망가는 리어카에 치어 발목을 다친다. 그렇다, 나는 그분들께 미안하다. 지금 내가 아픈 것은 나 혼자만의 상처가 아니다. 다친 할머니의 발목으로 집까지 걸어오는 사이, 이제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보이지 않는데 서도 아이들 우는 소리를 즐을 수 있게 되었다. 어서 가자, 주둥이 벌리고 있는 나의 제비새끼들에게. 주인없는 집에서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상치쌈을 해주었다.
오늘은 너무 내 이야기만 했구나. 미안하다. 부엌에 가서 연탄갈고, 또 혼자 울고, 그래서 몇 번씩 끊긴 글이다. 그러나 너한테 이렇게 씀으로 해서 나는 이미 다 위로받은 것 같다.
5월 태어난 너의 아가에서 義에 굶주린 우리나라 모든 사람의 축복을 전하고 싶다. 생각나니? 우리가 하얀 하복을 입고 芝山洞(지산동) 아카시아 숲길을 걷던 때. 넌 유난히 잘 웃고, 웃으면 염소처럼 빨간 잇몸이 다 드러났었지. 늦게 간 시집이니까 남편 사랑 많이 받겠구나.
여느때 같으면 술꾼들의 싸움소리가 요란할텐데 오늘 밤은 이 신림이 고요하기만하다. 언제 우리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실컷 울어버리자
6월 28일
너의 숙희로부터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시이다. 항쟁이 일어난지 한달 남짓 지난 날 광주의 친구 미숙에게 서울 신림동의 숙희가 보낸 안부편지로 되어있다. 제발 한 문장, 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그리고 그 문장들이 이어져 이루는 단락 단락이 어떻게 펴져나가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꼭 다시 읽어주기를 바란다. 산문으로 느슨하게 풀어져 있지만 그 어떤 서정시보다 깊고 감동을 전해 줄수 있음을 나는 그의 시에서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