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2. 30 헤럴드경제에서...
乙酉年의 내력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2005년 을유년(乙酉年) 운세를 역술인들은 어찌 풀이하는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지난 60년간 한국인은 엄청난 일들을 체험하며 꾸준히 업적을 축적했다. 60년 전인 1945년에 망국의 설움을 떨치고 광복을 되찾았다. 그 이후 국토분단, 전쟁과 대량살상, 민생안정과 경제도약, 민주화 성취, 세계 11위의 경제규모,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등 기념비적 일들을 해내는 저력을 보였다. 단군 이래 이처럼 나라의 기세가 욱일승천하던 때가 없었다.
미래의 얼굴을 과거에서 찾아보자. 광복에서 60년을 거슬러오르면 1885년(고종 13년)에 이른다. 갑신정변 이듬해로 청, 일이 조선에 진주해 왕권이 약화된다. 청에 끌려갔던 대원군이 원세개(袁世凱)를 따라 귀국해 민비와 세력 다툼을 벌인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는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는 등 나라가 어수선했다.
같은 해 서양에서는 영국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가운데 고든 장군이 수단의 카르툼에서 전사했다. 프랑스인 파스퇴르가 공수병 백신을 발명하고, 문호 빅토르 위고가 죽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2권, 톨스토이 '종교론'이 출판됐다. 반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렸다. 스코틀랜드의 골프가 미국에 처음 도입된 해이기도 하다.
다시 1825년으로 올라가면 순조대에 이른다. 15세에 왕위에 오른 그는 외척의 세도정치에 휘말리며 홍경래의 난을 겪었다. 시파와 벽파의 분당 다툼이 치열했고, 그런 와중에 천주교를 탄압했다. 다산 정약용도 옥고를 치렀다. 러시아 리코라스 1세 즉위과정에서 서구식 근대화를 바라던 지식인들 모임인 '12월당' 당원들이 대거 검거돼 시베리아로 유배됐다. 브라질 등 남미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한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스톡턴-다링턴 간 여객철도가 부설됐다.
1765년은 조선의 최장수 임금 영조대에 이른다. 한때는 탕평책을 쓰고 서자들의 사회진출 길을 트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노망기가 발동하는 나이에 이르러 사도세자를 죽인 지 3년이 지났다. 2년 전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가져온 고구마가 구황식품으로 구실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영국 의회가 식민지를 상대로 인지조례를 제정하자 미국인들이 거세게 반발해 독립운동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에서는 화가 부허와 후라고나르가 활약하고 있었다. 신대륙에서 건너온 감자가 유럽의 주요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다시 1705년으로 올라가면 붕당정치가 가장 심했던 숙종대에 이른다. 상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과 남인의 대결, 그 후에는 노론, 소론의 싸움이 있었다. 치맛바람이 거세던 장희빈이 죽은 지 4년 되었다. 이즈음 전설적 산적두목 장길산이 활동 중이었다. 같은 해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대제가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영국에서는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혜성 주기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미국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첫돌을 맞이했다. 독일 왕립 천문대가 설립됐다.
다시 1645년에는 광해군을 축출하고 등극한 인조가 대륙의 세력변화를 잘못 읽어 병자호란(1636년)을 자초,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겪으며 볼모로 보냈던 소현세자가 귀국하자마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크롬웰장군이 왕당파를 격파했고, 과학자들은 왕립협회 발족 준비에 착수했다. 바이올린 제작자 스트라디바리가 첫돌을 맞았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가로에 보리수를 심어 후세 '운터 덴 린덴'거리로 알려진다.
오늘날 우리는 국제정세를 어찌 읽고 있고, 무슨 나무를 심어 후세에 남기려는가? 저물어가는 올해는 불경기의 바닥이지만 그래도 수출은 2500억달러를 넘을 것이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선박 철강 등 주력 상품의 호조 덕분이다. 미래가 상승추세의 연장일까, 아니면 과거 역사처럼 붕당질하다가 하강곡선을 그릴까? 그것은 우리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