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즘과 마조히즘 .............................. 마광수
남자와 여자의 성적(性的) 결합을 음(陰)과 양(陽)의 결합이라고 볼 때, 가장 이상적인 결합의 상태를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shism)의 결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하면, 변태성욕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어 누구나 입에 담기를 꺼려하고 누군가 조금만 가학적인 취향을 보이더라도 “저 사람, 사디스트군!” 하고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태계가 유지되려면 약육강식은 필연적인 법칙이고, 내가 남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사디스트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동물들 가운데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이다. 우리는 모든 동식물을 마음껏 잡아먹으며 식욕을 충족시키고 있고, 다른 동물은 하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는 버릇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음(陰)이란 받아들이는 것, 고요한 것, 죽음에 가까운 것의 상징이고, 양(陽)이란 돌진하는 것, 움직이는 것, 삶에의 욕구 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음의 성질은 마조히즘에 가깝고, 양의 성질은 사디즘에 가깝다. 따라서 남성이 남성다우려면 사디스트가 되어야 한고 여성이 여성다우려면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한다. 성기의 구조로 보아 남성은 항상 공격적이기 때문에 주로 사디스틱한 쾌감을 즐기고 여성은 항상 받아들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로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즐긴다.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은 절대로 변태성욕이 아니다. 사디즘이란 말을 낳게 한 프랑스 작가 사드의 작품은 ‘인간의 자유’의 표현으로 간주되어 프랑스 혁명기에 급진세력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마조히즘이란 말을 만든 장본인인 오스트리아 작가 자허마조흐는 인간의 성심리를 해부하여 현대 심리주의 문학의 길을 열어놓았다. 누구를 죽인다거나 하는 사디즘은 물론 변태이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디즘은 인간의 모든 성취욕이나 진취적 기상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욕구인 것이다. 또한 마조히즘 역시 모든 종교적 신앙들이 ‘복종의 쾌감’에 기초하는 마조히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심리이다. 교회 신도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성은 역시 마조히스트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남성이 지배욕에 넘친 사디스트이고 여성이 복종심과 포용력을 가진 마조히스트일 때 그 커플의 성생활은 행복하다. 그러나 둘 다 사디스트이거나 둘 다 마조히스트라면 곤란하다. 남자와 여자가 거꾸로 되어, 여자가 사디스트인 경우도 종종 있는데, 비록 남자가 남들에겐 ‘공처가’라고 놀림을 받더라도 그 커플은 그런 대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성기의 구조상 역시 여성은 마조히스트라야 행복해진다.
요즘은 여성해방운동이니 뭐니 해서 여성 사디스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남성들이 다 마조히스트가 된다면 별문제가 없겠으나, 남성들은 대부분 사디스트일 수밖에 없으니 탈이다. 노예와 같은 상태로써 얻어지는 황홀감, 그것은 사디스트의 쾌감에 견줄 바가 아니라는 것을 여성들이 명심해주면 좋겠다. 마조히스트는 책임과 의무가 없다. 언제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남성은 사디스트라서 일시적으로는 의기양양할지 모르지만, 그 부담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결국 여성들보다 10년은 먼저 죽는다.
(마광수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