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이 돈다. 노자 장자가 술잔에 녹아들고 무쇠그릇의 장어가 하얗게 질려 식지도 않는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오고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15년 남짓 안면 만으로 알고 지내던 이웃 4부부가 저녘을 같이 먹는 자리다.
창 너머 다리에서는 아까부터 푸른 불빛을 밝히며 언제부턴가 자리잡았을 한 자락 어둠을 밀어내는데 응원을 한다. 이들 중에는 일찍 퇴직한 사람도 있고 올해들어 1차 직업전선에서 모두 물러나고 제2 제3의 직업으로 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여자들은 그들에게 놀 자격이 있다고 자격증을 하나씩 인정하기로 하였다.
세상 살 만큼 살아서 알 것은 아는 사람이라 크게 마음쓰이지는 않았다.
어느새 그들이 붙여준 내 별명, ‘오 해피’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3가족은 종종 만나서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하던 사이라 구면인데 한 가족이 더 참석하여 나는 기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현상으로 내가 놀란다. 최근들어 남편의 목소리가 부쩍 커지더니 이곳에서는 더 커지는 것같다. 게다가 평소에 말이 없다고 믿은 내 남편은 이만저만 변모를 하는게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싫다. 좀 그러지 말지....음마 왜 저런 말은 하고 그래. 참 미치겠네." 하면서 반찬을 자꾸 집어먹었다. 그래야 남편의 말에 집중하는 것을 들키지 않을 것같은 무의식적 습관인 것같다. 다른 아내들도 자기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모두 좋은 관계이기 위해 노력한다. 직장일 관계로 만난 것도 아니고 구차하게 산 사람들도 아니기에 편했던 것같다.
서서히 내 두뇌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어릴 때부터 남성이 여성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길러져서인지 나는 남성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좋은 기대를 하게 된다. 이만큼 살았으면 알 법도 한데 아직도 더 좋은 것이 남아있는 것같은 착각을 하고 있다가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부질없는 희망 하나를 버리기로 하였다. 여성의 특성보다 인간적이라고 부르짖으며 조심성이 없어져가는 우리 여성에게 남성들도 그렇게 희망을 버렸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일 중심으로 산 남편과 이제야 부부의 문화를 곁들이려니 내가 부부 모임에 대해 혼자 쓴 각본의 멋진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도 되어진다.
그날 밤 꿈은 아주 특별하였다. 마치 다큐멘타리 영화를 본듯 하였다.
뱀이 내 머리 좌측 위 바위 속에서 기어나오고, 그 아래의 넓다란 이파리 위에서 두꺼비가 눈을 껌벅거리고 있다. 몸에는 윤기가 번들거리며 촉촉하게 젖어있다. 내가 아유~~~하면서 고개를 떨군채 웅크리고 있는데 그 옆 잎사귀에 딱정벌레가 동그마니 앉아있고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이 버글거리며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뱀이 징그러운게 아니라 순하게 생겼고 하얀색에 검은 무늬가 드문드문 찍혀 있었다. 나는 아침에 깨어 무엇이 나를 이런 꿈을 꾸게 했을까 생각해보고 한참만에 웃고 말았다. 내 꿈에 등장한 동물은 그날 밤 함께 한 4남자들이었다. 내게 인상지어진 모습으로 상징되어진 것이다.
순한 뱀은 친구 남편인데, 첫 술자리에서 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용하게 잔을 비우는 매너가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는 돌아오면서 말 좀 하지 그렇게 무안하게 가만히 있었냐고 그랬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첫눈에 사진을 찍은 듯 선명하게 특성이 감지된다. 글을 쓰면서 붙은 습관일 것이다. 평소에 보아온 콧잔등의 아주 얇은 마마흔적이 살이 빠지며 조금 진하게 보인다고 아주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주의력 없이 보면 보이지도 않는다. 그 남자들 중 가장 현직에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 터라 가장 윗 자리에 큰 동물로 나타났고, 지혜롭다고 생각되어 뱀으로, 살짝 곁들여졌다고 느껴진 자국이 점박이로, 심성이 착해 보인다고 느껴 순한 얼굴로 나타났나보다.
두꺼비는 아랫집 친구네 남편으로 눈이 상당히 크고 술이 들어가자 痴莩?사람이 말이 부드럽게 풀렸다. 취하면서 얼굴이 번들거리며 안경너머로 큰 눈이 껌벅거려 두꺼비로 등장하였다. 술 권한다고, 2차 가자고 했다고 아내에게 옆구리를 마구 찔렸지만 술이 들어가서 그렇게 변신할 수 있다면 그 집 술은 좋은 술이다.
딱정벌레는 가장 연장자인데 일체 말이 없었다. 가끔 추임새로 “어허” 하며 바람같은 웃음을 날리면 저마다 자기언어로 알아듣는다. 술이 들어가도 침묵하시는구나 생각하였는데 마음의 갑옷이 연상되어 단단한 껍질을 덮어 쓴 딱정벌레로 인상지어졌나보다. 그날 입은 남방의 색이 멋스런 붉은색에 검은 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단단한 껍질과 딱정벌레 색깔이 합성되어 딱정벌레란 이미지로 등장하였다.
기타 자질구레한 벌레가 내 남편이었던가보다. 그 자리에서 내가 뭐하러 구질구질하게 저런 말을 하고 그럴까 라고 생각하였는데 누군가가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어서 좋겠다고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내 남편도 '자질구레'라는 표현을 썼던 것같다. 해서 싫다고 느낀 말과 자질구레란 단어가 합성되어 바삐 돌아다니는 여러 벌레로 나타났나보다.
한 때 젊은 아이들이 싫은 사람을 “멍게 해삼 불가사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꿈에 등장한 동물군은 다분히 이유가 있게 그 이미지에 들러붙었다.
꿈이 우리를 고달프게 만드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합성하는 것 때문이다. 반복하여 같은 꿈을 꾸는 것은 고려해볼만한 일이다. 내 꿈에 등장한 동물들을 보면서 인간의 꿈에 무슨 이미지가 안 튀어나오겠는가 싶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런 동물을 생각도 한 적이 없다. 최근, 아들의 그림에 소가 등장하여 일하고 싶은가보구나 생각한 적이 있는데 꿈이나 내면화에 등장하는 동물을 일단 사람의 특성에 빗대 보는 것은 풀이에 도움이 될 것같다.
첫댓글저도 꿈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관심은 많습니다. 구스타프 칼 융에 따르면 반복해서 꾸는 꿈은 확실히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고 합니다. 원인이 분명 있는 것이고 우리 삶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에. 꿈을 해석하는 데에 정답은 없지만 연습해서 배울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사실 무의식의 세계는 바다와도 같으니...
+하하, 함께님! 제가 요즘 '함께'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됩니다/오늘은 함께님 때문에 또 놀라서 가네요.../앗!나는 요즘 고딩동창들하고 놀다가 꿈에서 깨어납니다.한국에 왔는가...하구 놀라서 일어나보면...아직은 아니네요..^^/좋은 글...긴글이라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는 글 가에서...잠시 멈췄다가 인사드리고 갑니다
꿈의 내용은 무의식세계, 결국엔 현실세계의 꾸밈없는 반영이라고 합니다. 물론 정확한 해석을 위해선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저는 꿈을 그냥 '꿈'으로 아름답게 간직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프로이트적 분석이 때로 가혹할만큼 비인간적이라고 생각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함께 님, 고맙습니다.
함께 님, 맞습니다. 남을 도우려는 전문가의 입장에선 그건 정말 당연합니다. 특히 인류사에 있어 제3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일컫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공헌은, 특히 꿈의 해석분야에서의 혁혁한 공헌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단 꿈마저 신비의 세계에서 벗어난 것이 안타까워서였습니다 ^^ 고맙습니다.
함께님, 미술 심리치료를 하시는군요. 흥미롭고 유익한 일일거라 생각되는데. 사실 저도 프로이트식의 꿈의 해석 혹은 정신치료를 위한 접근방법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꿈의 해석에 대한 관심은, 강렬하게 혹은 반복적으로 꾼 꿈이 계속 잊혀지지 않아 이 꿈을 해석해보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최근 생겨난 것이지요.
송봉모 신부님의 책 "생명을 돌보는 인간"을 읽고 나름대로 좀 놀랍기도 했고요. 아하, 하느님이 꿈을 통해서도 생명을 주시는구나, 메시지를 전하는구나...싶어서. 그래서 융의 책도 좀 읽어본 것이지요. 대단히 흥미롭더군요. 제가 알지 못했던 어떤 다른, 그러나 저 자신,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은 세계를 발견한듯해서.
내 안의 관찰자라고 말하면 틀리려나요? 열망하거나 필요하면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겠지요. 비우고비우면 그 관찰자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발달하여 산만하지 않게 변하거나 특별한 힘을 얻기도 하지요. 그림도 처음에는 자기를 밖으로 드러내는 자가치료의 대안이엇는데 점차적으로 세련되어지고 의지적으로
그리면서 예술이라고 분야를 정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 어떤 피정이나 말씀이 묵상으로도 그림세계를 당하지는 못했습니다. 제 경우에는요. 바로 무의식이 흘러나오는 경로를 정확히 포착하고 건데기를 건질 수 있거든요. 제가 디카를 마련했어요. 언제라도 새롭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내 문제와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워낙 광범위하고 무궁무진해서 아는 척도 하지 못합니다만 경험을 통해, 지도자의 확인을 받은 것에 한해서, 제 알량한 공부의 받침으로 조금씩 남을 돕습니다. 한동안 집단웍셥을 통해 피정도 해보았지만 그정도로는 턱도 없는 일이기에 맛만 보여주고 원천적으로 자기탐구를 희망하는 사람
들에게 안내를 해드립니다만 두어명 정도 외에는 입만 아팠습니다. ㅎㅎ 그만큼 자기보기를 두려워 한다는 예증이지요. 속시끄러울 때가 귀찮쟎아요. 그것이줄어들면 살기가 참 많이 편해요. 많은 사람들이 배고파서 우는 것보다, 삶이고달파서 우는 것보다, 마음으로 더 시달림을 받는 것같아요. 꺼내놓고보면 아무
첫댓글 저도 꿈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관심은 많습니다. 구스타프 칼 융에 따르면 반복해서 꾸는 꿈은 확실히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고 합니다. 원인이 분명 있는 것이고 우리 삶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에. 꿈을 해석하는 데에 정답은 없지만 연습해서 배울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사실 무의식의 세계는 바다와도 같으니...
함께님의 글, 언제나 함께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함께네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인데 미술 심리치료를 하다보면 꿈과 이미지 변용이 맞아서 제 꿈을 늘 주시하는 편입니다. 긴 ㄱ르 읽으시느라고 애쓰셨습니다. 다름 곳에 발표하면서 옮겨두었습니다. 건강하세요.
+하하, 함께님! 제가 요즘 '함께'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됩니다/오늘은 함께님 때문에 또 놀라서 가네요.../앗!나는 요즘 고딩동창들하고 놀다가 꿈에서 깨어납니다.한국에 왔는가...하구 놀라서 일어나보면...아직은 아니네요..^^/좋은 글...긴글이라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는 글 가에서...잠시 멈췄다가 인사드리고 갑니다
꿈의 내용은 무의식세계, 결국엔 현실세계의 꾸밈없는 반영이라고 합니다. 물론 정확한 해석을 위해선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저는 꿈을 그냥 '꿈'으로 아름답게 간직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프로이트적 분석이 때로 가혹할만큼 비인간적이라고 생각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함께 님, 고맙습니다.
어차피 저는 이미지 탐구를 해야 남을 도울 수 있거든요. 적어도 남에게서의 학습보다는 자신에게서 학습하면 차츰 소설 읽기도 시를 느끼기도 추상화를 감상하기도 유익하고 풍성해서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기에 좋아서요.
함께 님, 맞습니다. 남을 도우려는 전문가의 입장에선 그건 정말 당연합니다. 특히 인류사에 있어 제3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일컫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공헌은, 특히 꿈의 해석분야에서의 혁혁한 공헌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단 꿈마저 신비의 세계에서 벗어난 것이 안타까워서였습니다 ^^ 고맙습니다.
함께님, 미술 심리치료를 하시는군요. 흥미롭고 유익한 일일거라 생각되는데. 사실 저도 프로이트식의 꿈의 해석 혹은 정신치료를 위한 접근방법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꿈의 해석에 대한 관심은, 강렬하게 혹은 반복적으로 꾼 꿈이 계속 잊혀지지 않아 이 꿈을 해석해보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최근 생겨난 것이지요.
송봉모 신부님의 책 "생명을 돌보는 인간"을 읽고 나름대로 좀 놀랍기도 했고요. 아하, 하느님이 꿈을 통해서도 생명을 주시는구나, 메시지를 전하는구나...싶어서. 그래서 융의 책도 좀 읽어본 것이지요. 대단히 흥미롭더군요. 제가 알지 못했던 어떤 다른, 그러나 저 자신,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은 세계를 발견한듯해서.
내 안의 관찰자라고 말하면 틀리려나요? 열망하거나 필요하면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겠지요. 비우고비우면 그 관찰자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발달하여 산만하지 않게 변하거나 특별한 힘을 얻기도 하지요. 그림도 처음에는 자기를 밖으로 드러내는 자가치료의 대안이엇는데 점차적으로 세련되어지고 의지적으로
그리면서 예술이라고 분야를 정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 어떤 피정이나 말씀이 묵상으로도 그림세계를 당하지는 못했습니다. 제 경우에는요. 바로 무의식이 흘러나오는 경로를 정확히 포착하고 건데기를 건질 수 있거든요. 제가 디카를 마련했어요. 언제라도 새롭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내 문제와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워낙 광범위하고 무궁무진해서 아는 척도 하지 못합니다만 경험을 통해, 지도자의 확인을 받은 것에 한해서, 제 알량한 공부의 받침으로 조금씩 남을 돕습니다. 한동안 집단웍셥을 통해 피정도 해보았지만 그정도로는 턱도 없는 일이기에 맛만 보여주고 원천적으로 자기탐구를 희망하는 사람
들에게 안내를 해드립니다만 두어명 정도 외에는 입만 아팠습니다. ㅎㅎ 그만큼 자기보기를 두려워 한다는 예증이지요. 속시끄러울 때가 귀찮쟎아요. 그것이줄어들면 살기가 참 많이 편해요. 많은 사람들이 배고파서 우는 것보다, 삶이고달파서 우는 것보다, 마음으로 더 시달림을 받는 것같아요. 꺼내놓고보면 아무
것도 아닌 듯 작은 것인데도 말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쓰레기통 차듯 무엇인가 차니까 또 둔해지는 것같아요. 날마다 글쓰는 이유가 쌓이지 말라는 제 노동 방식입니다. 이끼님 진정성에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