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실 여담
성큼 여름이 다가온 유월 초순이다. 어제 퇴근 후 연사고개로 올라 앵산 허리로 난 임도를 따라 유계로 향했다. 길섶엔 개망초 꽃이 점점이 피어났다. 인적 드문 산자락 산딸기나무가 무성했다. 딸기가 선홍색으로 익어도 지나는 사람이 없어 농익어 삭아갔다. 어릴 적 산딸기는 유월 하순 장마가 올 무렵 따 먹은 기억이다. 바위틈은 산간에 볼 수 있는 기린초가 노란 꽃을 피웠다.
유월 첫째 목요일이다. 지난 주말 창원으로 건너가지 않아 냉장고가 거의 비었다. 기본으로 머위장아찌와 김치는 있어도 다른 찬은 바닥이 났다. 토요일 거제에 머물면서 국사봉에 올라 따 온 곰취는 아직 남았다. 퇴근 후 시간이 있어 산책을 하고 와실로 들어 늦은 저녁상을 차린다. 전기밥솥에서 밥이 지어지는 사이 감자와 두부가 든 찌개를 끓여 곰취 쌈으로 한 끼 식사를 한다.
곰취만으로 며칠째 저녁을 잘 때우고 있다. 반주로 드는 막걸리 안주도 곰취가 제격이었다. 삼겹살을 굽거나 목살로 수육을 해서 곰췰 쌈 싸 먹어도 좋겠으나 나에겐 언감생심이다. 본래 식성이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잘 먹지 않는다. 혼자 드는 식사나 곡차 안주로 번거롭게 삼겹살을 굽거나 목살까지 삶을 일은 없다. 식사 후 닦아낼 기름기 설거지만 귀찮을 따름이다.
요즘 아침식사는 김자반으로 몇 끼 때우고 있다. 아침까지 곰취 쌈을 싸 먹으려니 좀 질렸다. 갓 지은 밥을 너른 대접에 담아 가루로 잘게 부서 볶아놓은 김을 얹어 비벼 먹는다. 김밥이 아닌 김 비빔밥을 드는 셈이다. 혼자 드는 식사는 영양이나 분위기를 떠난 편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조리 과정이 단순하고 짧은 시간에 차려냄이 좋다. 설거지 역시 간단해야 함은 당연하다.
거제로 와 일 년 몇 개월 지내면서 끼니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다. 바깥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와실에서 가까운 연사 정류소 근처 골목에 간이식당이 두 곳 있지만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면소재지 연초 삼거리 돼지국밥집에는 이웃 학교 친구와 몇 차례 들렸다. 어쩌다 고현으로 나가면 포장마차나 장승포 옥수동에서 추어탕으로 저녁을 해결한 적은 서너 번 있었다.
와실에 머물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은 무척 드물다. 흔한 햇반을 데우거나 빵과 우유로 식사를 대체한 날도 한 번 없이 끼니마다 꼬박꼬박 새 밥을 지어먹는다. 햇반은 아예 사 놓지도 않고 데울 전자레인지도 갖추지 않았다. 누가 전자레인지를 택배로 보내려했으나 내가 만류했다. 좁은 와실에 둘 자리고 없다고 했다. 날씨가 추운 계절엔 간편식으로 떡국은 끓여 먹기도 했다.
오늘이 주중 목요일이나 내일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창원으로 복귀를 예정하고 있다. 마침 이웃 학교에 근무하는 지인이 창원에서 같은 아파트단지 살아 그의 차에 동승해 갈 생각이다. 지인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간 덮고 지낸 이불은 가져가 얇은 이불로 바꾸어 와야겠다. 모레 토요일은 창원에 머물면서 낙동강 강둑 자전거 길 따라 트레킹을 나서볼까 한다.
오늘은 퇴근하면 연초 삼거리로 나가 봐야겠다. 농협 마트에 들려 몇 가지 시장을 봐 올 생각이다. 그간 먹어온 쌀이 떨어졌다. 지난 오월 초 고향에 들린 걸음에 큰형님이 농사지은 쌀을 조금 가져왔더랬다. 혼자 지내도 끼니때마다 한 줌씩 먹지 않았는가. 주식이 될 쌀을 사고 찌개 끓일 재료가 될 두부와 감자 양파와 풋고추도 사련다. 세탁세제도 동이 나기 전 마련해 놓아야겠다.
시장을 보면서 곡차도 몇 병 챙겨 담아야겠다. 농협 마트는 와실 근처 편의점보다 다양한 종류 곡차가 진열되어 있었다. 양조장과 제원이 각기 다른 곡차들이었다. 산성막걸리는 누룩 냄새가 살짝 났다. 인삼이 첨가된 막걸리도 보였다. 옥수수로 빚은 막걸리는 노란 빛깔이고 복분자로 빚은 막걸리는 분홍색이었다. 저녁에도 찬으로 삼을 곰취로 곡차 반주를 곁들이고 잠에 들련다. 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