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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율 80%, 비 소식이 있었다. 여름같은 날씨를 흉내내는 버릇이 생긴 늦봄절기, 한 낮에 극한적이지만, 산막에선 아침, 저녁과 한밤중엔 쌀쌀한 편이다. 기온도 그렇지만 어느때는 극지성 소나기 형태를 보일적 도 있는 것이 요즘 강우량이다. 순례나 걸어 다니며 행하는 여행스케치 일정에 있어 날씨와 관련한 장비나 옷차림은 좀 더 세세하게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최악의 상태의 환경을 기준으로 준비한다면 어떠한 돌발이 생겨도 이겨낼 수 있지만 부족하게 챙기고 다니다 악조건을 만나면 낭패를 보게된다. 절기 특성을 고려한 최악의 기상 조건을 염두에 두고 옷차림과 장비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중량의 부담이나 관리의 부담을 주는 정도의 준비도 문제지만 너무 안이한 준비도 화를 부른다. 출행 하루전으로 다가오자 평소 습관대로 다시 일기를 체크해 보았다. 전일까진 비소식은 그대로인 반면 당일의 일기예보는 변화가 있었다. 자정무렵 비소식, 1시이후에는 구름이 많음 그리고 종일 유지하다 오후 6시경 해빛을 볼 수 있다는 분석으로 바뀐것이다. 다시 nap-sack를 열어 준비물을 바꿨다. 오버트로스 상하를 꺼내고 다시 방풍, 방수,투습, 보온이 좋은 쟈켓으로 바꿨다. 그리고 지니고 다닐 식수도 옥수수차로 변경하여 다시 채웠다. 신발도 편한 단화형 워킹용으로 변경하고 오전 5시 10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외부로 나가면 바로 횡단보도와 연결되는 출구로 나가 지하철로 들어 섰다.
텅빈 지하철 로비, 윗주머니에 넣어둔 마스크를 꺼내 호흡개구부를 덮고 첫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환승장에서 10 분을 기다리며 오늘일정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다듬었다. 만약 지나친 비가 내릴 경우 시 대처하는 방법과 이런저런 일정에 대하여 다시 정리하다 도착한 전철에 오른 후 정확하게 6시 20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5월은 성모성월, 성모님에게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할 일이 참 많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순교로서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하신 순교자들의 거룩한 뜻을 새기는 마음의 행로가 바로 오늘의 중요 일정임을 되새기며 내달았다. 안개가 짙고 보슬비는 끝없이 내리는 중에 이동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날씨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였다. 가벼운 조찬같은 음식나눔 장소를 호반기슭으로 할까? 하다 이티 넘어 성지 마당으로 바꿔, 재를 넘어 섰다. 넘으며 가시거리에 넘실거리는 숲의 전경, 미혹의 아름다움 그자체였다. 아~~ 자연처럼 세상도 이토록 아름다우면 좋은련만~~~~ 통제된 사회에선 익숙하지 않은 일로 적응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지켜야 한다.
포용의 선이 아름다운 성모님 동산에 몰려 가 기도부터 드렸다. 자애의 주인이신 성모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 그 안에 담긴 삶의 뼈아픈 환경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자애와 자비의 마음으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굳게 닫힌 성전과 카폐 문을 응시하며 욕망으로 가득 찬 허구의 문명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속삭이듯 살아 남으려면 변해야 한다. 하고 자신에게 주지시켰다. 비에 젖은 의자를 딱아내고 파라솔 밑에 옹기종기 앉았다. 커피와 각자 준비한 행동식을 꺼내 놓고 나눔시간을 갖었다. 바람도 떠난 공간에 두견새와 산비둘기가 허공을 가르며 숲은 잠들지 않었다는 표현으로 노래부르며 삼박골과 그 너머 정삼이골로 날아가버렸다. 이른 아침숲에 피어나는 안개빛 이슬꽃들은 숲의 온갖것들을 미혹의 아름다움으로 불러 모으고 있었다. 다들 너무 아름답다 연발하여 숲이 지닌 창조적 질서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우리들 마음에 스며들었다. 삼박골로 떠나기 전 숲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증거하려는 듯 몇장의 사진을 남겼다.
다시 차에 올랐다. 도착때 보다 안개는 더욱 더 짙어졌다. 가랑비는 여전했다. 산천초목 중 어느것 하나 젖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기가 살짝 어린다는 것은 애상(哀傷)을 불러오기 좋은 환경을 보여준다. 이티마을을 중심으로 북쪽은 차령산맥 줄기로 막혀 있고 서북방향으로 갈라진 계곡을 걸어 오르면 엽돈재로 나가는 주능을 만나게 된다. 이 주능은 성거산으로 이어지고 공주방향까지 산세는 늘어진다. 박해를 피해 내포지방 천주학쟁이들이 선택한 피난의 지역은 성거산과 서운산 등 차령산맥 자락이었으며 그곳은 바로 최적의 장소였다. 성거산엔 소학골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서운산 동북부 기슭으로는 배티를 중심으로 부채 살처럼 신앙공동체가 골짜구니 마다 박해를 피해 만들어졌다. 특히 삼박골에는 공소가 있었고 다블뤼 안 안토니오 선교사와 강 칼렌 신부님이 머물던 장소였다. 다블뤼 신부님은 사목 대부분을 충남 여사울 부근 신리에 사제관을 짓고 그곳에서 머물면서 한국천주교사를 집필했던 장본인이었다. 일부는 작성하여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내졌으나 귀중한 자료들은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게된다. 그러나 남아 있던 귀중한 자료와 다시 조선팔도 교우촌을 다니며 채집한 교우들의 실태를 파악한 자료로 훗날 달래 신부님은 한국천주교사를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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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마을에서 우측으로 한 번 꺽으면 양백마을 입구 하백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완만하게 다시 좌측으로 꺽어 직진하다보면 격하게 휘어진 곳에 다리가 나온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종전에 있던 다리가 오히려 운전하여 넘어가기가 편했었다. 왜? 새로 다리를 놓으면서 심한 변곡을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 할 수 없는 지점이 되어 버렸다. 다리끝에서 격하게 좌측으로 틀어 나가면 다리가 있는 좌측입구가 나온다. 이 길이 삼박골 신앙 공동체가 있던 골짜기다. 교난을 피해 숨어살던 옛교우촌들은 지형적으로 나름 특색이 존재한다. 외부에 마을이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과 계곡이 깊고 물이 풍부하고 전답을 일궈나갈 수 있는 평지가 있고 또한 유사 시 관졸들의 습격을 피할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삼박골 건너에도 은골이라 부르던 신앙공동체가 있었다. 이곳도 그러한 특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삼박골 공동체는 한양에 살던 신분적으로는 사대부라 부르고 인격적으로는 사군자라 부르던 사대부 진사 이호준 요한 일가가 숨어들면서 신앙공동체가 발원되기 시작한다. 이진사는 평창 이씨로서 한국천주교에서의 최초 세례자 만천 이승훈의 평창 이씨 가문의 일원이다. 그 가문의 일원인 이 진사도 박해를 피해 삼박골로 숨어들어 살다. 부인과 딸을 순교로서 잃는다. 교우들의 손으로 관리되어 면면이 이어져 오던 묘역이 배티성지가 구체화되고 교구차원에서 관리운영되기 시작하면서 배티성지 연관 성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5*5 규격의 각목나무에 흰색으로 칠한 나무십자가가 도열해 있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야 순교자의 묘역을 참배할 수 있었고
큰 길에서 이곳까지 올라 오려면 숲풀이 우거진 좁은 흙길을 올라와야 했었는데 최근들어 2020년 6월30일 완공 목표로 진입로와 주차장, 그리고 묘역을 오르는 길과 묘택까지도 새롭게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 진천군에서 문화관광지원 사업비로 지원하여 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고형 게시판에 기록해 두고 현재 공사 진행중이었다.
1구간 포장 공사가 끝나고 이어서 2구간 도로공사가 주차장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성거산 성지나 배티성지의 순교자들의 특색은 순교자의 신분이 밝혀진 인원 수보다 무명순교자의 수가 많다는 사실이다. 화초는 사람들이 보살피고 키우지만 야생화는 하느님께서 직접 보살펴 주시고 키워 주신다는 의미를 빗물이 맺힌 흰 마가렛 꽃을 보면서 차를 아스팔트 끝자락에 세워 두고 묘역을 걸어 올랐다. 옛적에 방문하였을 때 이름모를 안개꽃 모양의 흰꽃이 지천을 이루던 밭을 보면서 작은 공소가 재건축되어 복원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최양업신부님도 들렀던 신앙의 역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침목 계단으로 순례자의 길오름을 안전하게 해 주었던 옛 오름길은 완전히 해체되어 묘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흙의 성질은 메말라 있을 때는 지내력이 있지만 물을 만나게되면 지내력이 상실되어 곤죽으로 바뀐다. 흙이 곤죽으로 바뀌면 보행이 어렵다 특히 비탈진 길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름을 포기하고 하단끝에 서서 올려다 보며 순교자를 위로하는 기도를 드렸다. 상단 십자가 비석이 있는 묘가 이진사의 부인 묘이고 십자가 비석이 해체되어 있는 묘가 이진사의 딸 묘다.
참 좋은 세상이다. 종이가 없어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전자 책이 있는 세상이다. 스마트폰에 있는 기도문을 이용하여 성심의 마음을 끌어 모아 호홉의 진동으로 드러내는 기도외우는 소리가 아름답게 새소리처럼 옛 신앙 공동체 삼박골 깊은 계곡을 맴돌다 정삼이골 너머로 사라졌다. 몇마디의 기도문으로 순교자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분들의 위로는 하느님께 맡겨두고 숭고하고 거룩한 순교정신만 이어 받으면 된다. 당시 순교자들이 순교직전 까지 외우던 예수, 마리아만 잊지 않고 공경하면 된다. 그리고 평화의 뜻만 빌어 실천하면 되는 일인데 이 일이 그렇게 쉽지 않으니, 늘 평화 앞에서 믿는자로서 죄인이 되는 것이다.
잠시 이슬비의 세력이 안개에 밀려 멈춰다. 공기는 서늘하고 맑다. 되짚어 걸어 내려오면서 예수, 마리아하고 불러 보았다. 그리고 배티로 도망치던 계곡을 응시하며 신앙 공동체의 정경을 떠올려 보았다. 오전 일정을 이어가기 위하여 신앙 공동체에 살던 신앙인들이 걸었던 길을 걷기 위하여 자리를 이동하였다. 오늘은 백곡공소가 현재에도 있는 백곡에서 용진마을 공동체까지 산 길이다. 도상거리는 약 7km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정원이 아름다운 교우가 운영하는 가든 정원에 주차를 한 후, 순교자들이 걸었던 길을 걷는 걸음 여행을 시작하였다.
백로와 왜가리가 먹잇감을 기다리는 백곡천을 걸어 올랐다 저 멀리서 서 있던 백로가 벌써 인기척을 느끼고 숲을 배경으로 차고 올랐다. 새들과 짐승들 대부분은 인기척을 느끼면 쏜살같이 사라진다. 인간을 포획자로서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독이나 강한 턱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은 공격하기도 하고 도피의 행적도 느릿하게 행동하는 것이 특색이다.
진달래와 철쭉이 사라지는 무렵이면 어디를 가나 애기똥풀이 지천으로 피기시작한다. 꺽어보면 모유를 마신 아기의 배설의 빛과 같은 노란색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년 전 명동 카돌릭 화랑에서 나환자 환우촌 산청 성심원의 일상에 대한 사진전이 열렸었는데 사진전 제목이 바로 애기똥풀이었다. 초록빛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란색, 애기똥풀 대와 잎의 색은 초록이고 꽃은 노란색이다 보니 색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서민들의 아름다움을 담은 이름과 꽃의 서정성이 그렇게 곱게 다가 올 수 없다. 흔하면서도 모여 있으면 더욱 아름다운 꽃, 애기똥풀은 분명한 서민들의 마음이다.
예부터 초목으로만 지은 집을 불러 우린 초가집이라하였다. 쌀농사를 지어 알은 곡식을 만들어 연명하고 짚단은 이엉을 만들어 초가지붕을 잇고 소나무로 집 틀을 세우고 수수깡이나 싸리나무를 엮어 황토를 발라 벽을 세우고 돌을 맞춰 황토를 뭉개어 온돌을 만들어 살았다. 하루아침에 해체하여도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재들이었다. 그러한 인성으로 살았으니 자연으로 숨어들어 모진 박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의 갈등과 욕심으로 발고자가 생겨 관졸들의 습격으로 풍비박산이 나기도 한 것이 바로 박해시기의 순교자들의 삶이었다.
초가집을 휘돌아 재로 나가는 길로 들어섰다.
비는 다시 오기 시작하였다. 이슬비 수준이다. 걸으며 안으로 들어 갈수록 숲의 향취는 깊어갔다. 아카시아 향이 흐르고 그 아래로는 자라며 풍기는 쑥향이 쑥하고 튀어 나왔다. 누군가의 잎에서 쑥하더니 쉼을 쑥띁는 시간으로 대체하였다. 떡과 쑥부침개를 만들어 먹을 요량으로 챙기는 것이다. 오늘도 일정이 다 끝나는 시간에 산막으로 올라 가 쑥부침개로 저녁을 대신할 계획이다. 재를 넘어섰다. 손에 손에는 다들 쑥봉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느릿하게 깊은 산골에 숨겨진 길을 타박타박 걸어 작은 못을 보고 삼포도 보면서 걸음 여행을 마친 후 애기똥풀이 가득한 수목 아래에 서서 걸음 여행 마침의 의식을 치렀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 쑥봉지다. ~~~ 극성이 아니라 자연 친화적 심성이다
토속음식을 현대화한 상차림으로 대신한 점심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시간은 오후 1시 20분 경, 오후 일정으로 성모성월의 전례에 대한 묵상의 시간으로 성거산 성지 순례자의 길을 선택하고 엽돈재를 다시 넘었다.
성거산 성지개발의 시작은 1995년 천안 신부동 주임 신부로 부임하신 정지풍 신부님이 순교자 후손 신자에게 치명자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산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개설된 도로 덕분에 방치된 순교자의 무덤이 정비되었고 1998년 대전교구 성지로 공식 승인받게된 것이다. 정지풍 신부님은 특이한 이력을 지니셨는데 의과대학을 다니며 가정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던 장래가 촉망되던 의학도였으나 부모님의 바램을 저버리고 신학교에 재입학하여 사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카돌릭 아카데미 회원으로 화가와 사진작가로서의 일가견도 갖고 계신다. 이러한 이력의 배경이 오랜시간 동안 성지 전담 주임 사제로서 소임을 다하시다 은퇴하여 원로 사제의 길을 걷고 계신다. 천주교 신자가 아무도 없던 가정에 자신이 사제의 길을 선택하면서 전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명예롭게 말씀도 하시지만 조용하시면서도 다정다감한 인성을 지니고 계신 성직자이시다. 지금은 천안에서 머무시며 그림도 그리시고 사진도 찍고 정리하시며 게시다는 수소문끝에 저해 들었다. 수많은 야생화를 성지 곳곳에 키우시며 매년 야생화축제와 더불어 그림과 사진 전시회도 동시에 열으셨고 10월에는 국악 연주 공연도 개최하셨던 무명 순교자들의 삶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셨던 신부님으로 기억되시는 신분이시다. 해발 579m가 되는 국내 성지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거산 성지는 250 여종의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순교자의 얼을 꽃피우는 것처럼 사계절 순환하며 피는 곳이었다.
성지 제 1무덤에는 38기 무덤이 있는데 이 중에 신분이 밝혀진 다섯분( 순교자 배문호 베드로 24살, 고의진 요셉 25살, 최천영
베드로 55살, 최종여 라자로 42살 며느리 채씨등 )의 순교자 묻혀 있다는 사실만 확인될 뿐 어느것이 당사자의 무덤인지 알 수가 없다. 제 2 줄 무덤은 전체가 무명 순교자로서 36기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화초는 사람이 키우지만 야생화는 하느님께서 키워 주시는 것처럼 무명순교자들은 하느님께서 늘 영혼을 위로해 주신다는 사유로 약간의 제물을 준비하여 정성껏 순례하곤 하였던 곳이 바로 성거산 , 합덕 무명순교와 청양 다락골 줄 무덤이었다.
새 집도 달아 드리고 잡초도 제거하며 순례하던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참 무상하다.
순교자를 위한 기도를 드린 후 성지 전체를 순례하기 위하여 걸음을 옮겼다.
대형 사기 호롱등잔이 인상적인 순례자 의 길에는103위 순교자의 이름 새겨져 있으며 조향물에는 복음이 담겨 있어 기도를 하며 걷는 순레의 마음을 일순간 신앙적 피정의 시간에 몰입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순례자에게 기쁨을 준다.
시간이 갈수록 안개가 짙어져 갔다. 나뭇잎에 묻어 있던 이슬같은 물방울들이 미풍에도 스스럼 없이 내렸다. 그리고 미혹의 그림자가 소나무 사이를 물흐르듯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물기의 영향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붉은대 노란꽃 피나물꽃이 오히려 강건함을 잃지 않고 서 있었다. 많은 군락에서도 몇속 정도는 기운을 잃을법한데도 그런꽃은 보이지 않었다. 성지에 심어 놓은 피나물 꽃은 순교자를 의미하는 꽃이다. 망나니의 칼아래 쓰러져 선혈을 흘리며 쓰러졌다면 그것으로 천주의 믿음은 사라져야 되는데 오히려 참수를 당하며 흘리고 튄 피는 조선팔도 곳곳으로 천주의 믿음이 퍼져 나갔다. 순교를 상징하는 피나물 꽃도 매년 영역을 넓혀 나간다. 다른 종들의 야생화는 전혀 확장세가 없거나 미비하지만 유독 피나물 꽃만은 십자가처럼 깊고 넓게 퍼져나간다. 피나물 꽃과 안개빛과 상호보완되어 성지전체를 신비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금낭화(錦囊花) 금주머니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비단금주머니 ~~ 그만큼 순교자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하느님의 사랑을 꽃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정신부님의 감각이 돋보이는 정경이다. 그리고 조형물은 순교자들의 집합이 하느님의 가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형물이다. 그리고 조형물 받침석에는 다음과 같은 복음서가 각인되어 있다. 나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에페소 3장 8절, 순교 자처럼 충실한 복음의 일꾼이 더 있을까?
5월은 성모성월, 5월은 계절의 여왕, 계절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 절기인데 그 안에 아름답게 존재하시는 성모님의 성스러움은 365일 이어진다. 특히 환란의 시기인 2020년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시간들, 서로의 시간 나눔이 퇴색하고 혼자만의 시공을 선택해야 하는 아픔이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가슴아프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일상화 될 것이라 예견된다. 발생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고 전염속도도 전광화석처럼 바뀌고 그리고 바이러스가 얼마나 영악하게 진화하는지 모르겠다. 참 결단이 요구되는 환란이다. 국가와 국가간에 교역이나 여행과 인적교류가 없었다면 우한자체에서 발생하였다가 우한에 사그러들 일이었다. 문명의 꽃이라 부르는 대도시화가 전염에 맥없이 무력화 되는 것을 보고 수많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태계의 교란을 부르는 탐욕의 개발, 기후환경을 변화시키는 탐욕의 생활습관, 등 이러한 일들이 만든 재앙앞에 인간은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무제한적 소비의 탐욕을 버려야 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도 멈춰야 한다. 이러한 결단이 멈추지 않는 한 고통은 점점 배가되어 다가 올 것이다.
사기호롱불을 켜고 박해를 피해 깊은 산중에 교우촌을 만들고 호롱불 아래에 모여 앉아 순교자들이 드렸던 기도처럼 기도를 드렸다. 기도의 전문은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성모성월에 내려 주신 기도문 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드렸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나이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의 어머니, 전 세계가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는 이 비참한 상황에서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나이다.
동정 마리아님,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 아래 놓여 있는 저희를 자애로이 굽어보소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때로는 가슴이 미어지는 매장 방식에 상심하며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주소서. 앓고 있는 이들을 염려하면서도 확산 방지를 위해 가까이 있어 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워 주소서.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고, 경제와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걱정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소서.
천주의 성모님, 저희의 어머니, 저희를 위하여 자비로운 아버지 하느님께 빌어 주시어, 이 모진 시련이 끝나고 희망과 평화가 새롭게 동트게 하소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러하셨듯 거룩하신 당신 아드님께 청하시어, 환자와 희생자의 가족들이 성자께 위로를 받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이 긴급 상황의 최일선에서 다른 이들을 구하고자 목숨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의사와 간호사, 보건 종사자, 자원봉사자들을 보호하소서. 그들의 영웅적 노고에 함께하시고 그들에게 힘과 선의와 건강을 주소서.
밤낮으로 환자들을 돕는 사람들을 곁에서 돌보아 주시고, 복음에 충실히 따라 사목적 배려로 모든 이를 돕고 지원하는 사제들 곁에 함께해 주소서.
복되신 동정 성모님, 과학자들의 정신을 밝혀 주시어 그들이 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올바른 해결책을 찾게 하소서.
국가 지도자들을 도우시어, 그들이 지혜와 배려와 관용으로 생활필수품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을 지원하고, 혜안과 연대로 사회적 경제적 해결 방안을 수립하게 하소서.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님, 저희의 양심을 일깨워 주시어, 군비 증강과 확충에 사용된 막대한 자금이 방향을 바꾸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을 예방하는 적절한 연구 증진에 쓰일 수 있게 하소서.
사랑하는 어머니, 저희가 위대한 한 가정의 일원임을 깨닫고 저희를 하나 되게 하는 유대를 인식하여, 형제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수많은 가난하고 비참한 상황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확고한 믿음과 인내로운 봉사와 항구한 기도 안에 머물도록 저희에게 용기를 주소서.
근심하는 이들의 위안이신 마리아님, 곤경에 빠진 모든 당신 자녀를 보듬어 주시고 하느님께 간구해 주시어, 하느님의 전능하신 손길로 저희가 이 비참한 감염병 확산에서 해방되어 다시 일상의 평온한 삶을 되찾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구원과 희망의 표징으로 저희 길을 밝혀 주시니 당신께 저희를 맡기나이다.
아멘.
성모님 주변도 많이 변해 있었다. 야외 신자석도 늘었고 숲과 소나무 사이에 자연적으로 모셔져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바닥돌을 깔고 돌축대를 쌓아 단을 만들어 모셨다. 야생화 축제와 가을 음악회가 열렸던 곳인데, 요즈음도 행사가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행정이나 목적관리물 등은 관리자의 인성이나 견해에 따라 변화는 것처럼 성거산 성지도 이러한 변화가 느껴진다.
예로부터 박해를 피하여 깊은 산중이 삶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살아가던 교우촌, 각 가정마다 기도를 드리려 등잔불을 켜 놓은 그 모습이 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같다 하였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안성 미리내 성지다. 촛불을 들고 기도를 마친 후 조용히 내려 진열해 둔 후 성모님께 허리를 숙여 소원을 다시 한번 더 기도드리고 물러섰다. 자비의 모후이신 성모님이시여
지금의 바이러스 환란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교우촌에서 만들어 쓰던 다래넝쿨로 만든 고상, 앞으로 나가 참배를 올리고 오늘 순례 일정을 마감하고 산막으로 향하였다.
은방울 꽃, 작약 꽃, 여러종류의 붓꽃이 만개된 산막 그 안에서 잠시 머물며 하루 일정을 정리하였다. 케온 쑥과 산막에 자란 부추와 약간의 해물을 넣고 부침개를 만들어 신선한 유기농 산막표 쌈채와 함께 저녁으로 대신하였다.
이 어려운 시기에 순례와 걸음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은 성거산 성지에서 딱 두 사람뿐 이었다. 그것도 거리제한 충분한 거리에서다. 점심식탁에서도 10인용 식탁을 일행들만 사용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거리제한도 충분하였고... 막연한 두려움 보다는 지혜롭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철저하게 파악하여 철저한 예방책으로 삶의 가치를 구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PS - 대전교구에서는 2016년 9월 21일 천안 서북구 입장면 소재 성거산 성지 소학골에 병인박해 150주년 기념성전을 건립할 목적으로 기공식을 가졌다. 기념성당은 건축면적 287.05 M2, 연면적 487.98M2 으로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로 2017년 2월 완공 목표였다.
그러나 아직도 미완이다. 유주교님 옆에서 계신분이 당시 주임신부님으로 계셨던 정신부님이시다. 하루속히 정상화되어 순례 시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부여를 기원하면서 기도로서 청하려고 한다.유주교님은 보령에서 서짓골 까지 도보순례하여 도착한 날 뵙고 미사참례를 했었다. 당시 윤종관 신부님께서 초청해 주셨었다.
병인박해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신축중인 성전이다. 2016년 9월에 기공식을~~ 지금은 2020년 아직도 봉헌이 미완인 것으로 보아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많은 성지가 존재하는 충남내포지방을 관장하는 대전교구, 이토록 긴 시간을 드린 적은 없었는데... 미완의 이유가 궁금하지만 쓸 때 없는 생각이다. 곡절 또한 하느님의 의중이시기 때문이다. 성전의 진행을 바라보는 답답함을 바로 이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 보았다. 성전 옥상에 마련된 국법을 어긴 죄인이라하여 오랏줄에 묶여 잡혀와 옥에 갖힌 후 매일매일 불려나와 주리가 틀리며 배교를 강요당하는 고통때문이라도 배교하겠소 하련만 끝까지 버티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선조 신앙들의 끈기를 상상하며 찍어 본 사진이다. 그대로 이루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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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푸르른 오월~*
절기상 가장 아름다운 계절~**
대자연의 운치를. 마음껏 느끼며 자연과의 일치를 소중히 간직하고 감사함을
나눔해야할. 시기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묶어놓아~*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 마저드는 성지~**
성모성월 ~ 성모님께 예쁜 화관대신 알록달록 초 봉헌
하고 기도드릴수있는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삼박골 모녀 순교 묘역과
무명순교자 묘역~"
박식하신 리더님 의 강의를
들으며.....일행들 함께
기도로써. 순교자님들을
기억할수있는 소중한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계절의 여왕! 5월, 가정의 달 5월, 스승의 달 5월, 어떠한 말을 붙여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말이 되는 5월!
나홀로라는 의미와 통제가 주는 부자연스런 것들 전부 씻을 수 있었던 싱그러운 하루였습니다. 단 하루의 소풍이었지만 정말 소중했던 하루살이였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어서 앞으로 나간다는 사실은 참 소중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언젠가는 멈춰지는 날이 오겠지만,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과 행위로 지금을 만들어 나가는 삶의 피정 5월에도 행복했다고 고백합니다. 어서 오너라 6월아 하고 손짓을 벌써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