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동(南部洞)
경상북도 경산시 중심의 남쪽에 있는 행정동. 5개의 법정동을 관할한다.
면적 3.74㎢. 인구 1만 7667명(2008)이다.
동쪽은 동부동, 서쪽은 서부동, 남쪽은 남천면, 북쪽은 중앙동과 접해 있다. 서쪽은 남천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방자산(486m)이 있고 동쪽으로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경산군 읍면(邑面) 지역이었고,
-1914년에 경산면(慶山面)에 편입하였다. 남부동은 1989년에 경산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삼남동(三南洞)·서상동(西上洞)·신교동(新校洞)·상방동(上方洞)·백천동(栢泉洞)을 통합하여 만든 동이다.
행정동인 남부동은 법정동인 삼남동·서상동·신교동·상방동·백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라는 지명은 1989년 시 중심의 남쪽에 있는 5개의 법정동을 통합하여 관할하는 행정동인 남부동이 되었다. 이 동의 법정동인 삼남동은 청도방면 국도변 양쪽에 이루어진 마을이고,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주요 관청이 있었던 경산의 행정중심지인 동시에 쌀전, 신전, 닭전 등의 시장이 활성화되었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경산현의 읍성은 약 450년 된 회나무가 있는 곳을 경계로 남쪽이라고 하여 삼남(三南)이라 불렀다. 상방동은 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서상동은 읍성 내 서쪽의 높은 지대에 있다고 하여 명명되었다. 신교동(新校洞)은 임진왜란 때 옥교동에 있던 향교가 불에 탄 후 새로이 향교를 옮겨 지은 마을이여서 붙혀진 이름이다.
경산현(慶山縣)은 관가가 있던 곳을 중심으로 큰 성을 쌓아 두었는데, 성은 회나무가 있는 곳을 경계로 남쪽을 삼남(三南), 북쪽을 삼북(三北)이라 하였다.
서상동은 경산읍성(慶山邑城) 서쪽 지역으로서 그곳에 있는 강 가운데의 높은 지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성내(城內)에서 서쪽의 높은 지대라 하여 서상동이라고 하였다.
백천동은 백동리(栢洞里)와 천동리(泉洞里)를 합쳐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백동리는 잣나무가 많은 데서 명칭이 유래한 백자산(栢子山) 밑에 있는 마을이며, 천동리는 샘골이라고 하는데, 백자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과 찬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너무나 맑고 차서 새미골이라고 하다가 샘골로 되었다.
광산사택(鑛山舍宅)은 일제강점기에 전쟁 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압량면(押梁面) 평산(坪山)에 코발트광산을 개발하여, 여기서 채굴한 광석을 경산역까지 운반하던 중간 지점으로, 선광과 제련을 하였다. 광산에서 종사하던 사람들이 거주했던 연립주택 형태로 지어진 사택은 현재도 몇 채가 남아 있다.
25번 국도와 경산대로가 교차하고 경산생활체육공원이 소재하고 있는 신흥주거지역이다.
문화재로는 신교동에 있는 경산향교 대성전 및 삼문(慶山鄕校大成殿 및 三門:경북문화재자료 105)이 있다.
남부동(南部洞)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에 있는 법정동.
행정동인 중구동(中區洞) 관할이다. 안동시 동지역(洞地域)의 중앙부에 있으며, 북문동(北門洞), 대석동(大石洞), 광석동(廣石洞) 및 안흥동(安興洞)과 이웃한다.
원래 안동군 안동면 동부지역으로 남문거리, 남부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안동면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으며,
-1931년 안동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동부동의 일부를 갈라서 남문정 1정목(南門町一丁目)이라 하였다.
-1947년 남부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64년 안동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안동시 남구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1983년 동남동 관할이 되었다가 1997년 중구동 관할로 바뀌었다.
낙동강 북쪽 유역에 있는 안동시의 상가 밀집지역이다. 중앙선과 34번국도, 35번국도, 5번국도가 통과한다. 주변에 안동시청, 안동세무서, 안동도서관, 중앙치안센터, 중앙선 안동역, 안동터미널 등이 있다.
남부동(南部洞)
경상북도 영천시의 남쪽에 있는 행정동.
면적 27.17㎢, 인구 4277명(2008)이다.
영천시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고경동·북안면, 서쪽은 금호읍, 남쪽은 대창면·북안면, 북쪽은 완산동과 접해 있다. 서쪽은 주남평야가 금호강을 따라 펼쳐져 있고, 북안천이 금호강에 합류하는 도남동에 청제평야가 있다. 채약산(499m)에서 흘러내린 하천을 따라 좁은 평야가 북안천까지 형성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채약산이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천군 완산면(完山面)과 예곡면(乂谷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에 영천면(永川面)으로 편입하였다.
-1981년 영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주남동·봉작동·영도동이 신설되었다. 주남동은 1981년에 영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금로동(金老洞)·도동(道洞)을 합하여 만든 동이고, 봉작동은 범어동(泛漁洞)·작산동(鵲山洞)·봉동(鳳洞)·도남동(道南洞)을 합하여 만든 동이며, 영도동은 본촌동(本村洞)·채신동(采新洞)·괴연동(槐淵洞)을 합하여 만든 동이다.
-1998년 신설된 3개동[주남동(朱南洞)·봉작동(鳳鵲洞)·영도동(永都洞)]을 통합하여 남부동이라고 개칭하였다. 시 중심부의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남부동이라고 부른다.
행정동인 남부동은 법정동인 금로동·도동·범어동·작산동·봉동·도남동·본촌동·채신동·괴연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로동은 처음에는 부흥동(富興洞) 또는 부광동(富光洞)이라고 불렀는데, 온 동네가 넉넉하게 잘 살고 있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화려했던 영광이 쇠퇴하여 점차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동네의 기운이 다 되었다고 해서 쇠늘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한자로 표현하면서 잘 살던 것이 늙었다는 의미로 금로(金老)라고 하였다.
도동의 전촌(錢村)마을은 옛날에 화폐 주조소(鑄造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은 신라시대부터 도남동(道南洞)과 함께 도동화현(道冬火縣)의 소재지로 전통 문화의 요람지였으며, 지금은 큰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범어동은 동네가 자리잡고 있는 뒷산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고기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산동은 가침재[鵲寢嶺]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작침(鵲寢) 또는 가침재라고도 하는데, 마을 뒷산의 형상이 잠자고 있는 까치의 꼬리 부분과 비슷하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주남평야와 공업지역으로 형성된 도농 복합지역으로 경부고속도로, 4번·35번 국도 대구선, 철도가 동의 중심부를 통과한다.
문화재로는 도남동에 신라시대의 농업수리관계비인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보물 517)와 광주 안씨(安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완귀정(玩龜亭:경북민속자료 20)이 있다.
남부동(南部洞)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법정동.
양산군 읍내면(邑內面)에 속하여 이동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남부리가 되었다.
-1918년 읍내면이 양산면으로 바뀌었으며,
-1979년 5월 양산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양산읍 남부동,
-1996년 3월 양산읍이 시(市)로 승격함에 따라 양산시 남부동이 되었다. 남부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중앙동(中央洞) 관할하에 있다. 동 이름은 읍내 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당하들·참이안들·허리꿈 등의 들판, 보둣골·옥곡(玉谷)·장승배기 등의 옛마을, 골짜기인 승방골, 고개인 올곡[來谷] 등이 있다. 허리꿈은 물이 범람하여 허리까지 찼다는 데서, 승방골은 승방이 있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1994년부터 교동(校洞)·중부동(中部洞), 물금읍(勿禁邑) 동면을 포함한 양산물금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시행되었으며 규모는 1018만 2000㎡이다. 양산시청·양산시의회·양산시선거관리위원회·보훈회관 등이 있다.
남부동(南部洞)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던 마을로서, 남쪽 비탈에 위치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마을에는 우리 전통 한옥이 밀집되어 있어 한옥촌이라고도 불렀다. → 흑석동 [법정동]
남부동(南部洞)
양강도 갑산군 갑산읍에 있는 마을. 본래 갑산군 갑산면에 소속된 리였는데, 1952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