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집밥 가는 길
유월 초순 화요일이다. 하지가 스무 날 남았으니 낮이 길어지고 있는 때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나선 산책 코스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옥포 방면 연사 버스정류소에서 고현을 출발해 능포로 가는 11번을 탔다. 통학버스를 이용 않고 시내버스로 하교하는 우리 학생들을 몇몇 만났다. 송정 고갯마루를 넘으니 옥포였고, 대우조선을 지난 두모고개를 넘으니 장승포였다.
지심도로 가는 유람선이 뜨는 장승포는 규모가 제법 큰 어항이다. 늦은 봄에서 초여름 이맘때는 멸치잡이 선단이 끌어올린 생멸치가 많이 부려지지 싶다. 이어 여름이면 장어잡이 통발 어선이 출항하는 어업 전진기지다. 부두 수협 경매장에서 비치호텔을 지나 장승포 해안로를 따라 올랐다. 장승포로 나가 여러 차례 걸었던 산책길이다. 비 오던 날은 우산을 받쳐 걷기도 했다.
퇴근 후라도 아직 해가 남은 때라 햇살이 비쳤다. 포구 바깥은 대한해협의 검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는 밝은 햇살이 비치는 낮이면 본색을 드러냈다. 포구 바깥 지심도가 악어 등처럼 누워 있었다. 모항으로 돌아오는 작은 어선이 물살을 가르면서 달려왔다. 주중 머무는 연초 연사는 바다를 접하지 않았지만 시내버스로 얼마간 이동해 발품을 팔면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다.
거제 일대 해안은 곳곳이 트레킹하기에 좋다. 그제 주말은 남부면 홍포 여차 무지개길을 걸었다. 학동이나 해금강으로 나가도 좋았다. 와현에서 서이말등대 가는 길로 들어도 숲길이 좋고 공곶이 화원으로 들릴 수 있었다. 장승포로 나가면 능포에서 양지암등대 가는 길과 함께 해안 산책로도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었다. 가로수 벚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여름 뙤약볕에도 상관없었다.
장승포 해안 산책로는 아스팔트 포장길이 나란히 있으나 평소 통행하는 차량이 드물었다. 주택지와 거리를 둔 외진 곳이라 오가는 차량들이 없었다. 장승포와 옥수동과 능포동에 사는 사람들이 산책하러 나오는 곳이다. 산책로는 철 따라 꽃이 피었다. 동백꽃이 떨어질 때 벚꽃이 화사했다. 여름에 보라색으로 수를 놓을 수국이 꽃망울을 달고 나왔다. 초가을엔 꽃무릇이 아름다웠다.
산책로 곁에는 자동찻길이 나란히 있으나 오가는 차량이 적어 매연이나 소음이 없어 쾌적했다. 우 전방으로는 탁 트인 시야에 바다가 펼쳐졌다. 간간이 부산 신항으로 드나드는 컨테이너 운반선이 지나갔다. 가스 운반선인지 모를 육중한 선박이 보였다. 연안 고기잡이를 하는 작은 배들도 점점이 떠 있었다. 절벽 아래는 어떻게 타고 내려갔는지 갯바위 낚시꾼들이 아찔하게 보였다.
하루가 저무는 어스름 해질 무렵 바람을 쐬며 산책을 나온 이들이 몇몇 스쳐 지나갔다. 옥수동이나 능포에 살거나 장승포동 사는 이들일 테다. 그들은 매일같이 아침저녁 멋진 풍광을 완상하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생활권이 다른 곳에서 일부러 찾아가는 이는 아주 드문 경우였다. 내가 장승포에 산다면 새벽에 일어나 해안로 산책부터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싶다.
해안 산책로가 끝난 지점에서 저 멀리 거가대교 연륙 구간 사장교가 드러났다. 가덕도와 그 뒤 몰운대까지 아스라했다. 능포 너머 대금산도 보였다. 산책로에서 양지암 조각공원으로 가는 길이 이어져 산등선을 따라 가면 등대에 닿는다. 날이 어두워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그곳까지 갈 수는 있으나 옥수동으로 내려섰다. 저녁밥을 들고 와실로 돌아가려니 시간이 빠듯할 듯했다.
빌라 골목을 지나 장승포 시외버스터미널 뒤 옥수 재래시장으로 갔다. 코로나로 시장 경기는 뚝 쳐져 있었다. 몇 차례 들린 ‘옥수동집밥’을 찾았다. ‘밥집’이 아닌 ‘집밥’이 그리워서다. 바깥양반은 내 또래고 안주인은 좀 더 젊어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맛깔스런 밑반찬에 추어탕을 들었다. 맑은 술을 반주로 곁들였다. 내 한 끼 식사가 지역경제 조금이나 도움이 되려나. 20.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