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예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의 성경 모든 곳들마다 깊이 연결되고 완전히 직결되는 분이시며..
근원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들과 결코 별개이거나 분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상 성경의 그 어느 곳이라도, 더 나아가 온 세상의 모든 일들마다 단 하나라도, 단 한 번일지라도 예외 없이, 심지어는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곧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한 섭리와 믿음의 세계, 복음적 역사와 선악 간 심판들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당연히 아래 본문이 있는 아가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인데..
실상 아래 본문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천국 잔치의 신랑의 역할이기도 하신 구주 예수님께 있어서야 말로 동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는 것이며, 비유, 상징, 암시, 함축과 함께 어떤 면에서는 약속, 증거, 예비, 계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욱 넓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세밀하면서도 광대하고 강렬하며 절대적인 사랑과도 별개일 수 없고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으며 깊이 내포하고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인 것이며, 성령님 또한 어떤 식으로든, 특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그렇듯 구주 예수님과 함께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는 구원의 일들에 있어 경험적, 실제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단 한 번, 단 한 순간이라도 예외 없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시공을 초월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실제가 되고 누림이 되게 하시는 등 하나하나 모두 다 연계되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들을 뛰어 넘어 생각 이상, 상상 이상의 생생함과 강렬함과 기이함들도 될 수 있게 하시는 것으로 결코 잠시라도 분리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구주 예수님, 곧 구원자이시자 중보자이시며,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함께 약속하시고 계시하시며 준비하시고 예비하시며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신 사랑과 은혜, 긍휼, 사함, 나음, 치유, 능력, 회복, 승리, 역전, 복, 부흥, 생명, 부활, 영생 등과 같은 모든 구원의 일들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고 일부라도 제대로 측량조차 못할 정도인 것으로 사실 그러한 구원의 모양과 정도와 크기와 깊이 등은 원론적으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시대와 나라들을 초월하는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들, 나음과 화평들 등 만큼인 것이고, 뿐만 아니라 모든 천지만물과 생사화복, 희로애락과 흥망성쇠 등의 주인이시자 선악 간 심판주이시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절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이름 가운데 약속되신 분으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며,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경험들 만큼인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와 나라들, 모든 시간과 공간들을 넘고 초월해서 언제나 함께 하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은혜와 사랑들, 능력과 역사들, 경험과 성취들만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그 모든 분량, 총량은 무에서 유로의 천지만물의 창조와 같은 모든 일반 은총들을 포함함은 물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 이 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크고 작은 모든 죄와 문제와 사안들, 순간과 실상과 심판들을 포함하는 것일 뿐 아니라 모든 인류들에 있어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등 모든 시간과 공간들, 모든 절망과 불가능들보다 더 크고, 온 우주라 하더라도 그 앞에서는 새 발의 피만큼도 안 되는 정도인 것이며..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심지어는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들이 다 포함되지 않을 수 없는 정도와 분량 만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전심의 사랑을 요구하시고, 배신에 대해 극히 진노하시며, 죄악에 있어, 선악 간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영원에 이르기까지 판결하시고 심판하시기에 합당하시고도 또 합당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오늘 이 시간 바로 나에게도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이 다 해당되고 하나도 빠짐없이 직결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완료형이면서도 한편으론 진행형이기도 한데 다른 그 누구보다 믿음으로 아무 공로 없이 구원 받게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내 힘이나 세상적 능력이 아닌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고, 특히 본질적으로는 말씀으로 치열하게 살면서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힘을 더욱 충만히 얻을 수 있어야 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 가운데 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진정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면 그러한 믿음의 결단과 몸부림들이 지극히 당연하고 또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따지고 보면 그 속에는 그러한 믿음의 경주들 그 이상의, 실상 비교도 할 수 없고 짐작도 다 못할 정도의 은혜와 복들이 생각 이상으로 생생하고 강렬하며 실질적으로 경험될 수 있고 예비되어 있는 것인데..
무엇보다 그렇게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역사들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구원의 일들, 곧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대속과 대신과 나음과 화평들,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능력들 등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모양의 은혜와 응답들, 승리와 복들 등에 온전히 거할 수 있고 생생하게 누릴 수 있으며 그 하나하나에 전적으로 직결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직접적,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행하시는 분이고, 게다가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실제와 역사들로 인해 더욱 생생하고 풍성하게 맛보고 누리며 나누고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사실상 그로 인해 더 죄악들과 싸우고 더욱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온 지경에 하나님의 뜻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가면 갈수록 더 세상을 이기고 주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더더욱 확장해 나가는 살아 있는 말씀의 믿음, 강한 용사와 같은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와 함께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더욱 더 진정한 축복과 부흥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 역사들의 도화선과 통로들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8:6~7)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13일(금)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