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총
M82A1 대물저격총
병사들이 전투 중 구조물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몸을 숨기는 행위는 설령 훈련을 시키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본능이다. 상대를 제압하기 전에 내가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모든 상황이 끝남을 의미하므로 전투 중 방어는 공격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총의 등장은 보호막을 관통하여 숨어있는 상대를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들어진 방어물은 칼이나 화살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총으로 공격당 할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공격 무기의 위력이 커질수록 당연히 이에 대응하는 방어용 장비도 더욱 단단하게 변하였다. 20세기 이후 전선의 주역이 되어버린 전차와 장갑차 같은 기갑장비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기갑장비는 공격용이지만 사실 그 어떤 무기보다 방어에 신경을 쓴 무기라 할 수 있다. 등장 당시부터 기갑장비는 어지간한 소화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방어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수단들이 속속 등장하였고 이중에는 병사들이 휴대하여 사용할 수 있는 소총 형태의 무기도 있었다.
- ▲ 제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사용한 PTRD-41 대전차소총 <출처 : http://wio.ru/>
원래 총의 목적은 살상이지만 장갑을 관통할 정도로 화력이 강하면 장비를 파괴하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파괴력이 클수록 반동이 커지고 그런 충격을 흡수하려면 총의 크기도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총은 보통의 사병이 휴대하여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무조건 크게 만들 수는 없다.
이러한 한계의 절충점에서 탄생한 소총이 바로 대물저격총이다. 흔히 제1차대전 말에 전차 공격용으로 탄생한 T-Gewehr를 효시로 보는데, 제2차대전을 거치며 다양한 대물저격총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팬저파우스트처럼 휴대가 편리한 대전차 무기가 속속 등장하면서 급속히 도태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전쟁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대물저격총의 필요성을 다시 증가시켰고 바로 이때 배럿 M82(Barrett M82)이 등장하였다.
다시 대두된 필요성
한때 사라졌다가 대물저격총이 다시 주목 받게 된 이유는 기동 장비의 증가 추세 때문이다. 현대는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한 개 단위 부대가 담당하는 작전 영역이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확대되었다. 당연히 기동력이 중요시되면서 기갑, 기계화부대가 아닌 일반 보병부대들도 차량화 된 장비의 보유가 늘어나게 되었다. 당연히 이를 공격할 필요성도 함께 증대되었다.
전쟁을 무조건 경제적 효율성만 따져서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목표물을 공격하는데 대전차무기를 마구 사용하는 것도 그리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경장갑차량을 공격하는데 대전차무기를 사용하여 정작 전차나 장갑차를 요격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상당한 낭패라 할 수 있다. 결국 일선의 보병들이 직접 들고 사용할 대물저격총의 필요성을 대두된 것이다.
- ▲ 미 해안경비대 기동대원이 사용 중인 M107 <출처 : http://en.wikipedia.org>
그런데 기존의 대물저격총은 너무 무겁고 반동이 강하여 사수들이 툭하면 부상당하고는 했다. 오죽하면 제2차대전 당시 14.5mm탄을 사용한 소련군의 PTRD-41 대전차소총은 엄청난 화력을 자랑했지만 "사람의 어깨는 2개여서 한 사람이 이 총을 2번밖에 쏘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이런 불편함은 제2차대전 후 대전차소총이 사라지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엄청난 화력과 사거리를 잊지 못한 많은 이들에 의해 대물저격총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그러했던 인물 중에 배럿(Ronnie Barrett)도 있었는데 그는 원래 사진 작가였다. 배럿은 우연히 경비정을 보게 되었는데 여기에 장착된 M2 중기관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취미로 사격을 즐겼던 그는 M2 중기관총의 12.7×99mm NATO탄을 사용하면 멋진 소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 ▲ M82의 기반이 된 12.7×99mm NATO탄과 여타 탄환을 비교한 사진. 흔히 50구경탄으로 불리며 주로 M2 중기관총용으로 사용된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
우연히 탄생한 걸작
호기심이 발동한 배럿은 집 창고에서 틈틈이 제작에 들어갔는데 이때만해도 단지 사거리가 긴 소총만 염두에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기관총 용도인 12.7mm탄은 워낙 강력하므로 이 탄을 사용하기로 한 이상 총의 무게와 반동 제어 문제와 씨름을 벌여야 했다. 바로 대물저격총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단점을 해결하여야 했던 것이었다.
- ▲ 최초 제작된 M82 원형 <출처 : http://en.wikipedia.org/>
- ▲ 개발자 로니 배럿. 취미 삼아 만든 총이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며 거부가 되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
- ▲ M82A1 대물저격총.
- 탄창의 크기만으로도 강력함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
비록 개발은 이처럼 우연히 이루어졌지만 완성품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것이라 확신한
배럿은 1982년 ‘배럿총기사’를 설립하고 대외 판매에 나섰다. 그는 최대 1,800미터에 이르는 유효사거리를 적극 어필하였고 알음알음 판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던 1989년, 스웨덴군 당국이 100정의 M82A1을 구매해 AG90이란 이름으로 제식화하면서 그 명성이 급속도로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1990년 발발한 걸프전에서 미 해병대가 이를 SASR(Special Applications Scoped Rifle)이란 명칭으로 125정을 구매하여 사용하면서 M82는 순식간 최고의 대물저격총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해병대는 기존 저격총인 M40A1보다 사거리가 길고 경장갑차량도 능히 격파할 수 있을 만큼 파괴력도 강한 M82가 광활한 사막에서 사용하기가 적합하다고 인정하였다.
너무나 강력한 소총
이처럼 실전 결과가 파다하게 퍼지자 미 육군과 공군도 특수부대용으로 구매하였고 곧이어 수많은 나라에서 주문이 쇄도하면서 M82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M82는 엄폐물 뒤에 숨어 있는 적을 사살하거나 경장갑차량을 타격하는 대물용 그리고 폭발물 제거(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등의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고 있다.
- ▲ 1991년 걸프전 당시 사용된 M82A1 <출처 : http://en.wikipedia.org>
- ▲ 아프가니스탄에 피병된 미 해병대 EOD요원이 폭발물 제거용으로 사용 중인 모습. <출처 : http://en.wikipedia.org/>
- ▲ 탄피 배출문제를 해결한 개량형인 M107을 사용 중인 미 육군 저격병. <출처 : http://en.wikipedia.org>
워낙 파괴력이 강력하여 사람을 직접 사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풍문도 있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M82에 저격당 한 시신은 그 형태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갈가리 찢겨 나간다.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인데 이는 총보다 12.7mm탄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손상 정도가 크다고 전쟁에서 공격 수단을 제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협정 같은 제한이 없다면 전쟁은 모든 살상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배럿이 이런 잔인한 모습을 원하였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총 자체가 원래 살상무기다 보니 단지 취미로만 사용할 수는 없다. 전쟁터에서는 M82에 의한 피해보다 더 무섭고 엄청난 현실이 바로 눈앞에서 난무한다. 어쩌면 무기와 잔혹함은 떼놓고 설명하기 어려운 명제라 할 수 있다.
제원
탄약 12.7×99mm NATO / 급탄 10발들이 박스탄창 / 작동방식 쇼트 리코일, 회전 노리쇠 / 총열 737mm / 전장 1448mm / 중량 12.9kg / 유효사거리 1,8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