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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 11:1-5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3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4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내용분해 : A. 암몬 사람 나하스의 길르앗 야베스 포위(1-3절)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치기 위해 포위함(1a절)
2. 야베스 거민들이 나하스에게 종주권 언약 체결을 제시함(1b절)
3. 나하스가 야베스 거민의 오른눈을 다 빼어야 언약하겠다고 하며
언약 체결 의사가 없음을 밝힘 (2절)
4. 야베스 장로들이 나하스에게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어
구원을 요청할 터이니, 이레간의 항복 유예 기간을 달라고 함(3절)
B. 사울의 기브아를 향한 야베스 거민들의 구원 요청 (4-5절)
1. 야베스의 사자가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 이르러 이상의 사실을 고하니
기브아 사람들이 소리 높여 욺(4절)
2.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까닭을 물음(5a절)
3. 기브아 사람들이 야베스 사자의 말을 전함 (5b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도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시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실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다 함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사무엘상 11:1-5절 말씀으로 암몬족 나하스의 야베스 포위와 기브아를 향한 야베스 거민의 구원 요청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무엘상은 사사 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최후의 사사였던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신 자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세움으로써, 사사 시대가 마감되고, 왕정이 개시되는 과도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서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사회 · 정치 체제가 지파 동맹 (Confederacy), 또는 부족 연합 체제에서 왕정 체제 (Monarchy) 로 이양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즉 본서는 사무엘을 끝으로 모세, 여호수아 시대는 물론, 사사 시대까지 계속 유지되어 온 신정 체제 (Theocracy) 가, 외형적으로는 왕정 체제로 바뀌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을 통해, 주권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택하시고, 또 그를 자신의 뜻에 대한 순종을 기준으로, 폐하거나 세우심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정(神政)과 그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선민(選民)으로서의 정통성은 계승 유지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서는 제1부 1-10장, 제2부 11:1-19 :17, 제3부 19:18-31:13 등, 전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엄밀한 것은 아니며, 다만 본서의 핵심 인물인 사무엘, 사울, 다윗 세 사람이 내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라 구분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하의 제1부인 제1-10장은 이스라엘 신정 왕국 탄생의 산파 역할을 수행했던 사무엘의 등장과 사역 및 이스라엘 정치 체제의 왕정 체제로의 이양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제2부 11:1-19:17 은,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 (the Judge) 를 중심으로 한, 지파 동맹 체제가 마감되고, 왕정 체제가 이스라엘에 도입되었으나,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할 신정적 왕으로서의 측면은 깊게 인식하지 아니하고, 그저 자기들 민족의 세속적 욕구를 채워줄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민족의 첫 왕으로 세움 받은 사울이, 자신은 물론 전민족과 더불어 처음에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홍하였으나, 나중에는 불순종함으로 실패한 사실 및 하나님께서 사울을 대신하여 자신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예비하신 것과 관련하여 보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서 제2부는 다시 크게 사울의 초기 통치와 실수에 대하여 다루는 전반부 11:1-15:35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왕 다윗의 퉁장에 대하여 다루는 후반부 16:1-19:17로 구분되어집니다. 그리고 전반부 11:1-15:35 은 다시 11:1-12:25과 13:1-15:35 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중 11:1-12:25은 미스바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출된 사울이,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왕으로 신임받고, 왕으로 공식 즉위하게 된 사건인. 암몬족 격퇴 사건과 사울의 즉위 및 왕정 개시에 즈음한, 사무엘의 설교를 보도합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11:1-15의 세 문단은,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백성들로부터 인정받게 된 결정적 사건인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한 암몬 족속을 격퇴한 사건과 사울의 공식 즉위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지하다시피, 이스라엘은 사울을 왕으로 선출하고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도 정함으로써, 민족적 숙원이었던 왕정 체제의 틀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사 시대의 체제에 길들여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지도력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골 청년으로서 혜성같이 등장하여, 왕으로 선출된 사울을 왕으로 따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백성들 중에는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하겠느냐’ 라고 하며, 사울을 멸시하는 자들도 있었던 것입니다(10:27). 말하자면 민심이 사울을 따라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울 역시, 왕으로의 즉위식도 갖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소와 같이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4.5절).
그런데 사울이 자신의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고대 국가에서는 왕의 지도력이 주로 전쟁을 통해 평가되었는데, 마침 암몬과의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암몬 족속 (Ammonites) 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둘째 딸 사이에서 난 아들의 자손들로 호전적이고 잔인해서, 늘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습니다(삿 3: 13). 이러한 암몬 족속이 요단 동편에 정착한 므낫세 지파에 속한,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한 것입니다(1-3절).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하나님의 신 (Spirit of God) 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사자를 보내어 순식간에 33 만의 군사를 소집하고, 그들을 이끌고 나아가 암몬 족속을 격퇴함으로써, 그의 카리스마와 군사적 통솔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6-11절). 이렇게 하여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지도력을 인정받고 길갈에서 왕으로 공식 즉위하게 되었으며(12-15절), 이것은 마침내 사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왕정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범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영적, 도덕적 타락은 간과한 채, 자신들의 시련의 원인을 외적 정치 체제에서만 찾아, 그들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으로 명백한 범죄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범죄하면 징계하기는 하십니다. 이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범죄할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징계는 하실지언정,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아니하시며, 그들이 진실로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구원하여 주십니다. 바로 여기에 성도가 소망이 사라진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할지라도,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있으며, 하나님을 찬미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일이 성령의 충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길르앗 야베스의 소식을 들을 때, 사울은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케 되자, 그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울에게서, 왕으로 선출되었으면서도 비류들의 멸시에 잠잠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삿일이나 해야 했던, 나약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변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로 군사들을 소집하여, 나하스의 암몬 군대를 단숨에 격파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으로 인한 변화의 모습은, 주의 제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까지는, 주를 부인하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망치기에 급급했습니다(마 26:56. 69-75), 그 러나 그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행 4: 19, 20),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충만이 필수적인 요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사울이 암몬을 격퇴함으로 그의 지도력이 드러나자, 무리들 중에는, 사울에게 아부하는 자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었을 당시, 그를 멸시했던 자들을 색출하여 응징하겠다고 합니다(12절), 그러나 사울은 그들을 응징하는 대신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3절), 이처럼 사울은 즉위 당시만 해도 겸손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만일 이 자세를 그대로만 유지하였다면,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즉위한 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부터, 즉위 당시의 초심(初心)을 버리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앞세우는 인본주의적 (人本 主義的) 자세를 갖게 됩니다. 이로써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많은 엽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왕으로 기억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처음 시작 할 때의 초심을 버리고 점차 교만해져, 실패하는 자로 남는 것은 사울의 전철올 밟는 것이라고 할수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12:1-25의 세 문단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를 중심으로 한, 지파 동맹 체제의 마감과 왕정 체제의 개시에 즈음한 사무엘의 설교를 다룹니다. 이러한 제12장의 사무엘의 셜교는 흔히 ‘사무엘의 고별 설교’ 로 불리는데, 이는 이후에도 사무엘이 제사장과 선지자로서는 계속 활약을 하기는 하지만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식 즉위함으로써, 사사 시대가 종언(終意)을 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실로 사무엘은 이스라엘 정치 체제 속에서 자신의 자리 매김을 확실히 해서, 물러나야 할 시기에 미련 없이 떠날 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이 왕위에 오르자, 마치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처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는 자세로, 역사 속에서의 자기의 위치와 사명에 순복하였던 것입니다. 정녕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이 나라와 교회에 이러한 인물이 드물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사무엘의 설교의 핵심은 백성들에게 역사 의식(歷史意識)을 고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끊임없는 구원의 은총과 대조되는 이스라엘의 줄기찬 배반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6-11 절). 또한 현재의 이스라엘이 이 구원의 하나님을 또다시 배반하고, 조상들의 어리석음을 쫓아 하나님 대신, 인간 왕을 통해 구원을 기대한 과오를 지적합니다(1 2-18절). 그리고 그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자신의 책망과 경고로 낙담한 백성들의 눈을 돌려, 앞을 내다보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떠한 원칙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 방향을 제시합니다. 즉 그는 백성과 왕이 다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축복을 받지만, 불순종 할 때에는 모두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거듭 제시한 것입니다(19-25절). 실로 사무엘은 예언자적 통찰력에서 비롯된 역사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주지하는 대로, 선민 이스라엘의 왕은 결코 열방의 왕과 같은 성격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왕권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이요, 새로운 형태의 통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인간 왕이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도 인간 왕보다 앞서,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했습니다. 이것이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시대와 지금은, 시간적으로 무려 3천 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칙과 기준에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사회가 달라지고, 정치 체제가 변하여도, 이 원칙과 기준운 동일합니다.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 여부가 축복과 저주의 절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분명한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그리고 세상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분명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12:20).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암몬 왕 나하스가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성읍인 길르앗 야베스를 치기 위하여 포위하게 되어지는데, 그러자 야베스 거민들은 종주권 계약을 맺을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나하스의 거부로 무산됩니다. 이에 야베스 거민들은 나하스에게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요청하기까지 이레의 항복 유예기간을 줄 것을 요청하여 사울이 있는 기브아를 향하여 구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암몬 왕 나하스가 야베스 거민들로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구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항복 유예 기간을 허락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실로서, 이는 아마도 나하스가 이스라엘의 전력을 매우 나약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 기회에 이스라엘 전체와 싸워 이김으로써, 한 성읍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를 복속시키고자 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하스가 이스라엘의 전력을 형편없는 것으로 파악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가 이스라엘 전체를 상대로 하여 전쟁을 하려고 하였다는 것은 일종의 엄청난 모험으로서, 우리는 여기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제 막,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출된 사울로 하여금,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하스의 교만과 탐욕스런 마음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건 "악의 씨앗을 뿌리면, 악의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암몬 족속이 야베스를 치기 위해, 포위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암몬 족속에 대하여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아들 벤암미의 후손입니다(창19:38). 그러나 암몬 족속의 조상인 벤암미는 롯이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통해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벤암미는 롯의 작은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근친 상간을 통해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벤암미는 일종의 악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벤암미의 후손인 암몬 족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암몬 족속을 악의 열매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그들이 근친 상간이라는 악한 방법으로 태어난 자의 후손들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들은 악의 열매라고 불릴 만큼 악을 자행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는 형제 민족이면서도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할 당시부터 사울 당시까지, 아니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습니다. 또 그들은 잔인하기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들은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대적 국가 사람들의 눈을 빼기도하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2절 ; 암1:13).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불살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롯과 그의 딸이 악의 씨앗을 뿌린 결과, 악의 쓴 뿌리와 열매가 맺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악의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악의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악의 씨앗을 뿌려놓고 의의 열매를 기대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연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콩을 심은 곳에는 반드시 콩이 나고, 팥을 심은 곳에는 반드시 팥이 나게 마련입니다. 엉겅퀴의 씨앗이 뿌려진 곳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곡식이 나지 않습니다. 엉겅퀴의 씨앗은 엉겅퀴를 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6:7). 그러므로 우리가 의의 열매를 거두려면 악의 씨앗이 아니라 의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악을 행하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연의 이치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특히 부모 중에는 자기는 그릇되게 행하면서 자녀만큼은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가 과연 바르게 자라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가 보고 배우는 것이 악한 것뿐인데 어떻게 그 아이가 바르게 자라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의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의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자신이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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