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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년의 십일조
신 26:12-19
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13)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16)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신 26:12-19 / [빈민 구제를 위한 십일조] 삼년마다 한 번씩은 농산물의 십일조를 중앙 성소로 가져오지 말고 각자 자기 성읍의 창고에 모아 놓고 그곳에 사는 레위 사람과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십시오. 13) 여러분은 이때에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렇게 아뢰십시오. `우리가 주께 바쳐야 할 것을 모두 바쳤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그것을 레위 사람과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모든 명령을 위반하거나 잊지 않고 다 준행하였습니다. 14) 우리는 상중에 주님의 거룩한 것을 가져다 먹은 일도 없고 몸이 부정할 때에 그것에 손댄 일도 없으며 그것을 죽은 사람에게 바친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이 십일조를 조금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15) 주님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시며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주신 이 땅에 복을 주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하소서.' 16) [계약을 중개하는 모세]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이 모든 계명과 규정을 지키며 살도록 명령하셨으니 여러분은 마음을 다 쏟고 정성을 다 기울여 그대로 지켜 행하십시오. 17) 여러분이 주님의 길로만 걸어가고 주님의 계명과 명령과 규정을 모두 지키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면 주께서도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오늘 약속하셨습니다. 18) 여러분도 오늘 주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주님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어 주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19) 주께서는 세상에 지어 놓은 모든 백성보다 여러분을 더 높여 주셔서 칭찬과 명성과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요구하신 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매 삼 년의 십일조를 드릴 때 해야 할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삼 년째 되는 해의 십일조를 성소에 들이지 말고 주변에 있는 레위인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돕게 하셨습니다.
매 삼 년의 십일조(12-15)
십일조는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는 십일조를 드린 후에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먹이고 배부르게 하라는 명령에 순종했다는 사실도 함께 십일조를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고, 초상 기간의 애곡하는 날에도 십일조를 유용하지 않았다고 말하여 자신의 십일조가 정결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종교는 바알이 초가을에 죽었다가 이른 봄에 부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초가을에는 여인들이 바알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을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드리는 이스라엘의 십일조가 이러한 이교풍습에 물들지 않았다고고백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의 장례 기간은 7일 정도로서 조문객을 접대하기 위하여 큰 비용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고백 후에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속 약속의 땅에 복을 내리시도록 기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의무(16-19)
본 단락은 12장부터 시작된 설교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명령은 강력했습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율법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강조합니다. 예배자들이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고 이 규례를 지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위대한 백성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들은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적용: 당신이 어떤 신앙을 고백하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정직한 사람은 자신의 신앙고백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순종은 신앙고백의 기초입니다.
< 설 교 >
보배로운 성도가 되는 길
신명기 26장 12-19절 / 이한규 목사
1. 선교 마인드를 가지라
본문 12절을 보라.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이 구절에서 ‘셋째 해’는 안식년 후에 3년째와 6년째 되는 해를 뜻한다. 그때는 ‘제2의 십일조’를 중앙 성소에 감사 축제를 위해 드리는 대신 성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비로 사용하게 했다. 그것을 ‘제3의 십일조’라고 한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제2의 십일조는 감사헌금이고 제3의 십일조는 선교헌금이다.
모세는 수입의 1/10을 ‘제1의 십일조’로 레위인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 용도로 내게 했고 제1의 십일조를 뗀 나머지 9/10에서 다시 1/10을 ‘제 2의 십일조’로 중앙 성소에 감사의 축제용으로 내게 했고 3년째와 6년째에 드리는 ‘제2의 십일조’를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용으로 내게 했다. 그 구제용 ‘제3의 십일조’로 성읍 식구들 중에 베고픈 사람이 없게 했고 레위인을 위한 구제 용도로도 사용했다.
레위인은 오늘날의 목회자와 교회 직원들이다. 객은 귀화한 이방인들로서 하나님은 그들을 선대하라고 했지만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기 힘들었다.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약자 계층이다. 하나님은 그런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피는 선교 마인드를 가지기를 원하셨다. 선교할 때는 국내선교와 해외선교를 병행해야 한다. 모세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경제적 도움을 줄 제일 대상으로 삼으라고 한 것은 교회가 구제할 때 자기 교인 구제도 잘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2. 성물을 남용하지 말라
모세는 구제를 위해 드린 제3의 십일조를 ‘성물’이라고 표현하면서 구제할 때는 동네방네 구제 사실을 드러내지 말고 하나님 명령대로 잊지 않고 구제를 행했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라고 했다(13절). 유대 랍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는 큰소리로 외치되 자신의 공덕을 고백할 때는 작은 소리로 고하라고 했다. 왜 모세는 구제한 후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지도 말고 잊지도 않았다고 고백하라고 했는가? 십일조인 성물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식 교육의 일환이었다.
본문 14절 전반부를 보라.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이 구절에서 ‘애곡하는 날’은 초상일을 뜻한다. 왜 모세는 초상일에 십일조인 성물을 먹지 않았다고 고백하게 했는가? 초상을 당해 유대인의 관습대로 7일장을 할 때 조문객을 위한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십일조로 구별해놓은 성물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 14절 후반부의 “부정한 몸으로 성물을 떼어두지 않았다.”는 고백은 “거룩하게 구별해서 십일조의 성물을 구별해서 드렸다.”는 고백이다. 또한 “죽은 자를 위하여 성물을 쓰지 않았다.”는 고백은 “죽은 자를 위한 제사 음식 장만에 쓰지 않았다.”는 고백으로서 십일조의 성물을 드릴 때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드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십일조가 아닌 온전한 십일조를 원하신다. 십일조를 마음대로 전용해서 세상적인 일에 사용하지 말고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위해 깨끗하게 드리라.
3. 최선을 다해 순종하라
모세는 “십일조를 바치는 명령대로 했으니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 땅에도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다(15절). 기도 응답은 말씀대로 행하면서 기도할 때 가장 아름답게 이뤄진다. 그렇게 십일조의 축복과 관련된 약속을 언급한 후 말씀대로 살라고 도전했다(16절). 말씀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17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말씀대로 힘써 살려는 삶에서 증명된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힘써 지키면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시겠다고 했다(18-19절). 이스라엘을 성민이라고 하지만 무조건 성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힘써 순종할 때 진짜 성민이 된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순종하면 성민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비하시키지 말고 자격지심에 빠지지 말라. 왜 사람이 자포자기하는가? 힘이 없어서가 힘의 원천이 없어서다. 힘의 원천은 말씀 중심적인 삶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지켜 행하려고 올인 하라. 그때 하나님의 마음도 얻고 기도가 능력 있게 되고 내면의 숨겨진 보화도 드러나면서 행복이 펼쳐진다. 초본 식물인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 때문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아멘!” 하고 순종하는 영적인 마디들이 있으면 은혜의 거장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나게 하십니다
신명기26:16-19절 / 고일성 목사
어느 낡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컨터키에서 온 육군대령과 함께 마차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육군대령은 주머니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내더니 링컨 대통령에게 한 모금 마시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때 링컨 대통령은 말합니다.“고맙습니다만 사양하겠소, 대령 나는 위스키를 마시지 않는다오.”잠시 후 대령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그 중 한 대를 링컨에게 권했습니다.
“아니오, 고맙소. 대령.”
그리고는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내가 술과 담배를 안 하는지 이유를 말하지요, 내가 아홉 살 정도 되었을 때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를 침대 곁으로 부르셨다오, 어머니께서는 몸이 매우 편찮으셨소.‘에이브야,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회복되지 못할 거라고 하셨단다, 나는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죽기 전에 평생 동안 위스키나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다오’라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소. 나는 그때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드렸다오. 그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 약속을 지켜 왔소, 당신은 내가 그 약속을 깨도 괜찮다고 생각하시오?”
대령은“각하, 저는 각하께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시도록 주의 하겠습니다. 그것은 각하께서 지금까지 하신 약속 중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서약은 아마도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식에서 약속하는 서약일 것입니다. 이 서약은 상대방을 배우자로 인정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맹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서약도 쉽사리 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의 불완전함과 타락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인간과의 약속은 어떻습니까?
역시 여기에서도 인간은 스스로의 유한성과 부패성을 드러내어 종종 약속을 깨뜨려 버립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붙들어 주실 때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에 이루어진 언약에 대한 서약의 내용입니다. 이 서약은 마치 아름다운 결혼 서약과 같이 하나님과 우리를 영적으로 결합시켜 줍니다.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서약의 당사자가 되셨으므로 이것은 영원한 서약입니다.
거경신(巨卿信)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 번 약속한 것을 어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 한나라에 범식(范式)이라는 이가 그 친구 장원백(張元白)과 봄에 이별하고 그 가을 9월 보름에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범식은 천리를 불구하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데서 유래된 것입니다. 거경은 범식의 자(字)로서 그후 거경신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훌륭한 품성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의 믿음이 없는 곳에는 불신만이 존재하고 서로가 함께 살 수 있는 약속의 틀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명예욕’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성공’이라는 말에 매우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위해 모험을 걸기도 하고 일생을 송두리째 바쳐 투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날로 극심해져 가고 있는 경쟁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존경받으며, 남보다 뛰어나고, 앞서가는 삶을 원하는 마음들을 누구에게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되어 자신이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하였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한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조기교육, 영재교육을 시킵니다. 학교 공부외에도 입시학원, 영어학원,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웅변학원, 컴퓨터학원, 태권도, 검도학원 등을 다니게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자신의 자녀만은 남보다 뛰어나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공한 것 같으나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고.
실패한 인생을 살아 남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왕 갔으니 하면서 갈 때까지 가다가 결국 허무를 느끼고 후회막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높은 산을 정복한 사람도 잠시 동안은 내가 여기 정상까지 올라왔구나 하면서 성취감을 그낄 수 있지만 그 다음의 느낌은 허탈감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정상에서 계속살 수는 없고 다시 정상에서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과 인간의 노력이 다 그러한 것입니다.
잠도 자지 않고, 남보다 한발 앞서 일어나고, 한발 앞서 달려가도, 그리고 필사의 노력으로 남보다 뛰어나다 하여도.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겠습니까?. 뛰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뛰어보았자 벼룩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보다 명예가 높으면 얼마나 높으며 그것이 얼마나 유지되겠습니까?. 하루 아침에 아니 때로는 한방에 갑니다. 권세가 있으면 얼마나 있습니까? 부자면 그 부함이 얼마나 되겠으며 얼마나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잠시 잠깐입니다.
뛰어남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 뛰어난 자가 있습니다.
명예가 높은 사람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권세를 가진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 큰 권세를 가진 자가 있습니다. 부요한 자를 거슬러 올라가서 더 큰 부를 소유한 자를 찾아보면 거기에는 더 부요한 자가 있습니다. 결국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에는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이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읍니까?.
결국 찾아서 끝까지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혜도 역시 우리 주님이 지혜자 위의 지혜자이십니다.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주장하시는 바로 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높여 주시고, 뛰어나게 해 주실 때만 우리가 모든 사람 위에,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을 허망한 데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찾을려고 애쓰지 마십시요.
우리에게 언약해 주시는 주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 뛰어나게 사는 성공적인 삶의 비결을 말씀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마음을 다하여 지켜 행하는 일입니다.
16절에“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에“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18절에도“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그 규례와 명령을 지켜 행하면, 19절에“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28장1절에도“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규례와 법도란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나님과의 모든 공적, 사적 권리와 의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하나니께서는 천하만물을 창조하시고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시며 섭리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규례와 법도를 친히 주시고 그것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명령에“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아니 순종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법칙이 있고 그 법칙대로 움직일 때 질서가 있으며 조화가 이루어 지고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에덴은 조화의 동산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평화만 있고, 아름다움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멸령에 따르지 않고 불복종하고는 그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그로부터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깨져버렸습니다.
마음의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과의 충돌이 생겼습니다. 교만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낙원의 삶을 잃어버렸고, 자기 기준 대로, 자기 마음대로 멋대로 사는 불행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는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질서가 파괴되고. 조화가 깨어지므로 시기와 질투가 생기게 되고, 그 결과 다툼과 미움이 지배하는 본래의 의도 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처럼 방황하는 인간에게 새 삶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를 통해서 주신 규례와 법도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설치하신 인생 철로와 같습니다.
기차가 두 철길 위에서 움직일 때 사고 없이 자유롭게 달실 수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 허락하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는 것이 이 땅 위에서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이 규례와 법도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법칙이란 말입니다. 신명기28장에는 보면 이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으나,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불복종은 여전하였습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과 같이 모두가 죄인이요 이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그냥 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말씀 하신대로 영원히 사는 생명의 길을 허락해 주셨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의 말씀인 진리를 따라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면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법이 때로는 무겁고 힘들어 보이지만 그 법으로 인해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생활에 찌들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성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 법 때문에 오히려 뛰어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준행하므로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성공자가 되며, 뛰어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약할 때 첫 번째로 필요한 요건은“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인정하다”는 말의 의미는 “약속하다”라는 말입니다. 또는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순종한다는 말은 믿는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주님은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고백을 듣고 싶어하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진정 나의 구세주로 인정하고 믿습니까?.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키시며, 도우시는 만왕의 왕으로 믿습니까? 믿으시면“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환난과 핍박당한다 할지라도, 손해본다고 할지라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변함 없이 주님을 사랑합니다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철저히 믿고 그 입술로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을 반드시 건져주십니다. 영화롭게 하십니다. 만족하게 하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높여 주십니다. 응답해 주십니다. 믿으시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인간 사회생활이 모두 약속에서 이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들은 모두가 상대적인 것이어서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이요, 또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부자간의 약속이나, 부부간의 약속, 사제지간의 약속이나 친구와의 약속, 더욱이 청치가들의 약속 같은 것은 얼마든지 변하고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찍이 예례미야 선지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17:9) 라면서 탁식하였는데 실로 인간의 거짓된 마음을 간파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 불변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히6:18-19절에는“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말씀은 희망이요,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로 믿고, 신앙안에서 바른 고백적인 삶을 사는 자에게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영육간에 엄청난 풍요로움과 기쁨이 주어집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란 주께서 동행해 주시는 삶이므로 범사가 형통합니다.
잠언서3:6절에“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은 나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합시다. 아무리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힘들어도 때로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가 오고 고통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의 주세주이심을 잊지 맙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비난과 조롱이 있어도,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돈독한 믿음의 성도는 위기 속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며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믿고 인정합시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뛰어나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시간도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하여 귀한 말씀을 들려 주고, 때로는 자연을 통하여, 때로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 어떤 경우에는 인간에게 주신 양심을 통해 필요한 메시지를 듣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영적인 당달 봉사입니다. 앞 날을 훤히 내다 볼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루 후의 일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먼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왜,그렇습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계속하여 전진해 가야하는 인생 길이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생길이기에 더욱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들보다 앞서 가면서 위험을 살피고, 위험할 때 신호를 보내어 멈추게 하고, 피하게도 합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의 선한 목자로서 수많은 난관과 극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우리의 무디고 더딘 지혜로 해결하지 못하여 절망할 때 우리에게 소리로 들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듣기 위해서 심령의 귀를 기울리고 들어야 합니다“내가 어떻게 해주랴 .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라고 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십니까?
기도와 간구하는 일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 말씀을 통해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읽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십시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듣고 행하려는 자세로 주님 전에 빠짐없이 나와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배우는 일에도 시간을 투자하십시요. 그리하면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외면하는 사람은 결코 바른 길을 살 수가 없으며, 바르게 살 수도 없습니다.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홀로 고독한 가운데 천사와 씨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그를 하나님이 뛰어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무엘상3:1-9절에 보면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엘리 제사장은 망했지만, 성전의 등불을 지키며 충성을 다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무엘은 선지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왕정을 세우는 국보같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페니 제인 크로스비’는 생후 6주가 되었을 때 안질이 생겼는데 의사의 오진으로 두 눈을 실명하여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95년동안 가장 행복하게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찬송가 가사를 무려 9천편 정도를 작사했고, 가수로, 시인으로, 복음 증거자로 일생을 뛰어나게 산 보배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를 그처럼 뛰어나게 만든 요인이 무엇일까?.
그는 비록 볼수는 없었지만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았습니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제주의 흘린 보배피로서 나를 정케 하소서”-219장
사랑하는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날마다 들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마다 들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들어야 합니다. 마음을 통하여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직 주님을 따라가면 푸른초장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목마르지 않습니다, 항상 만족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겁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지키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함께 동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어 기도합시다. 매일 성경을 읽읍시다. 성경을 배우시고 묵상합시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모든 상황을 바르게 살펴 보고 바르게 진단합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애쓰는 자에게 주님은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주의 음성을 반드시 듣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지키는 사람이 됩시다.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을 당신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민이 되게 하십니다.
다른 민족보다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십니다.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자가 되게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칭찬과 명예를 얻게 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뛰어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신명기 강해 54
신 26:12-19 / 푸른교회
신명기 26장은 맏물에 관한 규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통적으로 토지소산, 짐승, 사람의 장남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도 점을 율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맏물을 바치도록 율법으로 규정하셨습니까? 세상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깨닫게 하시기 위해섭니다. 우리는 맏물을 드리지만 하나님은 만물을 받으십니다. 맏물에는 그런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십일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십일조는 내 수입의 맏물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맏물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왜 보리가 그해 밭농사의 맏물일까요? 밭작물 가운데 제일 먼저 수확한 곡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밀이나 콩을 먼저 수확했으면 그게 맏물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보리가 첫 수확이었습니다. 수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수입이 맏물입니다. 요즘은 첫 수입을 따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입 총액에서 십일조를 가장 먼저 떼는 겁니다. 이게 맏물정신입니다. 이렇게 하면 돈이 없어 맏물을 못 드리는 법은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맏물 정신을 적용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다른 항목의 지출보다 맏물인 십일조부터 성별하십시오. 십일조는 맏물이기에 제일 먼저 구별하는 게 성서적입니다.
12절입니다.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3년 째 해의 십일조는 성막이나 성전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레위인과 객, 고아, 과부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안전망입니다. 레위인들은 경작할 토지가 없는 성전 봉사자입니다. 그래서 레위인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땅이 없으면 가난한 것입니다. 객이나 고아, 과부들은 당시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들입니다. 그런데 3년에 한 번씩은 이들의 생존권을 위해 십일조를 쓰라는 겁니다. 이게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헌금의 용처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평소에는 헌금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유지하는 데 쓰고, 3년에 한 번씩은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는 데 쓰라는 겁니다. 이런 전통을 그대로 계승해서 초대 기독교도 노약자, 고아, 과부들을 돌보는 구제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헌금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온전히 구별하여 드리고, 특히 3년째 실입조는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는 데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잘 이행하면 아름다운 복을 누린다는 겁니다. 14절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는 백성의 고백입니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하나님이 용처를 정해주신대로 십일조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맏물을 드리며 고백하는 것을 잘 들어보십시오. 15절 말씀을 보면, 복이 두 번 나옵니다.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드린 만큼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오히려 복을 받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계산으로 하면 명백한 손해가 되기에 못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이 나를 내려다 보사 내가 바치는 맏물 이상의 복을 주실 줄 믿고 바치는 겁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맏물을 올바르게 하나님께 드린 자가 받을 복입니다. 1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찬송을 부르게 하시고 명예를 얻게 하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복을 얻습니까? 16절을 보면 맏물에 관한 법도를 행하고, 마음과 뜻을 다해 받드는 겁니다.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16절).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잘 이행하시고, 분부에 아름답게 응답하십시오. 마음과 뜻을 다해 지켜 행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여호와의 성민으로 찬송을 부르게 하고, 명예를 얻게 하고,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깊이 신뢰하심으로 놀라운 복을 누리는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성민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보배로운 성도가 되는 길
신 26:12-19
1. 선교 마인드를 가지라
본문 12절을 보라.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이 구절에서 ‘셋째 해’는 안식년 후에 3년째와 6년째 되는 해를 뜻한다. 그때는 ‘제2의 십일조’를 중앙 성소에 감사 축제를 위해 드리는 대신 성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비로 사용하게 했다. 그것을 ‘제3의 십일조’라고 한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제2의 십일조는 감사헌금이고 제3의 십일조는 선교헌금이다.
모세는 수입의 1/10을 ‘제1의 십일조’로 레위인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 용도로 내게 했고 제1의 십일조를 뗀 나머지 9/10에서 다시 1/10을 ‘제 2의 십일조’로 중앙 성소에 감사의 축제용으로 내게 했고 3년째와 6년째에 드리는 ‘제2의 십일조’를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용으로 내게 했다. 그 구제용 ‘제3의 십일조’로 성읍 식구들 중에 베고픈 사람이 없게 했고 레위인을 위한 구제 용도로도 사용했다.
레위인은 오늘날의 목회자와 교회 직원들이다. 객은 귀화한 이방인들로서 하나님은 그들을 선대하라고 했지만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기 힘들었다.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약자 계층이다. 하나님은 그런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피는 선교 마인드를 가지기를 원하셨다. 선교할 때는 국내선교와 해외선교를 병행해야 한다. 모세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경제적 도움을 줄 제일 대상으로 삼으라고 한 것은 교회가 구제할 때 자기 교인 구제도 잘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2. 성물을 남용하지 말라
모세는 구제를 위해 드린 제3의 십일조를 ‘성물’이라고 표현하면서 구제할 때는 동네방네 구제 사실을 드러내지 말고 하나님 명령대로 잊지 않고 구제를 행했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라고 했다(13절). 유대 랍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는 큰소리로 외치되 자신의 공덕을 고백할 때는 작은 소리로 고하라고 했다. 왜 모세는 구제한 후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지도 말고 잊지도 않았다고 고백하라고 했는가? 십일조인 성물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식 교육의 일환이었다.
본문 14절 전반부를 보라.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이 구절에서 ‘애곡하는 날’은 초상일을 뜻한다. 왜 모세는 초상일에 십일조인 성물을 먹지 않았다고 고백하게 했는가? 초상을 당해 유대인의 관습대로 7일장을 할 때 조문객을 위한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십일조로 구별해놓은 성물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 14절 후반부의 “부정한 몸으로 성물을 떼어두지 않았다.”는 고백은 “거룩하게 구별해서 십일조의 성물을 구별해서 드렸다.”는 고백이다. 또한 “죽은 자를 위하여 성물을 쓰지 않았다.”는 고백은 “죽은 자를 위한 제사 음식 장만에 쓰지 않았다.”는 고백으로서 십일조의 성물을 드릴 때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드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십일조가 아닌 온전한 십일조를 원하신다. 십일조를 마음대로 전용해서 세상적인 일에 사용하지 말고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위해 깨끗하게 드리라.
3. 최선을 다해 순종하라
모세는 “십일조를 바치는 명령대로 했으니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 땅에도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다(15절). 기도 응답은 말씀대로 행하면서 기도할 때 가장 아름답게 이뤄진다. 그렇게 십일조의 축복과 관련된 약속을 언급한 후 말씀대로 살라고 도전했다(16절). 말씀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17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말씀대로 힘써 살려는 삶에서 증명된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힘써 지키면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시겠다고 했다(18-19절). 이스라엘을 성민이라고 하지만 무조건 성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힘써 순종할 때 진짜 성민이 된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순종하면 성민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비하시키지 말고 자격지심에 빠지지 말라. 왜 사람이 자포자기하는가? 힘이 없어서가 힘의 원천이 없어서다. 힘의 원천은 말씀 중심적인 삶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지켜 행하려고 올인 하라. 그때 하나님의 마음도 얻고 기도가 능력 있게 되고 내면의 숨겨진 보화도 드러나면서 행복이 펼쳐진다. 초본 식물인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 때문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아멘!” 하고 순종하는 영적인 마디들이 있으면 은혜의 거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