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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의 길아토스산 중턱에 깎아지른 벼랑처럼 서있는 시몬 베드로 수도원으로 한 동방정교회 수도자가 올라가고 있다. 밀짚 모자에 행낭 하나만을 짊어진 뒷모습은 보는 눈을 시원하게 한다. /채진수 성결대 교수 | |
6·25 당시 서울 근교에서 싸웠는데 당시에 입은 상흔(傷痕)을 보라면서 자신의 왼쪽 옆구리를 가리켰다. 지금도 한국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작은 크리스토’는 영적 쉼을 위해 디오니시우스 수도원으로 간다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몬 베드도 수도원으로 가는 나루터에서 하선하였다. 아토스의 20여 개 수도원 가운데서 베드로 수도원을 택한 것은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경사가 심한 험준한 바위 꼭대기에 건축된 특이한 수도원이란 점과 지하도서관의 장서가 유명한 곳이어서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검소한 외관과는 달리 견고하게 지어진 지하에 6만 여권의 희귀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일종의 신학교 역할을 하는 도서관이 있다.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일찍이 이곳까지 와서 기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기도원 뒷산에는 베드로가 기도했다는 동굴이 남아 있다. 이 수도원은 명칭 그대로 가파른 지세의 큰 반석(베드로·페트라) 위에다 힘들여 지은 것이 인상적이다.
나루터에서 높이 쳐다보이는 수도원은 금세 닿을 듯했으나 45도가 넘는 경사로를 오르는 데 1시간은 족히 걸렸다. 험준한 산길을 폭염 속에서 숨이 턱에 닿도록 올라가노라니 산중턱에 누군가가 막 베어놓은 나무막대기가 몇 개 있었다. 우리는 ‘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구나’ 하고 탄성을 지르며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그것에 의지하며 산행을 계속했다.
얼마큼 가고 있는데 뒤에서 모세 같은 풍모를 한 노(老) 수도사가 나타나서 함께 동행을 했다. 중간에 쉬면서 말없이 우리 손에 들려진 막대기를 빼앗더니 어깨에 메고 있던 낡은 행낭 속에서 칼을 꺼내 기이한 디자인으로 멋진 지팡이를 만들어 주었다. 알고 보니 이 노인은 60여 년 가까이 수도에 정진해 오신 이곳의 원로 수도사였다. 이곳에는 12세에 입산하여 80년간 수도하다가 몇 해 전 92세로 별세한 루마니아 수도사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를 친히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하면서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지을 뿐 일절 말씀이 없었다.
리는 사제의 지위에 있는 마카리오스 수도사의 안내로 간단히 점심을 대접받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수도원의 저녁 기도회를 참관했다. 그 자리에서 놀란 것은 산행을 인도해 준 노 수도사가 성경을 대표로 낭독하는 등 만도(晩禱)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일 외에는 거의 말씀이 없는 가라크티온 할아버지에게서 침묵의 수도 생활이 주는 고결한 향취를 맛볼 수 있었다.
▲ 수도사들의 유골 일생을 명상과 기도에 정진한 수도사들은 죽은 다음에 수도원 경내 묘원에 안장되고 시간이 더 흐르면 유골만 보존된다. | |
그날의 ‘만도’는 2시간 정도 지속되었으며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새벽기도는 무려 3시간 반 가까이 진행되었다. 나의 동료는 견디다 못해 몇 차례 뛰쳐나가려 했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우리를 안내한 마카리오스 사제수도사의 설명으로는 어떤 날은 14시간이 넘도록 기도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새벽 4시에 시작하여 저녁 만도까지 이어지는 마라톤 기도인 셈이다.
이곳 수도사들은 공식적인 하루 세 차례의 기도 예배와 주일 예배 외에는 거의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일대 일의 영적 교제와 기도에 정진하고 있다. 대체로 수도사들은 하루 평균 1~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할 뿐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와 명상과 노동에 투자하고 있단다. 식사는 아침을 금식하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검박한 채소와 빵으로 하고 있다.
그 많은 시간을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느냐는 질문에 마카리오스는 주로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사귀는 기도를 한다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즉 이들은 관상(觀想)과 합일(合一)에 이르는 고차원의 기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도사는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우리들의 세계 평화를 위한 작은 기도들이 모여서 이 세상의 역사는 지탱되고 있는 것”이라고.
부한 철학적 사색과 무수한 신들의 이야기가 숨쉬고 있는 나라 그리스. 그러면서도 사상의 틀과 신화의 도그마에 갇히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은 종교 국가가 그리스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며 수도원의 문을 나섰다.
■아토스산은
아토스는 그리스도교의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널리 알려진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 승천 후 사도들이 각자 복음을 전할 사역지를 정할 때 예수의 모친 마리아도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 그가 선택한 지역이 바로 칼키디케 반도 남단 아토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일명 ‘동정녀 마리아의 정원’이라고 일컬어진다. 아토스산은 AD 850년경부터 수도사들이 개별적으로 찾곤 했지만 수도원으로 본격적인 체계를 갖춘 것은 서기 963년 최초의 수도원인 대(大) 라우라(Great Laura)가 세워지면서부터다. 현재 이곳에는 이 밖에 세례 요한 수도원, 바울 수도원, 그리고리 수도원, 이베론 수도원, 디오니시우스 수도원 등 20개가 현존하고 있다. 한때는 40여개로 번창하여 8000여명의 수도사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수도사도 2000명 정도 남았다. |
첫댓글 저리 많으마 누구의 유골인지도 모르겠구먼여
제가 제일 궁금한것중의 하나가 '왜 유명한 기도원은 다 산중에 있느냐?' 입니다. 배불숭유 때문에 사찰들이 산중으로 갔다 하지만 불교가 융성 할때도 산중에다 사찰을 지었습니다. 풍수지리설을 말할수도 있겠지만 서양 역시 산중에 수도원들이 많습니다. 누가 혹시 아시는지요?
언젠가 한번 들은적이 있는데 아주 상세한 소개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마이스키 연주도 지깁니다. 진우님 수도원은 일반사회와는 격리 되어야 할것같은 선입견을 갖고있어서 인지 왜 산속에다가 세우는지를 미쳐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수도원은 들어갈때 거기서 한발짝도 안나간다는 서원을 하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선교를 주업으로하는 수도회도 있고 수도생활만 주업으로하는 수도회도 따로 있다지요. 유럽에는 도시안에 수도원도 많다고 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