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구두 (2)
이명진/수필가, 문학평론가
손님들은 언제나 몇 년 째 단골임을 상기시키며 친한 척 너스레를 떤다. 그 저변에는 특정한 공간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만남이기에 이해관계가 없어서 좋기도 하다. 하지만 간혹 주인은 서비스와 친절만 제공해야 최고이고, 손님은 그것을 이용해 부당한 요구만 하려하는 모순 아닌 모순이 악순환 되기도 한다. 경제 난국 시대에 외국에서 달러를 낭비해 가며 사들여온 구두 한 켤레 때문에 국산 제품 모두가 매도당하는 씁쓸함이 떫은 감을 씹었을 때와 같다. 바꾸어 신고 간 손님도 굳이 고의는 아니었을 텐데, 잃어버린 구두에 대한 미련은 괜스레 신발장 안에 갇혀 있는 내 구두들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이즈음 일상은 구두 신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신발장에는 검정색, 고동색, 자주색, 흰색, 민트색, 살색 등, 형형색색의 구두가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께서 운영하는 식당일을 도와 드리며 부터 구두를 신고 외출할 일이 사라져버렸다. 일상생활의 변화가 새삼 두렵기도 했지만, 환경은 적응하며 살게 마련이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생활한 지 수 년이 흘렀다. 대명리로 오기 전만 해도 슬리퍼를 신고는 동네 슈퍼까지 나가는 일이 전부였다. 이제는 은행이며 시장, 하물며 친구들 모임까지 신고 가는 전천후 외출화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식당 주방에서 항상 물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두어 달에 한 번씩 접착 부분이 떨어져 새로 사야만했다.
문득, 머릿속에서 사춘기 소녀 시절의 기억이 펄렁펄렁 날아다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 사정이 무척 어려웠던 여고 시절이었다. 하얀 칼라와 검정 스커트 교복에는 유난히 검은색 학생화 구두가 예뻐 보였다. 구두약으로 반짝반짝 광을 내 신고 다니는 친구들의 발등조차 아름다워 보여 내심 부러웠다. 그렇다고 힘들어 하는 부모님께 구두를 사달라며 조를 수도 없었다. 그저 끈을 묶는 파란 운동화가 찢어질까봐 등하교할 때만 아끼며 신고 다녔다. 발등 접히는 부분이 헤져서 양말이 드러날 때까지 신고 다녀야 했던 운동화는 말미잘이 먹이를 잡듯, 소녀 시절 내 자존심을 집어 삼켜 버렸다.
그래서 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구두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물건을 선택할 때면 망설이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는데 구두 가게에서만은 용감하고 충동적인 고객이 되었다. 한 계절에 아이들 신을 몇 켤레씩 사들이는 모양새 또한 소녀 시절 앙금이 가슴 밑바닥에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제 나이를 먹으며 다 부질없는 행동임을 깨달았다. 내 발에 꼭 맞는 편안한 구두 한 켤레만 있어도 세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한바탕 손님을 치르고 조금 한가해 졌다. 슬리퍼가 새고 있고, 젖은 양말을 갈아 신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전화벨을 타고 울려오는 젊은 남자의 조심스런 말투에 긴장이 앞섰다. 그는 얼마 전 우리 식당에서 구두를 잃어버렸다고 소란을 피웠던 아주머니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자신의 어머니가 구두 값으로 받아온 15만원 중 12만원을 온라인으로 송금하겠다고 했다. 사실인즉, 그 구두는 자신이 미국 출장을 다녀오며 국내에서 산 3만 원 짜리 모조품이었다며 연거푸 미안하다고 했다. 모조품을 진짜로 알고 어머니께서 억지를 부렸으니 마음이 편치 않아 전화를 했다는 아들의 이야기는 며칠 전 언짢았던 마음마저 봄눈이 녹아내리듯 사라지게 만들었다.
요즘과 같은 양심 부재의 시대에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젊은이가 있다니 자꾸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해묵은 구두, 낡은 구두, 빛바랜 구두, 모두를 꺼내어 버리기도 하고 손질도 해두며 내 마음 속 아집까지 닦아 내야 할 듯싶다. 괜스레 사들였던 여러 종류의 구두들 중 내 발에 꼭 맞고 편안한 한 켤레쯤은 남겨 놓았다 슬리퍼를 안신어도 좋은 날, 멋지게 신고 외출을 시도 해야지.
첫댓글 ㅎㅎㅎ 그 아드님 참 양심적이시네요...
그런일이 당연해야 하는데, 도리어 미담이 되는 현실이니...^^;;
그런데 어떻게 남의 신발을 신고 갈 수 있는지 참 이해가 안되네요...
신발을 신은 느낌이 다를텐데..ㅎㅎ
고의가 아니고 치매걸린 분이겠거니, 스스로 위안 삼봅니다..ㅎㅎ;;
고운글
가슴에 담어갑니다
봄의 햇살이 겨우네 언 가슴을 녹이는 삼 월의 오후
어깨를 펴고 허리를 젓히고
으젓하게 걸어보는 밟걸음
한 움큼의 햇살이가슴을 따스하게 뎦혀주니
흐뭇한 발자국
양지 바른 곳
매화꽃 봉우리가 통통한 얼굴로 비시시
궁남지 갯 버들 강아지는 몽실몽실 오동통통
울님
봄바람에 훈훈한 나들이
까치는 깍깍
산 비둘기는 구구구
신비로운 봄 속으로
화창한 삼월의 나들이
울님
두 손을 모아서
찍짝짝
화
이
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