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이나림
어깨에서 이는 바람을 신바람이라고 했던가. 세탁기를 처음 샀
을 때 세탁기를 쳐다만 봐도 신이 났고 살 맛 나는 세상이라고 좋
아했다. 큰 아이와 작은아이는 3년차인데도 두 아이를 키우는 일
은 여간 바쁜게 아니었다. 큰 아이를 재우고 빨래를 하다보면 작
은아이가 보채고 작은아이와 놀다보면 빨래가 밀려 기저귀가 모자
라기 일쑤다. 젖은 기저귀를 수건에 꾹꾹 밟아서 바람이 부는 창
가에 말려서 사용도 했지만 날 궂은날 야릇한 비린내는 늘 내 코를
자극했다.
그런데 세탁기는 나의 일손을 덜어주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버턴만 누르면 알아서 척척 빨래를 해주고 밤늦게 빨래를 빨아도
아침에는 옷을 입을 수 있음이 좋았고 편리함에 물들 때쯤 아예 걸
레까지도 세탁기에 빨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살맛이 난다며 좋아했던 세탁기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이다. 탈수를 해서 꺼낸 빨래가 서로 엉키어 옷 모양새
가 변하고 보푸라기가 이는가 하면 큰 아이가 사용하던 기저귀는
시 상해서 쭈욱-쭉 찢어지는게 아닌가.
새로 용량이 큰 세탁기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이불 빨래만큼은 커
다란 고무통에 넣고 발로 밟아서 빨았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이
불 빠는 일만큼은 남편의 몫이었다. 혼자서도 할 수는 있었지만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고 남편은 못 이기는 척 바지를 둥둥 걷고 이
불을 빨아 주었다. 그러나 이불을 빠는 세탁기를 구입함과 동시에
빨래통에서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남편의 사랑이 그야말로
비누 거품처럼 사라졌다. 또한 세탁기는 큰 것이 좋은 것만은 아
닌가보다. 우리 집 세탁기는 용량이 큰 탓인지 내 키가 작아서인
지 탈수한 빨래를 꺼낼 때면 까치발로 서고 그것도 모자라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빨래를 꺼내야하는 서글픔이 따른다.
그럴 땐 유년시절 어머니를 따라 빨래를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빨래터가 따로 있었다. 빨래터는
동네에서 2키로쯤 먼 곳에 있었는데 그곳의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일이 없고 여름엔 차고 겨울엔 미지근하다. 일찍 간 차례
대로 윗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깨끗한 물에서 빨래를
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빠는 빨래는 손수건이나 양말이 고작이었지만, 비누곽
을 들고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봄에는 쑥과 제비꽃을 따며 꿈을 키
웠고, 여름이면 납작돌을 주워 모아 방을 만들고 소꿉놀이를 하면
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는 연습을 했다. 소꿉놀이를 하다가 얼굴
이 더위에 달아오르면 개울 속으로 첨벙 들어가 송사리를 잡고,
러다 돌부리에 넘어져 옷이 젖으면 옷을 훌훌 벗어 조물조물 빨아
서 말려 입으며 그렇게 자랐다. 우리에겐 서서히 잊혀져 가는 빨
래 방망이, 방망이를 두드리지 않으면 빨래의 때가 지지 않는 줄로
만 알았었는데 빨래터는 스트레스 푸는 장소였음을 어른이 되서야
그 때 알게 되었다. 이웃집에 갓 시집온 새댁이 있었는데 남편에게는
전부터 사귀던 아가씨가 있었단다. 출근하는 남편의 뒤를 따라 빨래
터로 향할 때 우연히 그 아가씨를 오토바이에 태워 출근하는 것을
보고도 한마디 말을 못하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철없던
어린 나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떨어질 것 같
은 새댁은 힘껏 빨래 방망이만 두둘겼다. 결국 새댁은 서울로 이
사를 했고 일년에 한두번씩 시골에 오는 새댁은 빨래터가 가장 그
립다고 했다. 맑은 물에 방망이를 펑펑 두둘겨 빨래를 빨고 나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렸단다. 새댁이 빨래 방망이로 스트레스
를 풀었던 방법을 내 어이 짐작이나 했을까. 어쩌면 빨래 방망이
로 빨래를 펑펑 두드리며 깨끗한 물에 시집살이의 한을 때와 함께
흘려 보냈으리라.
지금도 속이 상한 일이 있으면 나는 손빨래를 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남이 들을세라 수돗물을 크게 틀어 놓고 빨래를 퍽퍽 비비
면서 엉엉 울어 버린다.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지
만 그래도 풀리지 않는 날은 시골 빨래터에 달려가서 방망이를 두
드리며 빨래를 하고 싶다. 일상에 찌든 때묻은 빨래를 한 다라이
이고 하루쯤 시골의 그 빨래터에 가서 훌훌 흘려 보내고 싶은 것은
그 만큼 유년시절이 그리운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에도 까치발을 서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
서 세탁통속에 빨래를 꺼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빨래터를 그리워 하면서도 빨래 통에 빨래를 꺼내게 될 것
이다.
1999. 5집
첫댓글 빨래를 한 다라이
이고 하루쯤 시골의 그 빨래터에 가서 훌훌 흘려 보내고 싶은 것은
그 만큼 유년시절이 그리운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에도 까치발을 서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
서 세탁통속에 빨래를 꺼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빨래터를 그리워 하면서도 빨래 통에 빨래를 꺼내게 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