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습니다. 동네 어귀에 매화가 소리도 없이 몰래 침공했습니다. 아직은 문틈으로 발만 살짝 밀어 넣듯 그렇게 살금살금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 너머 남촌에는 봄이 당당히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지난주 문득 남촌이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서울에서 앉아서 더디게 오는 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버선발로 남촌으로 찾아가 봄을 맞이하여야 겠습니다.
"나 찾다가 / 텃밭에 /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 예쁜 여자랑 손잡고 / 섬진강 봄물을 따라 / 매화 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봄 날>이라는
시가 어쩌면 제 심정과 그리도 닮았을까요. 무작정 섬진강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만사 제치고 바람 난 여자처럼 달려가고 싶습니다. 눈에는 봄꽃만
아른거립니다. 안 보면 병이 될 것 같습니다. 그저 혼자
가슴이 뜁니다.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남겨 놓고 달려나가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어제 일요일 아침 5시 저희 부부와 이어화 사장님 부부는 차를 타고 섬진강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곡성군 오곡면. 8시의 오곡면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습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섬진강 기차 마을에서 추억의 증기기관차를 타 보는 것입니다. 아침을 먹으려고 오곡면 이 길 저 길을 기웃거리지만, 아침밥을 하는
곳이 없습니다. 어렵사리 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16년째
이곳에서 삼기국밥집을 하는 식당 주인의 권유로 7,000원짜리 암뽕순대국밥을 시켰습니다. 우연히 찾은 식당인데 맛은 일품입니다. 배를 채우고 우리는 증기기관차를
타러 섬진강 기차마을로 향했습니다. 폐철길을 활용하여 관광상품화 한 증기기관차는 추억의 기차여행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두 부부가 마주 앉았습니다. 마치 4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이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보람 있습니다. 섬진강변을 따라 기차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아직
곡성의 섬진강에는 본격적으로 봄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강가의 버드나무는 물이 올라 연한 초록으로 색깔이
바뀌고 있고 강 가운데 솟아오른 바위에는 백로가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멍하니 창가의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열차 안이 시끌벅적 해집니다. "달걀이
왔어요. 달걀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수레를
끌고 오는 물건 판매원입니다. 그런데 복장이 특이합니다. 그
옛날 고교 시절 입었던 교련복입니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교련복이 무엇인지 모를 것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고등학교와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군사교육입니다. 교련복은
그 수업시간에 입던 일종의 유사 군복이지요. 1993년 교련 수업이 없어졌는데 이곳 증기기관차에는 여전히
교련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교련복 판매원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다녀요." "여기가 어디요." "곡성" "그러니께. 나는 곡성 농업고등학교. 여기 선도 완장에 줄 두 개 쳤으니까 2학년. 나이는 항상 열 일곱 살."
윤재길이라는 명찰을 찬 학생 판매원은 능청스럽게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판매하는 상품도
모두 그 시절 그 상품. 우리는 <뽀빠이>와 <존디기>를
샀습니다. 뽀빠이를 보니 <라면땅>이 생각났습니다.
가정역에서 내려 차를 타고 구례로 향했습니다. 19일부터 시작된 산수유 축제를 보러 간
것입니다. 구례가 가까워지니 길가 여기저기에 노란 산수유나무가 보입니다. 산수유나무가 자주 눈에 띌수록 그에 따라 차 속도도 느려졌습니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단지 일원에서 열리는 구례 산수유 꽃 축제. 올해가 17회라네요. 지리산 온천단지에 들어서자 차가 거북이걸음입니다. 이런 속도면 걷는 편이 훨씬 빠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나아갑니다. 마을 전체가 잔칫집입니다. 천막으로
음식점도 만들고 시골 장도 만들었습니다. 노란 꽃밭에 사람들이 빼곡합니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까요? 하긴 우리도 그들 중 하나이니까요. 차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는 수 없습니다. 외길인 이길 밖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지루함을 달래려고 네이버에서 산수유에 대해 이리저리 찾다가 유래를 찾았습니다. 산수유가
구례 산동에 들어온 시기는 대략 1,000년 전쯤으로 추정한답니다. 옛날
중국 산동성에 사는 한 처녀가 구례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를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구례
산동성의 지명도 중국 산동성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에서 어떤 연유로 이곳 구례까지 시집왔을까요. 1,000년 전
한국과 중국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중국 산동성과 한국 청해진, 지금의 완도를 중심으로 활약한 시대로부터 불과 100여 년 후이므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산동반도에서 처녀 한 명만
시집왔을까요. 아마도 많은 처녀들이 서로 오가며 시집을 갔겠지요. 혹시
지금 베트남 처녀가 한국으로 시집오는 것처럼 그렇게 온 것일 아닐까요.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운전을 해준 이 과장이 내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시면 산수유 마을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오래된 산수유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산수유 마을 가는 길은 주도로에서 벗어나 있어 한가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봄 소풍입니다. 한적한 비탈길을 걷고 있는데 멋지게 현대식으로 설계한 집이 두 채 보입니다. 마무리 공사 중입니다. 주인이 누구일까. 이런저런 의견이 나옵니다. 아마도 서울 생활에 싫증이 난 은퇴자
두 친구가 의기투합해서 지리산 자락에 자신들의 삶터를 만든 것 아닐까. 멋진 곳에서 은퇴자로 사는 것.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산수유 마을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마을 전체가 산수유나무
천지입니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로 접어듭니다. 반기는 사람은
없고 노란 산수유만 객을 맞이합니다. 여기도 산수유 저기도 산수유. 산수유나무는
더디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키도 크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키 한길 반 정도. 눈높이가 죄다 노란색입니다. 마을의 집들은
낡고 초라했지만 노란 산수유가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신 핸드폰을 들이대며 자연을 훔치기 바쁩니다. 어떻게 이런 마을이 만들어졌을까요. 이 계절 이 마을은 자연의 축복입니다. 산비탈 마을 안에 산수유 밭이 있습니다. 그 밭 속에 들어서니 보이는
것은 온통 산수유 꽃뿐입니다. "여기 서보세요."
" 아! 여기가 더 좋겠네요." 저는
모델들을 산수유밭에 세우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습니다. 집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동백꽃 나무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산수유의 노란색에 비하면 그저 그렇습니다. 동백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립니다. 워낙 산수유가 떼 지어 있어 동백
한그루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겨울에는 빨간 동백꽃만 요염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냈겠지만
봄에는 역시 노란색 산수유가 제격입니다. 산수유를 오래 보고 있으니 병아리도 생각나고 노란색 교복, 노란색 가방, 노란색 모자를 갖춰 입는 유치원생도 생각납니다. 모두 이런 느낌입니다. 앳되고 여리고 보호해 주고 싶은 그런 느낌
말입니다.
산수유에 취해 얼마를 있었는지 모릅니다. 흙으로 된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큰 아스팔트길이
나옵니다. 선경을 다녀온 것 같습니다. 오늘의 봄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이곳임이 분명합니다. 봄을 맞이하러 구례까지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만족한 표정들입니다. 이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그 이후의 볼거리는 덤입니다.
점심을 먹고, 한참을 차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예정했던
광양 매화꽃 축제는 엄두도 못 내고 방향을 틀어 임실 치즈 마을을 들렀다가 서울로 오는 길에 전주에서 전주비빔밥을 한 그릇 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로 오는 차 속에는 반가운 손님이 한 사람 더 탔습니다. <남도의 봄>입니다. 우리는 구례에 가서
<남도의 봄>을 데리고 서울로 왔습니다.
누군가 지난 주말 뭐했냐고 물으시면 이렇게 답하렵니다.
"섬진강 봄물을 따라 / 산수유 꽃 보러 갔다 온 줄 알그라."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6.3.21.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