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한국 메이커의 유럽차를 시승해 봤습니다. 바로 기아 씨드 1.4 ISG입니다. ISG에서 알 수 있듯 최근 연식의 모델입니다.
시승차는 유럽차답게(?) 당연히 수동. 마치 골프와도 같은 감각이고 시트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딱딱합니다.
하체가 단단한 것은 물론이구요. 제가 탔던 씨드는 완전 깡통 모델인데 ESP가 기본, 에어백은 6개나 됩니다.
시장에 따른 접근이 완전히 다르지요. 근데 실내등도 없어요.
시승 말미에 ‘이대로 나오면 살 거냐’라고 자문해 봤는데 답을 못하겠더군요.
이렇게 보니 카니발 같군요;;
기아의 씨드는 국내에도 관심이 많은 차종이죠. 유럽에만 팔리는 차지만 디자인이 예쁘다고 해서,
주행 성능이 골프 같다고 해서 마니아들의 관심을 특히 받았습니다. 씨드는 이전에도 국내에 몇 대 돌아 다닌적이 있는데
ISG가 적용된 모델은 별로 시승한 사람이 없는 걸로 압니다. 제가 타본 씨드는 기아가 ISG 개발을 위해
연구용으로 들여온 모델입니다. 택시에게 스톱-스타트 적용을 위한 연구 목적이랍니다. 씨드 자체의
판매 계획은 전혀 없으니 관심 끄시길.. 시승 중 궁금한 점이 있어 기아에 물어보니
가능한 자동차에 관한 부분은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럼 뭘 말하라는건지..
우선 씨드의 탄생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시는 대로 씨드는 유럽 C 세그먼트를 겨냥한 전략 모델입니다.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현지에서 개발과 생산을 모두 진행한 유럽차인 것이죠. C 세그먼트는 골프와 포커스, 아스트라,
메간, 308 등 쟁쟁한 모델이 즐비하기 때문에 직접 개발해야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겠죠.
씨드에 쓰이는 1.6 & 2리터 디젤의 개발도 독일 러셀하임의 R&D 센터에서 주도했습니다.
현대는 러셀하임에 R&D 센터를 짓고 타사의 엔지니어들을 다수 스카웃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씨드는 유럽의 최근 트렌드에 맞춰 2009년형부터 ISG(Idling Stop & Go)를 적용하고 있다. I
SG는 스톱-스타트를 뜻하며 기아는 보쉬에게서 공급받습니다. ISG가 적용된 씨드 1.4리터는 CO2 배출량이
145g/km에서 137g/km으로, 1.6 CRDi는 104g/km으로 감소합니다.
참으로 오랜 만에 보는 스틸 휠입니다
씨드는 그 자체로도 신선하죠. 근데 이모조모 살펴보면 신선하면서도 낯선 요소가 참 많아요.
앞서 밝힌 것처럼 시승차는 깡통입니다. 외관만 봐도 최하위 트림인 게 티가 팍팍 나요. 우선 휠 캡이 달린 스틸 휠!
아 스틸 휠을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범퍼의 안개등 자리도 막혀 있네요. 당연히 보닛 리프트도 작대기입니다.
타이어는 195/65R/15 사이즈의 미쉐린 에너지가 달려 있었습니다.
실내는 아이러니한 요소가 더 많아요. (좋게 말하면)검소함을 숨기지 않고 있는데 반해 ESP도 달려 있고
에어백이 무려 6개나 있어요. 에어백은 듀얼은 물론 2열까지 펼쳐지는 커튼, 시트에 내장된 사이드까지 총 6개입니다.
국내 기준으로 에어백만 본다면 최고급 사양이죠. 얼마 전 출시된 YF 쏘나타도 에어백이 기본 2개인데,
역시 규제가 차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반면 사이드 미러는 양쪽 모두 수동입니다.
손 뻗어서 사이드 미러 조절하는 건 아마 티코 이후 처음인 것 같네요.
거기다 실내등이 없어요. 실내등 없는 차 보신 분 손 좀!
그리고 실내의 소재도 플랫폼을 공유하는 i30이나 아반떼와 비교 시 급이 다릅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싼 티가 나고 실제로 만져도 상당히 딱딱합니다. 그런 거에 비해 주행 중 잡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아
패널의 조립 단차가 상당히 치밀하게 느껴집니다. 유일한 내장재 소음은 스티어링 휠입니다.
운전대의 림을 손으로 잡고 좀만 힘을 줘도 잡소리가 발생합니다. 국내 기준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죠.
실내등 없는 것 보다 더 인상적인 건 시트입니다. 쿠션이 거의 없다시피해요.
이렇게 단단한 시트가 있었나 싶네요(아 로터스 엑시즈). 앉자마자 그 단단함에 놀랐습니다. 마치 구들장에 앉은 느낌이구요,
그런데 은근 편해요. 등의 밀착도가 상당히 좋습니다.
예전 대우차처럼 후진은 들어서 올리는 방식입니다
센터페시아는 상단에 작은 액정이 있고 바로 밑에 오디오 패널이 있는 단순한 구성입니다.
이 액정을 통해서는 도어 열림부터 실시간 연비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오디오는 6CD 체인저가 내장된 제품입니다.
변속기는 5단 수동 사양으로 후진은 들어 올린 후 위로 밀어야 하는 타입입니다. 유리는 고맙게도 2열만 뺑뺑이죠.
1.4리터 가솔린은 105마력의 힘을 냅니다. 배기량은 1,396cc로 국내에서 팔리는 1
.4리터(클릭, 베르나, 프라이드)와 큰 차이 없지만 세팅은 많이 다릅니다. 우선 최고 출력이 6,200 rpm에서 나오고
13.9kg.m의 최대 토크도 5천 rpm에서 발휘됩니다. 국내의 1.4리터(95마력/6천 rpm, 12.7kg.m/4,700 rpm)와
비교해 봐도 고회전 지향인 것을 알 수 있죠.
아이들링 소음은 생각 보다 조용하지만 엔진 룸의 방음이 부족해 회전수를 조금만 올려도 금세 요란해집니다.
1.4리터 엔진은 예상한 대로 3천 rpm으로 넘어야 제 힘이 나오고 저속에서는 토크가 부족합니다.
수동 변속기로 고회전 팡팡 써야 잘 달리는 타입이죠. 그럴려면 기어비도 촘촘해야 합니다.
1~4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40, 80, 125, 160km/h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속도가 붙습니다.
최고 속도는 180km/h를 약간 넘고 이때의 회전수는 5단 5,600 rpm 내외, 제원상 최고 속도도 185km/h입니다.
아무리 밟아도 더 이상은 안 나가더군요. 5단 100km/h 주행 시에도
회전수가 3천 rpm이어서 고속도로 달릴 때는 6단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씨드의 주행 느낌은 골프와 매우 흡사합니다. 2003년 독일 출장 갔을 때 하숙집 아들 차(골프 1.4 수동)을
얻어 타고 프랑프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그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하숙집 아들은 운전대 잡는 폼이 뭔가 어설펐는데
고회전까지 팍팍 밟으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더군요. 그 골프 1.4도 최고 속도가 180km/h 내외였고
씨드를 타니 그때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주행 성능에서 국산차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하체입니다. 요즘 현대차도 많이 단단해졌다곤 하지만
씨드의 하체는 레벨이 다릅니다. 댐퍼 스트로크가 매우 짧아 그 단단함이 골프 보다도 더 한 것 같습니다.
씨드의 핸들링에 대한 외지의 칭찬을 많이 봤는데 실제로도 운동 성능이 좋습니다.
고속 주행 시 바닥에 들러붙는 느낌도 국산차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체의 능력을 생각하면 EPS의 개입 시기를 더 늦춰도 좋을 것 같더군요.
ESP는 구형 버전인지 작동 시 진동이 상당합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긴 하지만 적어도 저한테는 승차감도 좋더군요.
브레이크도 기대 이상의 수준입니다. 평범한 C 세그먼트 해치백으로서는 놀라울 만큼 제동력이 좋고
급제동 시 노즈다이브도 현상도 상당히 억제돼 있습니다. 급제동 시점은 170km/h 내외로 좌우 밸런스가 좋고
연속된 제동에서도 페이드 현상이 심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사이즈의 국산 기아는 최고 속도에서
급제동 한 번만 해도 대번에 페이드가 나타나는 것과는 사뭇 다르죠.
요즘 스톱-스타트가 인기입니다. 많은 유럽차들이 스톱-스타트를 도입하고 있어서 저도 참 궁금했었는데
씨드 시승으로 인해 상당 부분 해소했습니다. 우선 보쉬의 스톱-스타트는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빨랐습니다.
주행 중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추게 되면 곧바로 시동이 꺼지고 클러치 페달을 밟거나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었다가 다시 밟으면 자동으로 시동이 켜집니다.
이 재시동에 걸리는 반응은 0.4초인데, 클러치 페달을 밟고 기어를 1단에 넣기도 전에 시동이 걸립니다.
오토 스톱 버튼을 눌러서 ISG 기능을 해제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여름철인데, 늘 에어컨을 키고 있기 때문에 시동이 꺼지면 팬만 돌아간다.
잠시는 에어컨의 냉기가 유지돼 견딜만 하지만 이를 못 참는다면 ISG의 기능을 해제하면 됩니다.
ISG는 정차 시 전장품이나 헤드램프 등의 전력 소비가 많을 경우 전압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시동이 걸립니다.
즉 가다서다가 잦은 정체 구간에서는 ISG의 작동 시간도 짧아지고 출발 후 차의 속도가
10km/h 이상에서만 작동합니다. 이번에 느낀 건데 ISG는 배터리의 성능도 중요합니다.
씨드를 타보니 유럽의 기아차는 국산 기아와는 상당히 다름을 알겠더군요.
시장의 요구와 현지 규제에 맞추는 게 당연하겠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차만들기가 참으로 마음에 들더군요.
그리고 최하위 트림이지만 ESP와 6개의 에어백이 채용된 것도 부러운 부분이구요.
반면 (가격이 문제겠지만) “이대로 나오면 넌 살 거냐”라고 자문 했을 때 선뜻 답은 못하겠더군요.
장점이 분명 많지만 국내 기준으로는 치명적인 단점도 많기 때문이죠. 자동차 좀 안다고 떠들지만
저 역시 일반적인 한국 소비자의 취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첫댓글 실내등이 없다....흠~ 기본적인 건 빼버리는 센스? 이왕이면 클락션도 빼버리지...그럼 손내밀고 캐스터내츠 치면서 비키라고 하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