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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병산서원 새벽 4시쯤집을 나섰습니다. 새벽에 떠나는 여행은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습니다. 교통체증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숙박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고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둘러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곤히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차에 누이고 그 옆에 생수 두 병에 김밥 네 줄이 담겨진 봉지를 올려 놓았습니다. 오늘의 양식입니다. 고속도로가 좋긴 좋네요. 3시간만에 안동을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예전엔 5시간 걸린 거리였거든요.
안동에 도착하니 안개가 자욱합니다. 가끔 세상이 자욱한 안개로 덮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아득한 세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양반의 고장 안동은 갈 곳이 많아 어느 곳부터 둘러봐야 할지 고민해야하는 곳중에 하나지요. 그러나 저는 주저 없이 병산서원으로 향합니다. 작년 안동을 방문했을 때는 하회마을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 멋진 한옥이 숙박지가 되고 식당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삭이게 해준 곳이 병산서원이었습니다. 해 질 무렵 만대루 기둥에 올라서서 바라본 병산과 낙동강의 풍경은 정말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습니다. 새벽의 병산서원의 모습은 어떨까? 1년 동안 늘 마음속에 품었다가 이제서야 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안개를 헤치고 병산서원에 올랐습니다. 짚으로 둘러친 '머슴뒷간'이 가장 먼저 반갑니다. 서원에서 일하던 하인들이 사용했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겠지요. 달팽이 굴처럼 빙빙 돌아가면 뒷간이 나옵지요. 문도 필요 없고 냄새도 위로 향하고...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이자 디자인입니다. 대신 비가 오면 응가를 참거나 고스란히 맞아야 합니다. 서원 담장과 붙어있는 유생들 화장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답니다. 서원지기 아저씨는 저 멀리서 나무를 패고 있습니다. 만약 서원 문이 닫혀 있으면 고직사로 쳐들어 갈려고 작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작년에 아저씨와 만대루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병산서원을 사랑하고 가꾸어왔는지 마음으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서는데 갑자기 그가 집을 달려가 처마 밑에 말리고 있는 곶감을 하나 따서 제 손에 넣어 주시더라구요. "제가 드리는 정입니더." 저는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곶감을 먹기 아까워 오랫동안 책상에 놓고 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1년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계십니다. 만대루나 입교당에 올라가도 먼지가 하나 없더군요. 이른 새벽에 올라가 걸레질 하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병산서원은 전통을 배우려는 사람이 와야지 놀려고 오는 사람이 오면 큰일난니더... " 아저씨가 서원을 지키며 살아가는 '고직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전형적인 안동의 'ㅁ' 건물입니다. 유생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제사를 준비하는 곳답게 부엌과 창고, 헛간은 넓은 대신 그 흔한 사랑채도 없답니다. 그저 공부 잘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의 공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병산서원은 원래 '풍악서당'이라 하여 조선 명종에 창건되었고 선조 때 이곳으로 옮겼고 다시 광해군 때 서애 유성룡선생의 업적과 학덕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뜻을 받들어 이렇게 사당을 지었답니다. 병산서원 가장 위쪽은 사당 존덕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곳만은 화려한 단청을 했고, 태극과 팔괴까지 그려 놓았습니다. 이곳 계단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세요. 건물들의 지붕선과 낙동강이 함께 흘러가고 있답니다. 퇴계 이황은 두 명의 애제자를 두었답니다. 바로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성일입니다. 두 분 모두 안동에서 추앙 받는 인물로 커나갑니다. 서애는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여 나라를 구했고, 학봉은 통신사가 되어 일본으로 갔다가 일본의 침략의사가 없다고 보고하여 늘 마음의 부담을 가진 분입니다.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의병장이 되어 싸웁니다. 진주성 싸움에서 승리하고 장렬하게 전사하게 됩니다. 죽어서 명예를 지킨 셈이지요. 존덕정 아래에 장판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변엔 배롱나무가 포근하게 감싸고 있네요. 요즈음도 마찬가지지만 지식인들에게는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책이겠지요. 당시의 책은 거의 필사본이어서 오자와 탈자가 많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답니다. 대신 정확한 목판본은 큰 인기를 얻었겠지요. 그러니 그 원판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서원의 재산목록 1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작은 서원은 명문서원에 간청해 인쇄를 허락 받을 정도니까요.배우는 학생마저 접근을 막기 위해 강당 뒷편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한가운데 입교당 건물이 서있습니다. 학생들은 마루에 앉아 보름에 한번씩 시험을 치루었다고 합니다. 시험장이 너무 예쁘답니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워낙 아름다운 곳이라서 어제까지 외운 것도 도 다 까먹을 겁니다. 동쪽은 원장실이 있는 곳이지요. 오늘날로 치면 대학 총장님 집무실이랍니다. 퇴칸까지 마련되어 있어 더욱 권위가 서는 방입니다. 서쪽은 부원장이 머무는 곳이지요. 입교당을 중심으로 동재, 서재가 마주하고 있습니다. 동재는 상급학생이, 서재는 하급생이 수학한답니다. 자연과 벗하며 글을 읽고 토론을 했겠지요. 동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 좁은 방에 10여명이 누워 잔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거립니다. 하긴 방이 넓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동재의 창문을 열면 나무가 한그루 보입니다. 후배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일부로 심어 놓은 것 같습니다. 천장도 한번 보십시요. 서까레가 천덕꾸러기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병산서원 정문인 복례문입니다 만대루를 막을 만큼 크고 우렁찹니다..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병산서원 만대루에 올랐습니다. 하얀 운무가 앞을 가립니다. 이걸 보려고 수백리를 달려왔는데 그냥 갈 수 있겠습니까? 기다렸습니다. 몇 년전 백두산에 올랐을 때도 운무에 가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일행이 이미 내려갔지만.. 저는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뛰어내려 갈려고 작정을 하구요. 그리고 전 보았습니다. 운무가 걷히고...시리도록 푸른 백두산 천지를.... 병산서원도 같은 심정이겠지요. 기다리면서 누각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튼튼한 통나무 계단 두 개가 만대루에 오르는 유일한 통로랍니다. 참 예쁘게 깎았습니다. 천장 모서리를 보세요. 얇은 서까레가 부채살처럼 퍼졌습니다. 그 곳엔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합니다. 난간의 문양도 보십시요.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난 곳에 3개의 기하학적인 구멍이 뚫렸습니다.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미를 볼 수 있습니다. 만대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자연스레 휘어졌습니다. 절제와 원칙을 중시하는 유교건축물에 이런 여유와 능청스러움이 깔려 있습니다. 1시간을 훨씬 넘게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강변으로 달려갔습니다. 두 여인이 물안개를 헤치며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요? 서서히 안개가 걷힙니다.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낙동강이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병풍 절벽 병산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 사찰 건물은 바깥에서 그 모습을 보고 윤곽을 확인 할 수 있지만 서원은 이렇게 철옹성처럼 감춰지고 있습니다. 사찰은 자연과 일체를 꾀하고 있지만 유교건축물은 이렇게 폐쇄적이고 인위적이기 때문이지요. 복례문을 거쳐 만대루를 통해 입교당까지 올라갔습니다. 입교당 한가운데 원장자리가 가장 명당자리거든요. 7개의 기둥이 병풍 같은 산과 강을 쪼개어 놓고 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영상이 담긴 필름이 지나가고 있는 듯 합니다. 그 쪼개진 영상을 다시 조합하여 큰 그림으로 만들어 보세요. 끊임없이 돌던 필름이 그만 멈추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진 다른 세계를 느끼실 겁니다. 이런 아름다움 때문에 순레자들은 병산서원을 찾는가 봅니다. 방금 잠에서 깨어 아침공기에 바들바들 떨던 정수가 양지에 따뜻해진 마루에 앉아 샐쭉 웃고 있습니다. 예쁜 풍경화를 보고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성수는 엄마 등에 기대어 이 신비로운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끔 하는 것도 부모의 기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가족이 만대루에 둘러 앉았습니다. 엄마가 답사책을 읽어주고 가족들은 고개를 돌려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네요. 그들은 난간에 기대어 병산서원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병산과 낙동강에 등을 받치고 미를 찾아가고 있답니다. 두 시간도 넘게 지체 했기에 이젠 병산서원을 떠나야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살며시 열려진 복례문을 거쳐 떠나갑니다. 왠지 시집살이 시달리다가 친정으로 쫒겨가는 모습 처럼 보입니다. 왠 햇볕이 이렇게 얄미운지...하하 "정수엄마..평소에 잘혀.." 차는 비포장 길을 터덜터덜 걷습니다. 흙길 사각삭각 밟는 느낌이 전해집니다. 감자기 강은철의 '삼포가는 길'이란 노래가 생각납니다. 한참을 가다보면 숨이 꽉 막힐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나옵니다. 식구들 모두 감탄사를 떠뜨립니다. "와-" 코스모스길이 너무 예뻐 차를 세웠습니다. 밝은 코스모스와 풍성한 비단들녁이 너무나 잘 어울리네요. 작년 가을 안동을 지나쳤을 때지요. 정수가 배고프다고 해서 길가에 있는 허름한 통닭집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달라고 애걸복걸 했건만.... "안 팔면 안 팔았지.. 맛 없는 걸 팔 수 없십니더.." 주인아주머니의 말씀이 오랫동안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바로 안동을 이끌어간 정신이 아닐까요? 전국을 다니면서 지갑 속의 빛바랜 사진만큼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안동 땅도 그런 곳입니다. 풍광도 아름답지만 소중한 정신세계가 함께 깃들었기에 더욱 아름다운 곳입니다. 제 자식들이 몇 십년 후 안동에 갔을 때 이 아빠가 느꼈던 감동을 고스란히 느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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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원은 다른곳과 달라 모든게 다 다르지요 분위기부터 !! 재미있는것은 서원 앞과 주위에 술집이 많았다는데 그 사연인즉 모두 들어보면 참 재미있을터 ^^* 공부만하다가 !!공부만 하기엔 !! 뭐 그런 사연일래나 !! 한옥의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안개도 너무 아름다워요 ^^*
항상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아이들 해맑은 모습까지...넉넉한 가을 되세요^^
자료 감사합니다.
_()_이리도 좋은 여행을 힘하나들이지 않고 갔다 왔군요,새벽의 찬공기와 흩어지는 안개속에서 서서히 자태를 들어내는 우리산천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_()_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과 사진...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음...............ㅎㅎ 너무 좋은데요..ㅎㅎ 잘 봤나이다..또한 알찬내용도..ㅎㅎ 음.....노래도 좋은데요..삼포로 가는길...마음이 포근해오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