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지함과 몰이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예로 12세기 이후 서양에서는 노예가 사라졌다,혹은 있다고 해도 다른 종교를 가진 무슬림들만 노예로 부렸다.......
그러나 위의 지문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그럼 15세기부터 나타난 서양의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격꾼들은 모두 노예였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가인 존 녹스가 프랑스 군대에 잡혀가서프랑스의 갤리선에서 2년 동안 노를 젓는 노예로 일했다는 사실은 그럼 뭔가?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5826357
온갖 고문·협박에도 ‘성모 마리아 초상에 입 맞추라’는 개종요구 거부
“성모 마리아 초상에 입을 맞추어라.”
구교도인 프랑스인들은 갤리선의 노예로 잡혀온 스코틀랜드 개신교도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들은 개종의 표시로 성모 마리아에 입을 맞추라고 명령했다. 거부하면 모진 고문과 채찍을 가할 것이라는 협박도 곁들였다. (중략)
온갖 고문과 채찍의 협박에도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이 노예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John Knox)로 여겨진다. 그는 프랑스의 갤리선 ‘노트르담’에 끌려가 19개월 동안 족쇄에 묶인 노예로 지냈다.
갤리선의 노예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끔찍하다. 갤리선의 노예 생활이 어떤지는 영화 벤허를 떠올리면 된다. 영화 벤허에는 벤허가 배 밑창에서 족쇄에 묶인 채 둥둥 두드리는 북소리에 따라 고통스럽게 노를 젓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마 존 녹스도 벤허 신세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갤리선의 노예는 배 밑창에서 족쇄에 묶여 꼼짝도 못한 채 노만 저어야 했다. 힘이 들어 노를 제대로 젓지 못하면 곧바로 채찍이 날아왔다. 갤리선의 노예는 노예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1%B4_%EB%85%B9%EC%8A%A4
1549년 초반 낙스 일행은 영국 왕 에드워드 6세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석방되었다.
이것은 가장 참기 힘든 경험으로, 그는 이런 삶의 처참함과 잔인함을 통해, 그 육체에 큰 타격을 입고, 평생동안 건강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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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녹스는 19개월 동안 프랑스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지냈다.그렇다면 존 녹스가 유럽인이 아니라거나 혹은 이슬람교나 힌두교를 믿어서 노예가 되었던 것일까?당연히 아니다.비록 종파는 달랐지만 엄연한 기독교인이자 유럽인이었다.
그런데 뭐?유럽 기독교도들이 같은 기독교도들을 노예로 안 삼아?웃기는 거짓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갤리선의 노예로 지낸 사람이 존 녹스 하나 뿐이었을까?물론 아니었다.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는 갤리선 노예들을 대폭 늘렸다.그럼 갤리선 노예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http://youblue4.egloos.com/v/663023
루이 14세의 야심에 찬 계획을 위해서는 노 젓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어야 하였습니다. 콜베르는 그 해결책을 찾아냈데요. 그는 치안 판사들에게 왕의 뜻이라면서 “가능한 한 많은 범죄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사형 선고도 가급적 갤리선 노역형으로 바꾸라”고 하였죠. 범죄자들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 2세기 전에 이탈리아와 전쟁을 할 때도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들을 갤리선 노예로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이 14세와 그의 증손자 루이 15세의 통치 중에 갤리선으로 보낸 사람들의 수는 그 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였죠. 1680년부터 1748년 사이에 약 6만 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노 젓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갤리선 노예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까요?
갤리선으로 보낸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일반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살인범에서부터 좀도둑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죠. 밀수업자들도 그런 식의 처벌을 받았는데, 어떤 때는 노 젓는 일에 동원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밀수업자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도 갤리선에 강제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1666년에 마르세유에서 그들을 책임 맡고 있던 관리는 이렇게 썼습니다. “게으름뱅이들, 순례자들, ··· 집시들을 비롯한 부랑자들을 데려다가 갤리선을 전부 그런 자들로 채우기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 ··· 그러면 짐만 되는 불결한 것들을 세상에서 깨끗이 일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공공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집시들과 빈민들을 징발하기 시작했습니다. 1660년에는 프랑스에 있는 한 성지를 방문한 폴란드인 순례자들까지 강제 징집을 하게 되죠.(주: 아니, 기독교도들은 같은 신도들을 노예로 안 부린다면서? 그럼 이건 뭐야?)
또 다른 인력 동원 대상은 군대에서 탈영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붙잡히면 갤리선에서 종신 노역을 하도록 선고받았습니다. 도망치는 사람들은 코와 귀를 자르고, 프랑스 왕실의 백합 문장으로 뺨에 낙인을 찍고, 머리를 빡빡 밀었습니다. 1685년부터 1715년까지 루이 14세가 벌인 여러 전쟁 중에, 약 1만 7000명의 탈영병들을 갤리선으로 보냈죠.
http://youblue4.egloos.com/663037
이래도 유럽에서 12세기 이후 노예가 사라졌다거나 같은 기독교도를 노예로 안 부렸다는 낭설을 믿을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