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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모든 기준이자 본질, 중심, 근간, 더 나아가 전부는 말씀입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하고, 무엇보다 초대 교회 때나 2000년 교회사 전체에 있어서도 그러했으며, 진정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까지, 게다가 영생에 이르기까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자 법칙이며 원리이고 전제인 것입니다..
실상 아래의 본문과 결코 멀지 않은 때에만 해도 그러한 말씀을 끝까지 버리고 죄악들을 반복하며 가면 갈수록 더 심각해 졌던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말씀대로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망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은 애초에 아담과 하와 때부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 번 어김으로 인해 생각 이상의 문제와 결과들이 생겼는데, 진정 그들이 최초의 인류였기에 모든 인생들에 있어서의 그 위치와 역할 상, 또한 대표성과 중요성과 상징성이 있는 그 비중만큼 그렇게 작아 보이는 한 번이었지만 사실상 어쨌든 그 자신들 뿐 아니라 온 세상, 전 인류 가운데 죄와 진노와 심판들이 시작되게 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노아의 때에는 세상에 가득한 죄악들로 인해 세상 전체가 홍수 심판으로 넘치기까지 된 것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아래 본문에서처럼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인간적, 세상적으로 가장 어려울 수 있고, 여러 모양의 방해와 반발들, 위협과 위기들이 없을 수 없는 상황들 가운데에서도 아래 본문 및 역대하 29장을 참조하면 그 아버지인 아하스 왕과는 정반대로 모든 것을 감수하며 결단하고 오직 말씀대로 전적으로 각성하며 결단하고 실행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정화하고 온전한 속죄제와 번제와 유월절 등을 회복했으며, 온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서 우상과 산당들을 철저하게 제거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히스기야 왕을 너무나 잘 아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아래 본문과 이후를 보면 바로 그러한 믿음을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여러 모양으로 도우시고 책임지시며 더하시고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험악한 세상에서 닥치게 되는 풍파와 위기들에서도 하늘의 힘과 응답들로 승리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특별한 경우나 계획이 아닌 한 매사에 형통케 하셨고 기이한 일들까지도 보이신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래의 본문 뒤에 보면 남 유다를 침략하고 포위하며 예루살렘을 위태롭게 한 앗수르의 18만 5000명의 대군을 기도의 응답과 함께 하나님께서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하루 밤새 물리쳐 주시고 진멸케 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 이방 왕까지도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비참하게 죽게 하시는 등 상상도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역사들을 실제로 경험케 해 주시기도 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그러한 히스기야 왕의 기도와 경배들이 열납되며, 갈수록 복되고 형통케 되었을 뿐 아니라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정도로 강력하고 놀라운 응답과 이적들까지도 실제로 나타나고 생생하게 경험될 수 있었던 모든 이유이자 근거, 근본은 본질적으로 말씀, 말씀의 신앙과 각성들, 말씀대로의 결단과 몸부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분명한 것은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그 아버지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히스기야 왕이 그때 만일 반대로 죄와 세속들 가운데 있었다면 완전 달라졌을 것이고 얼마든지 더 비참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인 것이며, 실상 그러한 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그가 원하고 구하는 대로의 응답이나 승리나 복들이 아닌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의 시간까지 어떤 식으로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더 이상의 죄악들은 멈추게 하시고 하루라도 빨리 돌이킬 수 있게 하시기가 더 가깝고 확실했을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러한 사실과 실제들은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말씀이 아닌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을 돌이키지 않은 채 오히려 반복하는 가운데 드리는 예배들이나 기도들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으며, 말라기서 등을 참조하면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가증스러울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실상 오늘날 갈수록 더 세속화되고 죄악들이 심각해지며 이단, 사이비들이 득세함과 함께 점점 하늘의 힘과 역사와 부흥들이 희미해지는데 있어서도 그 원인과 근거들을 잘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 있어서의 날마다 순간마다의 하늘의 힘과 역사들의 실제와 경험들에 있어 그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 말씀의 갈망이 얼마나 중요하고 긴급하며, 어느 정도로 까지 직결되고 현실적 영향들이 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직결되신 하나님, 아니 아예 처음부터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그로 인한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 심지어는 아래 본문 앞의 열왕기하 5장에서는 시대나 나라들, 시간이나 장소들을 넘어 이방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나병의 치료를 위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말씀 그대로 순종했을 뿐인데도, 물론 나아만이 그렇게 말씀대로 하기까지 이스라엘 땅에서 포로로 잡혀 간 어린 여종을 통해서나 엘리사가 보낸 사람들을 통한 무례하고 황당해 보이는 말씀에 화가 난 나아만에게 다시 한 번 말씀대로 할 것을 요청했던 종들처럼 여러 모양의 전도와 증거와 합력 등이 있었다고 볼 수 있기도 한데..
아무튼 어떤 면에서는 정말 황당할 수 있었고 만화 같아 보이는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나아만은 결국 다름 아닌 말씀을 그대로 따랐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단지 그러한 사실만으로 그 자리에서 나병이 치료되고 피부가 어린 아이 것처럼 된 참 믿기 힘든 사건이 실제로 나타나고 경험되어진 것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일들 하나하나가 하나님 안에서, 특히 본질적으로는 말씀, 말씀의 신앙과 함께 하는 실제적 사건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결코 가상이 아님은 물론 참으로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것일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힘드신 일일 수도 없는 것이며, 심지어는 그 이상의 역사들도 능히 행하실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실상은 이미 말씀과 함께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도 행하셨으며,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도 말씀대로 능히 행하실 수 있는 분인 것인데..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일들마다 하나같이 다른 그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나타나고 경험되어 지며, 특히 제대로 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순종 가운데 온전하고 강렬하며 풍성하게 예비된 능력과 복과 실제들이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실 잘 통찰해 보면 그러한 역사들마다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특히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시고 그 무엇보다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권능의 실제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애초에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 곧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일들인 것이고, 게다가 그러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을 위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말씀대로 모두 다 이루신 구원에도 결코 별개일 수 없으며 전적으로 직결되고 완전히 합력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원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모든 이치와 역사들은 오늘날에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이며, 진정 오늘 우리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 있어서야 말로 조금도 다를 수 없는 신앙적 원리이자 영적인 세계인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영원까지도 동일하지 않으실 수 없는 분인 것입니다..
특히 오늘도 마찬가지로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과 함께, 말씀의 신앙과 함께 그러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생생하고 강렬하게 됨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모든 뜻과 계획들,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시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고 경험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야 말로 다름 아니라 바로 말씀의 영이신 것이며,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으로..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대로 다 행하시며 경험케 하시고 모두 이루심이 아닐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들에 있어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히스기야 왕과 같이 말씀을 그렇게 믿고 사모하며 가까이 하고 실천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증거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생생히 살아 역사하시고 응답하시며, 어느 정도로 큰 복으로 함께 하시고 예비하시는 것인지 생각 이상으로 생생하게 보고 경험하며 누리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시간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가정과 교회들, 모임과 영역들, 이 나라와 민족, 열방과 세대 전체에 있어 최우선해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은 즉시로, 최대한 빨리, 바로 지금이라도 자복하고 돌이키며, 그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바쁘더라도, 게다가 손해들이나 조롱들이 있으며 때로는 그 이상의 시련들이나 문제들도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우선해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사모하며 결단하고 몸부림치는 것만은 주저하거나 포기하거나 결코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되고, 오히려 반대로 갈수록 더 갈망하며 결단하고 몸부림치면서 치열한 말씀의 열정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한 사안이 아닐 수 없는 것인 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와 함께 아래 본문의 히스기야왕이나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에게서처럼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강력하며 기이하고 신령한 역사와 경험들, 무엇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은혜와 역사들, 곧 하나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는 능력들이 기다리고 예비되어 있다는 것이며, 진정 조금만 통찰해 봐도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이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이르기까지 생각 이상으로 깊이 직결된 사안이 아닐 수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인데..
실상 그러한 원리와 실제들이야 말로 다른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아래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고 싶고 마찬가지로 경험케 하시려는 뜻과 섭리인 것이자 어떤 면에서는 약속과 예비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왕하18:1~8)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12일(목)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