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A대리: “OO 씨, 이거 거래처 확인 끝난 거죠?”
B사원: “아 그거요? 아니, 아니. 확인해야 돼.”
A대리: ‘…?’
한국 사람은 유독 반말에 민감하다. 위 대화도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면, 누군가는 보기만 해도 속에서 열불이 난다. 간혹 반말·존댓말 때문에 오해가 빚어지기도 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존댓말 쓰는 선배, 반말하는 후배와 친해질 수 있을까?
◇사람 가리지 않고 반말… 우위 점하기 위한 ‘의도’
반말은 의도적일 수 있고, 비의도적일 수도 있다. 의도적 반말에는 여러 심리가 작용한다. 상대방과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 내적 친밀감을 쌓고자 하는 심리, 상대방과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심리 등이다. 그들에겐 반말이 ‘친밀감’ 또는 ‘우위’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보통 대등한 관계에서는 친밀감이, 힘의 균형이 한 쪽에 쏠린 관계에서는 우위가 목적이 된다. 특히 상대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의도적으로 말을 놓는 사람의 경우, 기저 심리에 상대보다 우위에 있으려 하거나 이미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적 우월감’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 수직적 구조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상대적 우월감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상대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라며 “그러나 심리적 우월감이 잘못 작용하면 무조건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놓는 등 상대를 하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의도적 반말은 심리와 상관없이 성장 환경이나 현재 처한 환경 등 ‘환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오랜 기간 수평적인 환경에서 존댓말을 쓰지 않고 살아왔을 수 있고, 반대로 수직적인 환경에서 자라면서 윗사람이 말을 놓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됐을 수도 있다. 이들에게 반말은 친해지거나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아닌, 무의식적 습관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반말·존댓말 사용은 대부분 사회화 과정에서 생기는 차이”라며 “심리·성격보다는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존댓말, 경계심의 표현… 환경 영향도
말을 안 놓는(또는 못 놓는) 것 역시 의도적·비의도적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대의 시선을 의식했거나 상대와 거리를 두려는 심리라면 의도적으로 반말을 쓰지 ‘않는 것’에 가깝다. 보통 성격이 소심하거나 신중한 사람, 외부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사람, 경계심이 강한 사람들이 이 같은 이유로 말을 잘 놓지 않는다.
심리적 의도가 없음에도 말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에게든 존댓말을 쓰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자라다보면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자리 잡을 수 있다. 특히 예의를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상 이 같은 ‘존댓말 강박’으로 인해 말을 놓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이외에도 심리나 성장환경과 관계없이 반말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말을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겐 말을 놓는 일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과 같다. 임명호 교수는 “반말을 쓰는 것과 관련한 부정적 경험·기억이 있다면 쉽게 말을 놓지 못할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존댓말을 고수하는 것 자체를 자신을 존중해달라는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반말·존댓말 모두 장단점 有… ‘어울리는 말’ 써야
말을 놓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며, 반대로 무작정 높이는 게 좋은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오랜 친구와 사이에 쓰는 반말은 친밀함의 상징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반말은 자제할 필요가 있으나, 주변에 말을 놓고 편하게 대화할 상대 한두 사람 정도는 있는 게 좋다. 존댓말 또한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가급적 말을 높이는 게 좋지만, 과도한 존대는 상대에게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는 듯한 인상을 주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과공비례(過恭非禮), 공손함이 도를 지나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법이다. 이동귀 교수는 “가까운 사람과는 말을 놓되 예의를 지킨다면 더 친밀함을 쌓기 쉽다”며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위계적이었다면, 이제는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문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땐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어울리는 말을 써야 한다. 특히 말을 놓을 때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반말을 남발하다보면 의도와 상관없이 무례하고 위압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자신은 정서적으로 친밀함을 느껴 말을 놓았다고 해도,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면 오해일 뿐이다. 친밀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눈빛, 표정, 몸짓 등 반말 말고도 많다. 말을 놓는 게 습관이라는 변(辯) 역시 본인 입장에 불과하다.
자신이 말을 놓고 싶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반말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상대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상대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도 존중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반대로 상대의 반말이 거슬릴 때는 직접적으로 말하되, 명령이나 평가를 내리지 말고 자신의 생각만 전하는 것이 좋다. 왜 말을 놓냐 묻거나 버릇없어 보인다고 지적하기보다, 본인은 반말을 쓰지 않고 말 놓는 게 불편하다고 말해주는 식이다. 이 같은 말이 안 통할 정도라면 피하는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말에는 자신의 가치관과 선호하는 생활방식 등이 담겨있고 개인차도 존재한다”며 “다른 걸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존중해줘야 공존할 수 있다”고 했다.
전종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