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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가 출간된지 오래지 않아 2010년 2월 3일, 국내 최초로 국회도서관에서 Living Library 행사가 열렸다. 바로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빌리는 것. 이 이벤트성 문화 체험은 2000년 덴마크를 선두로 이미 국외에선 많이 도입됐다. 물론 대화를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목적으로 하지만 새로운 도서관 서비스 개념으로 열린 도서관으로서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Living Book의 목록은 남자 간호사, 남자 승무원, 다문화 가정, 라디오 DJ, 바텐더, 번역가, 성적소수자, 수의사, 여자 소방관, 입양부모 등 이색 이력을 가진 사람들로 다양하다. 대출 고객은 한 회차당 30분씩 1:1로 그 사람의 인생을 직접 들을(읽을) 수 있다.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도서관, 그 의미 있는 첫 시도에 독자로서 참여했다.
1. 연극인 이주실, ‘인생은 무대, 인간은 누구나 배우’
몇 년간 암과 싸워 이겨냈고, 고령의 나이에도 현재 아침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 최근엔 보건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배우라는 점을 들어 그녀가 어떻게 고민하고 연기를 하는지 듣고 싶었다. 예상과 달리 단순히 연기 경력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인생은 연극이라는 비유 그대로 당신의 삶을 듣고 싶다 했더니 연극 같은 인생 이야기가 시작됐다.
부모의 권유대로 가정학과에 입학했으나 연극 동아리에서 상도 받아 여러 군데에서 그녀를 부르는 곳이 많았단다. 처음엔 싫다고 거절했으나 이 범주 안에 맴돌고 있으니 계속해서 기회가 닿았다. 운명이란 건 관심 영역 내에 머물러 있으면 관련 일이 연달아 생기는 게 아닐까.
병을 앓을 땐 너무 아파 바닥을 기어 다녔다. 마음 아프다. 뒤이어 암을 창조와 창의력으로 극복했다는 말이 가슴을 찌른다. 하루를 1년 같이, 오래 사는 사람처럼 연기하며 살았더니 정말 그렇게 됐다.
주어진 인생대로 살았다면 연극영화과 교수가 됐을 그녀. 하지만 그 자릴 거부했다. 아픈 몸임에도 연극이라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지방에서 무료로 공연을 했다. 대안학교, 탈북청소년학교에서 자원봉사하며 아픈 아이들을 섬겼고, 이들의 정신 상태를 이해하고자 임상심리학을 배우다 보건학과에 진학했다. 결국 삶을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관심과 관련 없는 일은 없었다. 그것들을 점점 넓혀가며 유의미하게 엮어내야 된다 했더니 얼떨결에 정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바로 인생이라고.
여기저기서 살아있는 책과의 만남이 벌어지는 테이블들. 소란스러운 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작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며 교사인 줄 알았다 한다. 조용한 것 같으나 열정이 있어 보인다고도. 나도 선생님처럼 청소년들을 도와주고 싶다. 약한 그들과 약한 내가 만나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했더니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손을 슬쩍 잡으며 언제 커피 한잔 하잔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렇게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2. 호스피스, ‘호스피스와 완화치료’
아주 작고 동그란 얼굴, 하얀 피부와 주름은 영락없이 할머니인데 왜 이렇게 아이 같기만 한지. 그런 소리 많이 듣죠? 라고 물었더니 생긋 미소를 띠며 그렇단다.
내가 알고 있는 호스피스란 죽음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죽음을 목도하는 생생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난 이번 기회에 좀 겸허해져야 되지 않을까. 이 말에 백혈병 앓는 아이 이야길 꺼낸다. 어제도 그 애와 만나 대화했다고.
그녀는 아동과 청소년을 담당한다. 생을 펴보기도 전에 지는 아이들, 지켜보기 얼마나 괴로울까. 그들과 부딪치기도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일은 부모가 자식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어미로부터 세상에 나왔기에 떠날 때도 어미를 통해 마무리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끝까지 내 아인 살아날 거란 믿음을 가진 이도 많아 그녀가 다가오는 걸 거부하는 이도 있다. 때문에 가족상담사로 접근한다. 그러다보면 이야기를 하는 과정 중에 어느 샌가 전문 케어를 하게 된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이혼 때문이었단다. 자신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데 그가 이혼을 요구한다는 게 더할 수 없이 큰 상처였다는 그녀. 그 고통은 마치 죽음과 같았다. 그 때 주위의 돌봄과 격려가 있어 이겨냈고, 인생은 달라졌다. 아, 고통 뒤엔 새 삶이 시작되는구나, 이것이 그녀가 얻은 깨달음이다. 죽음 뒤에도 분명히 새로운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사는 일상에 적용해 본다면 고통스럽다고 자신을 몰아치지 않는 여유라고 할 수 있겠다.
죽음의 현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이토록 환한 표정이라니. 시종일관 아이 같은 생글거림으로 충만한 얼굴에 역설이란 말이 떠오른다. 지금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 진짜 역설.
어물거리는 내게 자꾸 질문을 요청하는 그녀. 살아있는 사람을 완전히 책처럼 봤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그녀가 말하는 내용을 듣는 건 줄 알았다. 허나 깜박 잊고 있던 독서의 개념을 그녀가 정의한다. 독자가 무엇을 질문하느냐에 따라 같은 책은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와 의미로 다가온다고. 즉 책도 독자가 만들어가는 거다.
2회 Living Library를 마친다는 안내 방송에 서둘러 대화를 끝내려는 찰나,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깊은 얘기를 이끌어 내줘 고맙다고 했다. 서로의 영향이 또 하나의 이야길 만들어낸 셈이다.
3. 새터민 강룡, ‘북한 사람에게 듣는 북한 이야기’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을 닮은 사람. 명함 뒷면엔 돋움체의 큰 글씨가 박혀있다. 연세대학교 통일한마당 6기 회장, 연세대학교 기독학생리더십캠프 1기회장, 탈북청년학생 네트워크 상임대표 등. 투박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이게 이 사람의 매력 같다.
신(新)이산가족. 그 사람이 설명한 말이다. 남한엔 ?만 명, 세계 각지엔 ?만 명 탈북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다시 볼 수 없다. 알면서도 탈출한 절박함을 차마 묻지 못했다. 이미 수차례 강연을 다녔을 이 사람에게 북한 사람에게 듣는 북한 이야기를 묻지 않은 이유다. 다만 그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새 정착지에서 어떤 고민과 마주하는지 궁금했다. 이미 여느 대학교엔 많은 새터민들이 재학하고 있단 걸 알고 있기에. 학업의 어려움, 소통의 부재, 경제적 궁핍 등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가 있을 터. 충격적인 건 그걸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이게 바로 그가 단체를 조직하고 회장까지 하게 된 연유다.
그는 북한이나 정치에 관심 있는 독자가 나올 줄 예상했단다. 그가 보듯 나는 북한엔 아주 문외한이다. 이제껏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허나 30분 내에 북한의 실상을 다 알지 못해도 어느 한 면을, 더구나 당사자의 이 살아있는 목소리로 듣는다면 충분히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내가 살아가는데 경각심을 가지고 싶은 동기다.
4. 여행 작가 오소희, ‘사람여행’
“찬미, 이름이 예쁘네요.”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어느 기자의 요청으로 지각한 내게 그녀가 던진 첫 말이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고자 언제 그녀를 처음 알게 됐는지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KBS 라디오 콘텐츠 팀에서 일할 당시, mP3 파일을 수집하고 서지정보를 매기던 나는 어느 독서 프로그램의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낭독을 매일 듣는 게 일이었다고(그 성우의 발음은 얼마나 경쾌했던지!).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을 아주 따뜻한 여행 작가라 여기고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여행 작가에 대한 편협한 소리를 많이 듣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행 하면서 돈도 버는 이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대해서. 그렇다며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꺼낸다. 수많은 여행서적들 중 유럽과 일본이라는 콘셉트는 이미 기본 판매 부수를 보장한다. 그러나 그녀는 『욕망이 머무는 곳, 라오스』처럼 정말 자기가 가고 싶을 곳을 간다. 전혀 어떤 기획이나 구상 없이.
멋진 사진과 그럴 듯한 감상을 끼적거린 많은 서적이 베스트셀러 간판에 올라도 잠시 반짝할 뿐, 진정성 없는 도서는 결국 잊힌다.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게 있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우리가 갖는 예상처럼 여행을 다니면 삶을 보는 시선이 그윽하고, 여유로울 것 같다.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허나 여행을 통해 원숙해질 수도 있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즉 접시에 코만 박고 사는 일상이라도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감당하면 삶을 넓게 가늠할 수 있다. 아주 적지만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느라 밖으로 나갈 계획도 요원한 내게 그녀가 준 희망이다.
그 나라에 가선 완전히 엎드리는 자세가 된다는 그녀. 사진작가와 통역사 없이 애기와 나 단 둘이서도 그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김광규 시인, 좀 있다 보나요? 나도 만나고 싶어요. 있다가 찬미씨가 어디로 가는지 보면 되요?”
내가 가진 시집을 가리키며 묻는다. 일상을 통해 문학적 심상을 빚어내는 그를 만나고 싶은 우린, 공통된 심성을 지녔나보다.
떠나기 전, 나더러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한다. 여행 작가에 대해 젠 체하지 않았냐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지금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끼고 풀어낸 것들을 글로 표현하면 잘 할 것 같다고. Living Book도 열심히 독자로부터 배우고 소통하려 한다고 느낀 순간이다. 나보다 더 좋은 독자가 기다리고 있을 터,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여행 많이 하길 바란다.
5. 시인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대한민국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이 작품의 작가이자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인 시인. 그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꿰뚫어 봤을까 싶어 내심 두려움을 가졌던 그 분.
“문헌정보학은 인문학의 기본이죠.”
내 전공을 알고 이어 말한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단박에 이 분이 좋았다.
독자와 최근작 『시간의 부드러운 손』을 읽고 느낌을 나눈다기에 시집을 들고 갔다. 한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기는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이후 몇 년 만이다. 어젯밤 읽는 내내 도무지 모를 내용이 아니라 얼마나 뿌듯하던지. 해석에 의지하지 않은 채 알 것 같은 느낌만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지 못하고 빌린 부끄러운 시집을 쭈뼛거리며 내밀었다. 어색함을 감추고자 부러 명랑한 체 하며. 교수님이라 부를까, 선생님이라 부를까 결국 두 호칭을 번갈아 섞었지만 그런 고민도 무의식중에 했더랬다.
가장 아련한 「핸드폰 가족」, 「강북행」 두 시를 꼽았다. 꼬마처럼 “선생님, 저는 이거랑 이거가 제일 좋았어요.”하면서. 선생님의 시는 꼭 일기 같다. 그러다 꼭 마지막 한두 문장이 마음을 울린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핸드폰 가족
현대시 강습회 1박 2일
첫날 저녁 때 교육원 숙소
휴게 코너 기둥 뒤에서 누군가
전화 거는 젊은 목소리
ㅡ 오늘은 엄마가 집에 없으니까
아빠하고 자야지
이 닦고 발 씻고…….
저 여성 강습생은 조그만 핸드폰 속에
온 가족을 넣고 다니는구나
부럽다 어리고 작아서 따뜻한 가정
강북행
인왕산 너머로 해가 지는 초저녁
꼬불꼬불 골목길 지나
통인동에서 적선동으로 이어지는 길
아직도 기와집 몇 채 비스듬히 서 있는 한길가에
커다란 간판을 단 한정식 집 생겼고
옛날에는 연인들이 구석자리에서 만나던 빵집
지금은 유리벽으로 환하게 안이 들여다보이는
카페로 바뀌었다
케이크와 콜라를 탁상에 놓고
장난치며 떠들어대는 소년 소녀 들
고등학교 시절 내 친구들과 너무나 닮아
나도 돋보기안경을 벗고 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었다
누구의 아들딸인가 묻고 싶었다
“이 핸드폰 가족 시, 아기자기하다고 모 회사에서 광고로 쓴대요. 난 아직 문자도 할 줄 모르는데. 이거 봐요. 벌써 몇 년째 구형이에요.”
시인은 한국말은 흔히 '-다.'로 끝나는 게 많아 딱딱한데 그래서 일부러 끝나지 않은 것 같다는 효과를 자주 쓴단다. 나로선 꼭 맞는 혹은 미처 몰랐던 비유 그 말 한 마디로 인식의 지평이 갑자기 확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 느낌을 애상이라 했더니 애환이라 고쳐준다. 그 애달픔에는 슬픔도 있지만 기쁨도 있는 거라고.
“강북에 가면 아직도 기와집이 많아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인왕산 밑에서 살았는데 그곳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어요. 골목이 오밀조밀하고……. 그러다 그 애들을 본 거에요.”
시적 화자와 시인이 일치하지 않다는 건 다들 잘 알거다. 문학 수업 때 꼭 한번 듣던 소리니까. 아이들 모습이 꼭 자기 고등학생 때 같았다는 생각, 그 한 문장이 자기 상황이고 나머진 시적 확장이 일어난 거다. 그렇게 시는 딱 그 한 순간의 일치에서 빚어진다.
시를 써보란다. 너털거리며 이미 일기를 시처럼 행갈이하며 쓴다고 했다. 어떤 느낌을 멋있는 한 줄로 표현하려 고생한다 했더니 얼마든지 시를 쓰고 찢어버리라 한다. 그러고선 활짝 웃는다. 관대하다.
옆에서 기다리는 다음 독자를 의식해 내가 던진 마지막 질문은 변변찮게도, 왜 시에 나무가 그리 많이 나오느냐였다.
“내가 마당이 있는 한 집에 30여 년 넘게 살았어요. 나무가 많이 있죠. 시에 나오는 나무가 다 우리 집 앞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게 다 무슨 나무인지 이름을 알고 있어요.”
중후한 목소리인 줄 알았더니 조금 새되고 높은 그 음성, 마치 손녀를 보듯 마주해준 미소가 벌써 그립다.
“여기 도서관엔 자주 와요? 나도 처음 와봤는데 넓고 깨끗하고 좋네. 앞으로도 여기 꼭 좀 자주 와요.”
‘선생님. 그건 걱정 마세요.’
덩달아 익살스러워진 얼굴, 우린 같이 흐뭇해졌다.
때론 책보다 살아있는 육성이 더 감동적이라는 거, 기대한 만큼 겪고 돌아섰다. 첫 행사지만 철저한 준비와 따뜻한 안내가 돋보인 시간, 진작 이만큼만 잘했어도 우리가 알고 있던 도서관은 많이 달라졌을 거다. 이제 도서관도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줄여갈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있다. 도서관은 실제 소통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신 있게 치러냈다는 자부심에 그치지 말고, 후속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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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격이 모호한 어줍잖은 글이나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 호응이 좋아서 다음 번에 또 이뤄지지 않을까 싶네요. ^^
우와!!!!!!!!! 너무 너무!! 가보고싶어요! 다음에는 일정 올려주세요!!
숨겨온 찬미님의 능력이 서서히 드러나는군요~ 어제 자기 전에 보고 깜짝 놀랐고, 오늘 다시 봐도 놀랍습니다. 전문가 냄새가 나는 포스팅인데요.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 말로만 들었는데 국내에서도 행사가 있었다니... 저도 조만간 꼭 참여해보고 싶네요. ^^
대출고객..ㅋㅋ 이렇게 좋은 이벤트를 혼자 다녀오시고 자랑하시는거죵~ 완젼 탐나는 경험이네요.. 찬미님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글이예요.. 실시간 대화 같아요.. 생생해.. 담엔 저도 델꼬가주세효~ 덕분에 좋은 정보 얻었습니당^^
흠~ 이찬미님은 보면 볼 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진가가 서서히 나타나는 진국같습니다^^ 아니 언제 이런데에 관심을 두고 있었데요?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있는 찬미님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뭉클해지는데요. 나는 어느기자가 썼나 했어요^^ 인터넷 방송으로 유명한(?) TNN의 이찬미 기자님였군요^." 홧팅!...찬미님이 평소에 느끼고 사람들에게 풀어낸 것들을 글로 표현하면 잘 할 것 같다 것에 동감합니다.
<윗글에서 이찬미님의 말씀으로 어록을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1.결국 삶을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관심과 관련 없는 일은 없었다.
...그것들을 점점 넓혀가며 유의미하게 엮어내야 된다.
2. 약한 그들과 약한 내가 만나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3. 고통스럽다고 자신을 몰아치지 않는 여유
4. 내가 살아가는데 경각심을 가지고 싶은 동기다
5. 접시에 코만 박고 사는 일상이라도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감당하면 삶을
... 넓게 가늠할 수 있다
6. 때론 책보다 살아있는 육성이 더 감동적이라는 거
7. 도서관은 실제 소통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호스피스가 말씀하신<독자가 무엇을 질문하느냐에 따라 같은 책은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와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서 저는 회원들에게 독후감을 쓸때 해설서를 보지말라고 그렇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해설서를 보는 순간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은 반감될 것이고, 그 해설서에 자꾸 의존하게 되며, 해설서를 보고 쓴 독후감들은 거의 비슷해집니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퍼오고, 거기에다 해설서 내용을 적당히 버무려서 편집까지 하는 최악의 상황도 벌어지죠... 자기만의 글은 어디있죠?
유치하고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자꾸 써보아야 사고력이 키워지고, 자신의 마음이 정리가 되며 논리적이 됩니다. 유치하고 거칠더라도 진솔하게 자기가 쓴 그 글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글이 됩니다.
자신의 느낌과 이야기를 먼저 쓰고나서 해설서를 보아야합니다. 자신의 글과 해설서를 비교 하면서 공부를 하면 됩니다. 해설서와 다르더라도 자신의 글을 수정하지 마십시요^^ 사고력의 확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책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해설서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책속의 상징들을 잘 해석해 놓았을까라는 생각 안드시나요?
그 해설서의 답을 원했다면 여러분의 독후감은 볼 필요도 없겠죠. 그해설서를 보면 되니까요. 해설서의 해석이나 답 보다도 그것과 자신의 글이 설령 다르더라도 여러분만의 해석, 여러분만의 느낌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또하나의 멋진 해설서가 될 수 있습니다... 찬미님 덕분에 명언을 듣게되어 제 야그를 횡설수설 했네요^^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