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멘탈이 8시 뉴스 일반에 생존하는 법
박찬일
가방을 두고 오길 잘했다. 가방 두고 온 것만 생각한다. 가방이 집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부터 안 보였는지도 모른다. 가방만 생각한다.
누가 나를 밀치고 갔다, 가방만 생각한다
쇼윈도의 마네킹이 나를 떠난 여자와 닮았다, 가방만 생각한다
버스가 방금 지나갔나 보다, 그래도 가방이 이긴다
버스에 자리가 없다
내릴 때 카드를 단말기에 찍지 않았다, 괜찮다 가방이 이긴다
학교 건물에 도착했다,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휴대폰을 본다.
아뿔사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었다, 괜찮다 가방이 걱정이다
빠르게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는 길도 녹록지 않다. 버스 기사가 들려준 8시 뉴스 내용 일반에 잠시 흔들렸으나 괜찮다. 가방만 생각한다
가방이 신발장 위에 있었다. 기뻤다. 오늘은 성공적이다. 가방을 찾았고, 가방을 두고 가길 잘했다. 가방만 생각한 날 아닌가? 가방만 생각한 날 아닌가?
다시 버스가 방금 지나갔고 나는 찡그랑 깨지고
다시 텅 빈 교실에 들어서고 나는 쨍그랑 깨졌고
다시 첫사랑에 나는 주욱 금이 가고, 돌아가신 분께 나는 주욱 금이 간다.
가방을 신발장 위에 두고 나갈 방법이 있나?, 매일매일 잊고, 유리멘탈이 8시 뉴스 내용 일반에 생존하기 쉽지 않아.
-2022년 『시산맥』 겨울호-
박찬일 시인 1993년『 현대시사상』 등단. 시집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아버지의 형이상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