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로움
임의숙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속에서나 머리 속에서 동경하는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는 현
실에서 때로는 부딪혀 깨지기도 하고 터지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들
이 기다리고 있다.
성숙된 어른의 입장에서는 새 환경이 될 수 있겠으나, 나이 어린
아이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몇 번의 이사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을 전학 시키려면 이궁리 저궁리 해가며 달래야
한다.
큰 아이가 6학년 때 남편은 청주로 발령을 받았지만, 친구가 없
는 청주에서의 졸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발령 난 것을 실망해했다.
한번 전학 할 때마다 한풀씩 기가 꺾이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봐
야 하는 안타까움도 속상했고, 이사해야 하는 현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도 야속했다.
낯선 환경에서 친구들과 적응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우면 저럴
까 싶어 설득하기를 단념하고 우리는 1년을 주말부부로 살기로 했다.
다니던 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새로운 친구
들과 익숙해지기 전에 서둘러 전학을 하였다.
청주로 이사하던 날, 이삿짐 풀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아빠의 분
주함을 외면한 채 아이들은 청주의 모습을 궁금해 했다.
혹여, 길을 잃을까 염려하는 엄마아빠에게 ㅇㅇ건물만 찾으면 되니
걱정 마시고, 그래도 늦은 시간까지 안 들어오면 ㅇㅇ건물 앞으로
나오라는 여유까지 보이면서 집을 나선다.
주말이면 그렇게 청주시내를 익히고 다니던 어느 날 무심천에서
샀다며 벚나무 두 그루를 사 가지고 왔다.
봄빛에 상기 된 아이의 두볼이 발그레한 복숭아 두 개를 얹어 놓
은 듯 예쁘기만 하다. ‘그런데 나무는 왜 사온 것일까?' 마음이 불
안해지기 시작하는데 엄마의 애타는 이 심정을 알아나 주듯 “이사
온 기념으로 과일나무를 사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
어."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너의 말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이 엄마는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단다.
엄마마음 편하게 해 주려고 내색하지 않고 학교생활 잘 적응해
주고 있어 참으로 고맙다. 흐뭇해하는 엄마 옆에서 약간은 흥분된
채 어설픈 손놀림으로 나무를 심는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
자니 어느새 훌쩍 커 버린 듬직한 모습이 가슴에 꽉 차온다.
꽃삽이며 조로, 몇 개의 화분, 주위를 온통 흙투성이를 만들어가
며 정성을 드린 아이의 마음을 알아나 주듯 두 그루 모두 살았다.
땅의 습기를 머금고 사는 환경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며칠동안은 나무 돌보기에 정성을 보이더니 금방 시들해져 결국
내 차지가 되어 버렸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회초리 하나 꾹 꽂아 놓은 듯 보잘 것 없는
나무지만, 내 아이가 심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심히 물을 주었더니
가지도 치고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아빠가 심어 놓은 갖가지 야채
들과 함께 삭막한 옥상을 푸르름으로 장식하고 있다.
올해는 예쁜 연분홍색 꽃까지 피워 우리 가족을 흐뭇하게 해주
었고, 나무를 심은 아이는 우리보다 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바쁜 생활에 쫓겨 잊고 있다가 옥상에 올라가 누렇게 퇴색된 채
시들어 버린 잎들을 바라보니 그 동안 느끼지 못 했던 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일상의 한 조각으로 생각한 채 무심코 아침이면 한 바가지의 물
을 들고 올라가 주루루 부어주고 돌아서곤 했었다.
소중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무가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의 얼굴이 나뭇잎 위로 겹쳐 보이
면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순간 머
리 속에 스치는 것이다.
식물도 사람의 손길이 멀어지면 제 빛을 잃고 시들해지는데, 어
른들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사는 아이들은 오죽하랴.
나의 며칠을 반성해 본다.
습기 한 방울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날씨가 심술쟁이처럼 원망스
럽게 느끼는 나를 탓해보며, 보잘 것 없는 나무였지만 나도 모르
는 사이 정이 많이 들었는 것 같아 뒤늦게 아쉽다.
아쉬움에 한참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생명의 신비함에 감탄해야 했고, 갈증을 잘 견뎌준 나무가 고마워
졌다.
넓고 많은 잎에 습기를 줄 수 없었던 나무는 그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무성한 잎을 모두 떨구고 그 밑에 작은 새싹으
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집안에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과장된 몸짓까지 동원해 옥상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했더니 모두
가 믿어지지 않은 듯 한번씩 올라갔다 오며 신기해했다.
몇 종류의 관상수를 키우며 말라도 죽이고 얼려도 죽이고 했지
만, 이번처럼 잎이 모두 말라 떨어져도 자신을 지키며 손길을 기다
리고 있었던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며칠동안 열심히 물을 주웠더니 다시 파릇
한 잎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무성함을 자랑하고 있다.
가끔 TV나 인쇄매체를 통해 열악한 환경이 탈선하는 청소년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할 때 또래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가슴 한
쪽이 저려오곤 한다.
이들에게 건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른은 필요하겠으나, 내가
가꾸고 있는 벚나무처럼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꿋꿋한 청소년들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1999. 5집
첫댓글 열악한 환경이 탈선하는 청소년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할 때 또래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가슴 한
쪽이 저려오곤 한다.
이들에게 건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른은 필요하겠으나, 내가
가꾸고 있는 벚나무처럼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꿋꿋한 청소년들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TV나 인쇄 매체를 통해 열악한 환경이 탈선하는 청소년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할 때 또래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가슴 한쪽이 저려오곤 한다.
이들에게 건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른은 필요하겠으나, 내가 가꾸고 있는 벚나무처럼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꿋꿋한 청소년들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TV나 인쇄매체를 통해 열악한 환경이 탈선하는 청소년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할 때 또래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가슴 한쪽이 저려오곤 한다.
이들에게 건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른은 필요하겠으나, 내가 가꾸고 있는 벚나무처럼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꿋꿋한 청소년들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