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마도 관광 팸투어를 (주)한국드림관광(www.koreadreamtour.co.kr) 주관으로 한국관광협동조합(이사장 이정환) 회원사 및 종교단체 관계자와 기자단 등 37명을 초청하여 2016년 1월 25일(월)과 1월 26일(화) 1박2일간 실시하였다.
이번 팸투어는 일본 대마도에 있는 우리 선조들의 옛 발자취 탐방을 통해 얼을 되새기는 개기를 마련하고 (주)한국드림관광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시 해온 대마도속의 성지 순례와 관광 활성화를 위하여 마련되었다.
첫날은 09시 30분 오션플라워 호 부산 출항으로 1시간 10분 대마도 히타카츠 항 도착 후 입국수속▶ 고려문(高麗門, 조선통신사 영은문/ 차중)▶ 소학교 적(일본1호/ 차중)▶ 만제키바시(萬關橋, 러일의정서/ 38선)▶ 에보시타케 전망대(烏帽子岳), 대마도판 하롱베이)▶ 200∼300년 수령의 삼나무 숲길과 오랜된 신사의 하늘을 상징하는 토리이(鳥居) 와타즈미 신사(和多都美神社)▶ 엔쯔지(圓通寺: 고려 약사불/ 조선통신사 이예공적비(朝鮮通信使 李藝功績碑)/ 사찰 정문 오른쪽에 고려 범종(高麗 梵鐘)/ 보협인탑(寶篋印塔탑: 우리나라 국보 제209호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장송사(長松寺)의 고려 초조대장경(高麗 初雕大藏經)/ 백제인이 심은 1,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오우라(임진왜란/ 남사고/ 예언지▶ 한국까지 49.5㎞의 거리 한국전망대(韓國展望臺/ 부산조망/ 조선역관사 조난위령비(朝鮮譯官使 遭難慰靈碑)/ 대마도 삼고려 對馬島 三高麗▶ 미우다하마(일본 100선 해수욕장)▶ 도노자키(은혜의교 恩海義嶠/ 생명의샘
둘째날은 조선통신사 객관 화양관적(和陽貫籍, 국분사(國分寺)/ 유리전/ 매국노(賣國奴) 이완용(李完用) 친필(親筆) 비석)▶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북 태인에서 항일의병운동(抗日義兵運動)의 전개하였으나 순창에서 패하여 쓰시마섬에 유배되었다가 옥사한 면암 최익현선생 순국비(勉菴 崔益鉉先生 殉國碑)가 있는 수선사(修善寺: 수야마토츠안)/ 카스마쵸켄/ 수선(修善) 현판은 구한말 판서를 지낸 김학진의 친필/ 한국종(韓國鐘)▶ 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半井 桃水館)의 춘향전▶ 최익현 순국지/ 사무라이 거리와 저택▶ 나카무라지▶ 대마도에 가톨릭 씨를 뿌린 마리아신사. 백제의 후손을 모신 팔번궁 하치만궁 신사▶ 최익현선생 초당지(崔益鉉先生 草堂趾)▶ 대마 역사자료관(對馬歷史 民俗資料館): 조선통신사 행렬도(朝鮮通信使 行列圖) , 초량왜관도(草梁倭館圖) 등 다양한 유물과 쓰시마야마네꼬(산고양이), 쓰시마사슴, 물수리 등 천연기념물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대마도의 포경어업(고래잡이)의 기록이 고스란히 그림으로 제작되어 전시되고 있어 옛 대마도인들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다. 민속자료관 일대에는 "조선통신사비(朝鮮通信使碑)", "성신지교린비(誠信之交隣碑, 아메노모리호슈(雨森芳州, 1668-1755)선생이 주창한 "성신지교린"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역은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 대마도 번주 소우 타케유키(宗武志)백작과 결혼한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德惠翁主結婚記念碑)▶ 금석성유적(대마도판 왕자의 란)▶ 조선통신사 접우노지비(본토래도접반사)▶ 일본 최초 외국어 교육기관인 한글학교(한어사 (韓語司)/ 엄원한어학소(嚴原韓語學所)▶ 일본 목조와 다다미방 화재 방화벽▶ 1367년 당나라 유민 수용시설 표민옥적▶ 대마은혜교회 방문▶ 면세점 쇼핑 및 자유시간▶ 이즈하라항 13시 오션플라호 대마도 출항 2시간 10분 항해로 부산도착 후 입국수속 및 서울 출발로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 하치만궁 신사, 대마도 와타즈미신사, 매국노(賣國奴) 이완용(李完用) 친필(親筆) 비석 -
일본(日本) 쓰시마(對馬島)는 천혜의 깨끗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쓰시마 시청이 있는 이즈하라(嚴原)는 동경129도, 북위34도에 위치하고, 한국에서는 49.5km, 일본 후쿠오카까지는 137km로 한국이 훨씬 가깝다. 면적은 709㎢로 거제도의 1.5배, 울릉도의 10배이다. 동서 폭 18km, 남북 82km이다. 본 섬은 상∙하대마도 2개와 109개의 섬으로 이루어 졌으며 유인도(有人島)는 5개이다. 인구는 약 4만 5천명, 행정은 나가사키 현의 쓰시마 시(對馬市) 소속, 2군((二郡, 카미아가타 군(上縣郡)/ 시모아가타 군(下縣郡)) 6정(六町, 카미쓰시마 쵸(上對馬町)/ 카미아가타 쵸(上縣町)/ 미네 쵸(峰町)도요타마 쵸(豊玉町)/ 미쯔시마 쵸(美津島町)/ 이즈하라 쵸(嚴原町))으로 구성되어있다. 주요산업은 임업과 어업, 서비스업이다.
쓰시마(對馬市)의 특성(特性)은 섬 전체의 88%가 산지이며 주민들은 주로 임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즈하라가 제일 큰 도시이며 히타카츠 가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대마도의 인구 중 약 2만 명 정도가 이즈하라에 거주하 고 있다. 대마도는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대마도의 삼나무를 모두 베어내면 일 본인구가 약 4년간 벌어들이는 외화수익과 맞먹는다고 한다.
대마도의 어원(語原)은 원래 옛부터 한국에 소속된 땅으로 조선시대 중기까지 경상도에 포함되어 있었고 대마도의 영주는 조선의 벼슬을 받았다. 대마도라 부르는 설에 대해 여러 가지 유래설 들이 있지만 주된 세 가지 유래로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에 진도(津島: 일어로 쯔시마)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어원이 되어 대마도라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삼한인(옛 한민족)들이 두 개의 섬이라 하여 '두시마' 라 고 불렀다는 설, 일본사람들이 이 섬이 마치 두 마리 말이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대마(對馬) 즉 쓰시마라고 불렀다는 것이 어원이라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세 번째 설이다.
한국과 일본대만과 관계(韓日關係)는 대마도는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의 창구로서 정거장 역할을 한 곳 이였다. 1419년 이종무 장군이 정벌하여 대마도주에게 항복을 받은 곳, 왜구의 조선침략 근거지로서 우리에겐 악연, 조선의 민간외교관 안용복이 감금당한 곳, 을사조약을 반대한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 선생이 끌려가서 단식분사한 곳, 박제상 비, 조선역관사 비, 학봉 김성일 시비가 있는 곳, 임진왜란 전까지 친조선이었으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집권 후 완전히 친막부로 기울어졌음, 매년8월 첫째 토, 일요일 아리랑축제와 조선통신사 행렬이 이즈하라 시내에서 열리고 있다. (참고문헌: 랜드 발해투어 대표 문학박사 황백현 저 '대마도'/ 글과 사진: 고앵자)
▒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