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물안마을 제1회 벚꽃축제를 감상하고
일산은 일교차가 커지면서 아파트단지 내 벚꽃이 꽃잎을 날렸다. 만개한 벚꽃나무에 당알당알 매달린 흰 꽃송이가 며칠 전에는 그렇게도 탐스러웠는데 기온 차와 우천으로 꽃비가 내리더니 일산의 벚꽃은 바람 따라 흘러갔다. 일산에 잠시 머물다 떠나버린 벚꽃을 찾아보려 수소문 끝에 벚꽃이 마지막 머무는 고장 춘천으로 향하게 되었다. 2018년 4월 18일 오전 경춘 고속도로에 올랐다. 고속도로 양옆으로 펼쳐 스쳐가는 능선과 계곡에는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달리는 차 창가에 비치는 산 계곡과 산줄기에는 어린이파리 연두색 구름다발이 피어오른다. 환상적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봄빛에 청록색으로 물든 모든 산들이 바라보는 나를 즐겁게 한다. 연두색 구름다발 사이사이로 점점이 아름답게 채색된 것은 흰색의 산 벚꽃들 이었다. 올 봄도 성한 몸으로 자연의 정취에 빠져 듦을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벚꽃 찾아가는 길에 오늘도 어김없이 부인과 동행했다. 부인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온몸 구석구석이 불편하고 아파도 참고 말없이 견딘다. 사느라 고단한 세월을 이기기 위해 고통을 참아왔던 내력에 익숙하다. 절실하고 절절했던 힘든 수많은 야속한 시간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부인을 결국 주름과 흰머리로 변절시켰다. 지난세월 서민들에게는 누구나 그러듯이 심각한 문제가 터지기 전 까지는 병든 몸을 버틴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불치의 나락으로 빠지기도 한다. 없이 살던 시절의 전 근대적인 사고의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적 교육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휴일이 겹치면 부인과 산천경개 좋은 산야를 자주 찾는다. 서로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같이해온 세월 그 세월을 만끽하러 오늘도 함께 춘천가도를 달려본다.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는 부인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함이며 우리가 사는 동안 어려웠던 시간을 늘그막에는 값진 시간을 보내고자하는 의미이기도하다.
강원도에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그 중에서도 춘천시는 도시 전체 곳곳에 벚꽃명소가 많아 벚꽃도시라고 할 만큼 벚꽃으로 알려진 곳이 몇 군데 있다. 아름다운 춘천댐 벚꽃을 비롯하여 신북읍 수자원공사의 흐드러진 벚꽃 길, 드라이브하기 좋은 소양강댐 벚꽃 길, 소양강 의암호를 홀리는 공지천 벚꽃 길, 대성리역에서 시작하여 춘천에 이르는 기가 막힌 경춘선 벚꽃 길 등이 유명하다. 봄 풍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사이에 차량은 춘천 톨게이트를 지났다. 오늘 춘천에 도착하여 첫 번에 들린 곳이 소양강 스카이워크다. 65세는 무료고 그 외는 2000원 입장료다. 2000원은 상품권으로 돌려줬다 이 상품권은 주변 상가에 이용가능하기에 결국 입장료는 무료인 셈이다. 스카이 워크는 소양강 물위에 다리를 강폭 1/3지점까지 설치하고 그 바닥을 투명유리로 깔아놓아 다니는 이로 하여금 아찔한 맛을 자아내게 하는 스릴관광이다. 남자들은 시큰둥하지만 여자들은 아찔하게 무서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부인도 투명유리가 깔린 길이 무서워 하늘을 보고 걷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군 시절 이곳 춘천은 내가 군에 있을 때 천리행군 통과코스였음이 생각났다.
다리 끝 지점에서 서편 북배산을 바라본다. 천리행군시절 북배산에 비트를 파고 병영 생활하던 젊은 날의 추억의 영상이 스쳐간다. 호기는 서글퍼지고 시절은 아련하게 떠오른다. 45년 전의 춘천과는 천지개벽같이 변했지만 산세만큼은 지금도 나를 뚜렷이 기억한다. 평일인 오늘 소양강 춘천호는 쓸쓸하다. 방문객도 뜸하고 호반도 조용하다. 1시가 넘어 주변의 식당에서 6000원짜리 막국수를 시켜먹었다. 메밀 막국수를 좋아하는 내가 부인 것의 반을 더 얻어먹었다. 식사 중에 벚꽃에 화제가 돌자 주인은 이곳은 벚꽃이 지고 있지만 춘천시 북산면 부귀리는 벚꽃 축제중이며 자신도 어제 애들 데리고 구경했는데 정말 좋다고 하여 우리부부는 그 곳으로 마지막 벚꽃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소양제2대교를 우회전하여 양구, 화천 쪽으로 달리다 46번 국도를 탄다. 배후령 터널을 지나 추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북사면 오항리 쪽으로 꾸불꾸불 들어가다가 북산면사무소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오르막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북산면 부귀리 벚꽃길이 시작된다. 한창인 벚꽃들이 만개하여 눈을 부시게 한다. 환희의 동공이 확장되고 기쁨의 미소가 얼굴에 가득 찬다. 이곳은 첩첩 산중속이고 십승지(十勝地)의 한 곳처럼 깊고 깊은 산골마을이다. 고개 너머서부터 도로변 양옆으로 가로수가 모두 새하얀 벚꽃나무이며 길이는 약 1.2키로가 눈부신 벚꽃터널이다. 차를 도로가에 세우고 감상에 젖어든다. 일산에 만개하던 벚꽃바람이 이곳에서 불어댄다. 이곳 마을사람들이 직접 심은 벚나무 수령은 15년에서 18년 정도다. 지금 부귀리 마을은 50호가 되는데 지역은 춘천시에 속하지만 양구와 화천에 가깝다. 마을은 상당히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이 일품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맑은 물이 흐르며 공기가 쾌적하고 1.2km 대한민국 마지막 벚꽃이 화려하게 열병식을 하는 곳이며 그리고 인심이 후하다. 이런 장점으로 요즘 이곳으로 귀농하는 세대가 늘어 지금은 당초 30호에서 50여 호로 늘었단다. 내려가면서 동영상으로 벚꽃 길을 촬영하고 다시 부귀리 제1회 벚꽃축제장에서 3000원 짜리 도토리 전 한 장을 맛있게 시식하고 청평사로 향했다. 청평사는 부귀리 마을에서 7km정도의 남쪽에 위치하는 고려시대 사찰이다. 이곳에는 뱀의 화신과 공주의 설화가 전해내려 온다.
청평사는 오봉산자락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소양강에서 배를 이용하여 이곳으로 오는 방법도 있다. 이곳 청평사 관내도 벚꽃으로 경내가 환하다. 청평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서 경내를 느리게 감상했다. 오랜 역사와 여러 가지 설화가 주저리주저리 전해 내려오는 이곳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개 2000원하는 수수부꾸미를 맛있게 사먹고 귀가 길에 올랐다. 하루해는 저물고 2시간 도보관람으로 우리는 피로가 엄습했다. 오다가 쉼터에 차를 세우고 잠시 졸음에 빠졌다.
부인과 나는 천상인연이 깊어 만난 지 40년이 되었고 슬하에는 3남매를 두어 모두 다 출가시켰다. 젖 먹여 키우고 가르쳐서 결혼시켰으니 떠난 아이들은 잘 살기만을 바랄뿐 바랄 것은 없다. 5식구가 2식구로 줄어들어 집안이 넓어지니 고요만이 공간을 차지하고 먹는 것도 맛을 잃어간다. 가는 세월 흘러가는 대로 내어 맡겨 수많은 곡절을 넘기고 고단한 이력으로 만경창파를 견뎠다. 속세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누구도 모른다. 수려한 산과 흐르는 시냇물을 벗을 삼아 낮에는 부인과 주고받는 술잔에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을 엮고 밤에는 수 십 년 정든 달과 별을 바라본다. 일월은 영원함이 부럽고 우리인생은 하루살이 같음이 서러워 벚꽃 찾아 수 백리를 달려왔고 잠시 청아한 산천(山川)소리에 마음을 위로한다. 그대와 짝을 이룬지 40년 해와 달 같이 영원할 수 없음이 한이 되고 삭아드는 몸매가 구슬퍼 가쁜 숨 쉬어가며 청평사 높은 누대에 앉은 부처께 4배했다. 그대는 이지러지지도 말고 흘러가지도 말며 아주 사라지지도 말 것을 그리고 오래도록 없어지지도 말 것을 간곡히 4배했다. 그러나 부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봉산 계곡 산새소리만 요란하다. 경적 소리에 눈을 뜨니 잠시 꿈을 꾼 것 같다. 모든 게 남가일몽이요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화창한 봄날이다.
졸음에 깨어나 일산으로 달렸다. 일산 도착시간은 7시30분이다. 부인과 나는 마주앉아 나는 술을 들고 부인은 안주를 든다. 낮에 햇볕에 탄 목둘레 알러지 때문에 수작(酬酌)하지 못했다. 오늘 이렇게 독작(獨酌)한 술기운에 이글을 쓴다. 내일은 인천 동서와 평촌에 가기로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한다. 아름다운 벚꽃에 취해, 계곡물소리에 반해, 연록색으로 살아 꿈틀대는 산야에 마음을 묻었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이렇게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2018년 4월 18일
율 천
첫댓글 율천님 안녕하세요.
님의 글이, 반이상 내려 오도록 댓글이 없어
호기심에 들어 왔습니다.
아직 다 읽어보지 못하였지만...
아침에 바쁜시간이어서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좋은 글 같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다시 읽고, 다음 글도 읽고 싶습니다.
수필수상방에 글을 올려 보세요.
제가 댓글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중학이후 실업학교 출신입니다.
수필수상방에는 저에게는 격이 맞지 않은것 같습니다만
올려보겠습니다.
저는 집사람과 둘이 살면서 별다른 취미가 서로 없어 여행을 다니고
저는 후에 이를 다시 한번 추억을 더듬어 보고파 내가 아는 글로 여러가지를 기록해 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