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음악] 전쟁의 운명을 결정한 군악의 한판 승부
계곡 뒤덮은 줄루족의 군가
영국군, 승리의 나팔로 맞서다
‘140 對 4000’ 영국군, 록여울 전투에서 절대열세 뒤집어
줄루족의 압박 이겨내고 군가 부르며 전열·전의 재정비
창과 방패를 두드리며 군가를 부르는 줄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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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루전쟁 - 영국군과 줄루족의 혈투
지금까지 유럽의 사례를 중심으로 고대·중세 군악의 발자취를 살폈는데, 현대로 넘어가기 전에 벌어진 한 전쟁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19세기 말 남부 아프리카 일대에 식민지를 개척하려는 영국과 이에 대항해 조국을 지키려는 남아공의 줄루(Zulu)족 사이에 벌어진 혈투 ‘줄루전쟁’이다. 어찌 보면 두 문명의 충돌이기도 한 이 전쟁은 필자가 생각하는 ‘전쟁과 음악’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례 중 하나다.
줄루족 전사들이 돌격하는 장면. |
줄루족에 대패…영국군 설욕 다짐
1879년 6개월간 벌어진 줄루전쟁은 ‘이산들와나(Isandlwana)’와 ‘록여울(Rocke’s Drift)’의 전투가 핵심이다. 당시 영국군은 줄루족의 속도 중심 게릴라식 전투 방식에 익숙지 못했다. 소총·대포·로켓포 등으로 무장한 영국군 제24보병연대 예하 정예병 1800명은 창과 방패만 들고 맞선 2만5000명의 원시부족에게 철저히 궤멸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고작 55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위대한 왕 ‘샤카(Shaka)’가 이끄는 전사 중의 전사, 줄루족의 전설은 이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승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들에 대해 전혀 몰랐던 영국군이 정신을 차리고 줄루족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승에 크게 고무된 줄루족은 영국군의 후방 병참선을 차단함으로써 전과를 확대하고, 전쟁 지속력을 박탈해 조기 종전을 꾀했다. 한편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영국군은 두 번 다시 같은 패배를 당하지 않겠다고 와신상담했다. 영국군의 후방 방호 책임은 웨일스 출신으로 구성된 140명의 1개 중대가 맡고 있었다. 대포와 총으로 무장했지만 무려 30배나 되는 줄루족 4000여 명과 대적한다는 건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의 전황과 자세한 전투 경과는 1964년 제작돼 세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마이클 케인 주연의 영화 ‘줄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곽의 제1방어선 포기를 명령하는 모습. |
줄루족, 노래로 영국군 심리적 압박
록여울의 영국군을 포위한 줄루족은 전투에 앞서 방패와 창을 두드리며 승리를 기원하는 군가를 부른다. 줄루족에게는 다른 사례와는 다르게 명령을 전하는 북과 나팔수는 있어도, 음악을 연주하는 전문 군악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없었을까? 이들에겐 개개인이 가진 창과 방패가 있었다. 이것을 두드리며 멜로디를 만들고, 여기에 가사를 붙여 합창을 한다. 모두가 군악대인 셈이다. 군가는 전투 의지와 사기를 고양하기 위한 것이지만 상대하는 적군을 겨냥하기도 한다.
줄루족이 부르는 노랫말은 태초부터 이 땅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내용과 조상 대대로 사자를 사냥했던 무용담, 주변 부족들을 통일했던 이야기 등을 섞어 위용을 자랑한다. 동시에 곧 벌어질 전투에서 희생될 영국군을 미리 애도하는 일종의 장송곡도 잊지 않는다. 그들의 노래는 계곡 전체를 뒤덮고, 방어진지에서 고개도 못 들고 웅크린 영국군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순식간에 영국군은 절망과 공포, 극도의 심리적 혼란에 빠져 진영은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하다. 이때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한 영국 지휘관은 웨일스의 군가 ‘할렉의 전사들(Men of Harlech)’을 부르게 했고, 부대원들은 군가를 합창하며 평정심을 되찾아 전열과 전의를 재정비했다.
할렉의 전사들은 영국 왕위쟁탈전쟁(장미전쟁·1455∼1485) 기간 중 요크군의 공격으로부터 7년 동안 할렉성을 지키다 항복한 웨일스 제24보병연대의 무공을 기리는 곡이다. 웨일스의 정신과 자존심을 대표하며, 후일 영국 왕실 근위대인 웨일스 연대의 공식 군가로 선정됐다.
‘할렉의 전사들’을 부르는 영국군.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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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참패 설욕하고 명예 회복
군가가 끝나자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이어 줄루족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개시된다. 줄루족은 수적 우위를 각인시키며 이틀에 걸쳐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한다. 그러나 영국군은 줄루족의 파상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낸다. 결국 더 이상의 공격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줄루족은 다시 계곡에 모여 죽은 전사의 영혼을 위로하고, 적이지만 영국군의 용맹함을 존경하는 노래(위대한 전사)를 부르며 홀연히 사라진다. 이 전투에서 줄루족은 800여 명이 전사했다. 반면 영국군의 손실은 전사 17명, 부상 10명 정도로 경미했다. 영국군은 이 전투의 승리로 이산들와나에서의 참패를 설욕하고,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했다. 왕실은 승리를 기리기 위해 140명의 무공을 기록으로 남겼고, 7명에게 빅토리아 훈장을 수여했다.
록여울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줄루’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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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승리를 이끈 나팔
여기서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영국군에 승리를 가져다준 결정적 국면이다. 통상 방어부대의 규모·능력에 따라 전투정면과 종심이 결정된다. 수적으로 부족하거나 방어 정면이 넓을수록 전투력이 분산돼 불리하다. 이럴 경우 3선의 원형방어 개념을 적용, 방어 정면을 줄여 다중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에서도 방어에 가장 유리한 요새의 외곽 울타리를 따라 1선, 내부시설을 따라 2선의 방어선을 구축해 적의 지속적인 피해를 강요했다. 면(面)을 줄여 점(點)을 방어함으로써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전투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당시를 재현한 장면으로 돌아가면 이렇다. 지휘관 옆에 나팔수 한 명이 서 있다. 한 명도 아쉬운 상황에서 이 둘은 아예 전투에서 빠졌다. 나팔수는 지휘관의 신호에 따라 나팔을 힘차게 불어 1선의 병력을 철수시키고, 사전에 약속된 2선으로 위치를 변경하도록 했다. 그리고 3열 횡대 대형을 갖추고 열 단위 일제사격을 통해 줄루족의 파상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윤동일 북극성 안보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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