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직지’에 담긴 의미와 뒷이야기
직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서 세계에 첫 소개
백운화상 상·하권 편저…1377년 제자들이 스승 기리려 금속활자로 간행
부처님과 조사들의 설법 요점 집약…선불교 최고 교과서로 평가 받아
쁠랑시 주한 佛 대리공사 시절 수집…베베르 손자 佛 국립도서관 기증
직지 표지에 이 책을 수집한 꼴랭드 쁠랑시가“주조된 글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진 것 중에 가장 오래된 한국 책. 연대=1377 이라고 자필로 기록했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책’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한 도록에 직지심경으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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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직지』를 편저한 경한(1298~1374) 스님의 호는 백운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불법을 익히고, 중국의 석옥청공화상과 인도의 지공화상에게 법을 물어 도를 깨달았다.
백운화상은 제자들에게 선법을 가르치기 위해 제자 법린의 도움을 받아 75세에 노안을 비벼가며 ‘선문염송집’ 등의 문헌을 섭렵, 과거 일곱 부처로부터 인도와 중국의 수많은 고승이 깨달았던 순간을 노래하고, 그 깨친 깊은 뜻을 전하는 글들을 모아 상·하권으로 편저했다.
백운화상이 입적한 후 스승의 가르침과 뜻을 기리기 위해 제자인 석찬과 달잠이 1377년 7월에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비구니 묘덕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했다.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내용인가?
흥덕사에서 간행한 금속활자본 『직지』 상권은 현재 전하지 않고, 하권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종이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사용했다. 표지는 조선 시대에 다시 만들었으며, 다섯 개의 구멍을 뚫고, 붉은 실로 꿰매는 ‘오침안정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인쇄연도(1377년)와 인쇄장소(청주 흥덕사), 인쇄방법(금속활자)이 기록돼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부처님과 조사들이 마음의 본체를 똑바로 가르쳐 보인 설법의 중요한 절목들을 간추려 수록했다. 즉, 팔만대장경과 수많은 조사어록의 요점을 집약한 선불교에 있어서 최고의 교과서로 평가된다.
※『직지』가 프랑스로 간 까닭은?
?직지의 가치를 알고 수집한 꼴랭드 쁠랑시와 그의 한국인 아내 이진.
?직지가 최초로 서양인에 모습을 선보였던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한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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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에 조불통상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1887년에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꼴랭드 쁠랑시가 임명됐다. 그는 조선에 머물면서 같이 근무하던 모리스 꾸랑과 함께 한국 서적 3240종에 대한 해제와 목록을 작성해 ‘조선서지’를 3권으로 간행했다.
한편, 쁠랑시가 조선에 초대 대리공사로 머무는 동안에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는데 조선의 여인 이진(심)이었다. 외교관으로서 고종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해 춤추는 궁중 무희에게 반하게 돼 고종으로부터 하사(?)를 받아 프랑스에서 결혼하게 된다. 이진은 향수병에 젖어 점점 야위게 돼 쁠랑시는 이진을 위해 다시 자원하여 3대 공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러나 이진이 귀국한 후 외교관의 부인이 천민이라는 조선 시대 신분사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남편을 위해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쁠랑시는 고종에게 1900년에 개최되는 파리만국박람회에 조선이 참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박람회장에 한국관을 짓고 자신이 수집한 『직지』를 비롯하여 각종 문화재를 전시했다. 무엇보다도 쁠랑시는 『직지』를 수집해 책의 표지에 “주조된 글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진 것 중에 가장 오래된 한국 책. 연대는 1377년”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자기 부인의 나라 조선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박람회 때 세워진 건축물로 현재 남아 있는 파리의 상징물이 에펠탑이다. 전시가 끝난 후 전시품들은 기메박물관 등에 기증되었으며, 자신이 수집한 고서 581종에 대해서는 꾸랑에게 ‘조선서지’ 부록편으로 발간토록 했다. 여기에는 직지가 ‘1377년 청주목외 흥덕사에서 주조된 활자로 인쇄되었다’고 소개돼 있다.
쁠랑시의 소장품은 두르오 경매장에서 883종이 경매됐다. 그중에 700여 종이 한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고서는 대부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들였으나, 『직지』는 180프랑에 앙리 베베르가 사들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손자인 마땡이 1952년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1972년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도서의 해’를 맞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책’이란 제목으로 전시회가 개최될 때 직지가 출품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목이 쏠렸다. 그 이유는 당시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42행 성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알고 있었으나, 약 70여 년 앞서 한국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됐다는 역사적 사실에 세계인들이 깜짝 놀라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전시회가 끝나고 박병선 박사가 『직지』 흑백사진을 가지고 귀국하여 국회도서관에 감정을 의뢰했다. 관장을 포함하여 세 명이 같은 책의 사진을 가지고 감정한 결과, 목판본, 목활자본, 그리고 금속활자본 등 의견이 각각 달랐다. 이에 20여 명의 관련학자들이 다시 감정하여 금속활자본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직지』 사진을 문화공보부에서 구매하고 문화재관리국에서 1973년에 영인본을 발간했다. 이 영인본이 1985년에 『직지』의 간행처인 청주 흥덕사지를 찾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맑고 아름다운 클래식 10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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