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재 전우가 줄포에 남긴 족적(3): 효자첨추이공정려기(문헌23, 이승종) 수권 188
3. 효자첨추이공정려기(孝子僉樞李公旌閭記), 간재 전우(1841~1922)
부령의 목상에 있는 오두적각(烏頭赤脚, 검은 머리에 붉은 다리, 즉 정문)이 이 마을(鄉里)을 밝게 비추고 있으니, 효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고부이씨(古阜李氏) 협(峽)의 정려라. 공의 10세조(十世祖)인 집의(執義) 휘 백첨(伯瞻)은 시문(詩文)으로써 당세(當世)를 울렸고, 단종 퇴위 후(光廟改正後)에 다시 벼슬하지 아니하였다. 공의 성품은 순질(淳質, 바탕이 깨끗함)하고 행실은 가정에서 받은 효우(孝友, 효도와 우애)의 가르침을 준수(遵守)하여 온청(溫淸, 부모의 거처를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하게 함)을 삼가 살피고, 맛있는 음식으로 받들며, 멀리 나가 놀지 아니하며, 부친의 병(病)이 심하니, 공은 초로전박(焦勞煎迫, 마음 졸여 애태우며 애씀)하여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였다. 하늘에 빌고 사당(祠堂)에 축원(祝願)하여 자신의 목숨(壽)를 내어 낫기를 바라니, 친환(親患, 부모의 병환)이 8년을 지나 거의 치료되었다. 그러나 다시 3년 후에 병이 위독하여 온갖 의술로도 어찌할 수 없었으니, 모든 방도(方道)를 다하며, 빌고 비는 그의 축원이 참으로 정성스러웠다. 그때 아버지가 죽과 미음을 들지 아니하면, 자신 또한 먹지 아니하기를 8개월 동안 하루와 같이 하였다.
부친이 세상을 등지니 여묘(廬墓)하여 소상(小祥)을 지나, 어머니가 또 돌아가시어 여막(廬幕)에서 5년을 지내니, 실로 애훼(哀毁, 몹시 야윌 만큼 부모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하고, 시척(柴瘠, 마른 나뭇가지처럼 몸이 수척해짐)하였다. 공이 82세에 이승을 등지니 첨지중추부사는 그 수직(壽職)이다. 후에 사론(士論, 선비들 사이의 논의)으로 작설지전(綽楔之典)을 받게 되었다.
내가 공이 살던 곳(桑梓之鄉, 고향의 뽕나무밭, 목중리)을 지나다가 공의 후손인 시찬(時燦)을 만나 나에게 정려기(旌閭記)를 청하기에, 그 만사(輓詞, 상여글)와 제문(祭文)과 행장(行狀)을 보았으니, 그 기록에서 말하기를, ‘덕이 있는성품(玉淵, 性品)은 담백하고, 풍모[芝宇, ’남의 의용‘(儀容)에 대한 존칭어. 몸을 가지는 태도, 예의에 맞는 차림새]가 빛이 났다.’ 또 말하기를, ‘화목함은 오늘날의 장공(張九齡, 673 ~ 740, 당나라 현종 때의 재상)이 두번째요, 성효(誠孝, 정성과 효도)는 오동(吾東, 우리나라)의 금노(黔老)와 짝이로다.’ 이는 가히 공의 공된 바를 보인 것이며, 이제 그 후손들이 번연하니, 또한 그 불식지보(不食之報)의 증험(證驗)을 보인 것이니 이같이 기록하노라.
19O8년(융희2, 戊申) 음력 8월(仲秋, 가을) 日 담양 전우가 짓다(潭陽 田愚 記)
孝子僉樞李公旌閭記
扶寧之木上有烏頭赤脚輝暎鄉里者. 故孝子僉知中樞府事古阜李氏峽旌閭也. 公十世祖執義諱伯瞻以詩文嗚於世 光廟改玉後不復仕. 公性淳質動遵家公孝友之教 謹溫清極滋味不遠遊. 父有疾寝劇 公焦勞煎迫髮為之白. 禱天祝廟願减己齡以痊父病 八年而後得廖 既經三歲病復危篤 醫窮技殫禱祝眞誠倍 於前時父不進糜粥亦不食八朔如一日. 既没廬墓過練 而母又亡居廬五年 哀毀柴瘠以 八十二歲卒 僉樞其壽職也. 後因士論蒙綽楔之典. 余過公桑梓之鄉 公後孫時燦謁記於余 余觀誄輓諸作有 云玉淵潛泊芝宇輝光 又云睦婣今世張公二 誠孝吾東黔老雙此. 可以見公之所以爲公 而今其後承蕃衍 亦見其食報之驗矣是為記. 戊申仲秋日 潭陽田愚記
[편집자주]
1. 오두적각(烏頭赤脚, 검은 머리에 붉은 다리, 즉 정문)
2. 순질(淳質, 바탕이 깨끗함)
3. 광묘개정[光廟改正, ‘광묘’는 조선 왕조 제7대 임금인 세조(世祖)의 별칭(別稱), 세조의 능호(陵號)를 광릉(光陵)으로 정했던 관계로 광묘를 별칭으로 사용하게 되었음. ‘개정’(改正)은 잘못된 법을 바르게 고치는 일. ‘광묘개정’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퇴위시키고 세조로 등극한 반정을 뜻한다.
4. 순질(淳質, 바탕이 깨끗함)
5. 효우[孝友, 부모(父母)에 대(對)한 효도(孝道)와 형제(兄弟)에 대(對)한 우애(友愛)]
6. 순질(淳質, 바탕이 깨끗함)
7. 온청(溫淸, 부모의 거처를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하게 함)
8. 초로전박(焦勞煎迫, 노심초사 마음 졸여 애태우며 애씀)
9. 친환(親患, 부모의 병환)
10. 여묘[廬墓, 상제(喪制)가 무덤 근처(近處)에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 일]
11. 소상(小祥, 사람이 죽은 지 한 돌 만에 지내는 제사)
12. 여막[廬幕, 무덤 가에 지은 초가(草家)로 상제(喪制)가 상이 끝날 때까지 거처(居處)하는 곳]
13. 애훼(哀毁, 몹시 야윌 만큼 부모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
14. 시척(柴瘠, 마른 나뭇가지처럼 몸이 수척해짐)
15. 수직[壽職, 해마다 정월(正月)에 80세 이상(以上)의 관원(官員) 및 90세 이상(以上)의 백성(百姓)에게 은전(恩典)으로 주던 벼슬]
16. 사론(士論, 선비들 사이의 논의)
17. 작설지전[綽楔之典, 충신(忠臣)ㆍ열녀(烈女)ㆍ효자(孝子)들을 표창(表彰)하기 위(爲)하여, 정문(旌門)을 세워 주던 나라의 특전]
18. 상재지향(桑梓之鄉, 고향의 뽕나무 가래나무)
19. 만사(輓詞, 죽은 사람을 위하여 지은 글, 상여글)
20. 제문[祭文, 죽은 사람을 조상(弔喪)하는 글. 흔히 제물(祭物)을 올리고 축문(祝文)처럼 읽음. 애뢰]
21. 행장[行狀, 일생(一生)의 행적(行蹟)을 적은 기록(記錄)]
22. 풍연(玉淵, 아름다운 덕이 모인 연못, 덕이 있는 품성)
23. 지우[芝宇, ‘남의 의용’(儀容)에 대한 존칭어. 몸을 가지는 태도, 예의에 맞는 차림새]
24. 장공[張公, 장구령(張九齡, 673 ~ 740): 당나라 현종 때의 재상. 광둥성[廣東省] 취장[曲江] 출생. 진사에 등과하였고 문재(文才)로 문인 재상 장열(張說)의 추천을 받아 중서사인(中書舍人), 중서시랑(中書侍郞)을 거쳐 733년 재상이 되었다. 안녹산(安祿山)이 위험인물임을 간파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며, 반대파인 이임보(李林甫)에게 미움을 받고 좌천되었다(736). ‘취장장선생문집’(曲江張先生文集) 20권이 현존한다. 광둥성 취장에서 9대(代)가 함께 화목하게 살았다 함.]
25. 성효(誠孝, 정성과 효도)
26. 오동(吾東, ‘옛날에, 동쪽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일컫던 말)
27. 금노(黔老)
28. 번연(蕃衍, 넓게 퍼지다, 번창하다)
29. 불식지보[不食之報, 조상(祖上)의 음덕(陰德)으로 자손(子孫)이 잘 되는 보응]
30. 증험[證驗, 사실(事實)을 경험(經驗)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