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 숨어있는 '희망'
무심한 시선으로 그린 도시의 모습
의자, 가방, 쇼핑백, 철모, 담배, 물통….
세상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물건. 인간 주변을 이루고 있는 구성물인 동시에 건조하고 황폐한 삶을 사는, 인격이 거세된 인간들의 모습이다. 예리하면서도 냉정한 관찰자적 시각에서 문명을 비판해온 이하석 시인은 이것에 주목했다. 최근 펴낸 여덟 번째 시집 '것들'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절망적 전망을 한다.
"바다는 우리의 것들을 밖으로 쓸어낸다/ 우리 있는 곳을 밖이라 할 수 없어서/ 생각들이 더 더러워진다 끊임없이/ 되치운다// 우리가 버린 것들을 바다 역시 싫다며 고스란히 꺼내놓는다/ 널브러진 생각들, 욕망의 추억들, 증오와 폭력들의 잔해가 바랜 채 하얗게 뒤집혀지거나/ 검은 모래 속에 빠진 채 엎어져 있다…우리 있는 곳을 밖이라 할 수 없어서/ 우리 생각들이 더 더러워진다 끊임없이/ 되치워야 한다."
시인에게 것들은 쓰레기이며 욕망의 찌꺼기이다. 시인은 이것을 쓰레기 하치장, 폐차장, 고물상에서 찾았다. "야적장 부근에 늘그막에 눌러앉은 노인은/ 기억의 부속품들 잘 챙겨지지 않는 몸으로/ 사람들의 꿈과 잔해들 뒤적여 고철로 팔아먹"('야적-노인')고 "쓰레기 하치장, 폐차장, 고물상 어디에서나/ 그는 악어 조각을 찾아다녔다/ 악어가 될 만하면 뭐든 사 모으고 주워 모았다"('악어')고 말한다.
이 속에서 시인은 현대 도시문명이 가져온 소외와 단절을 부각시킨다. 너무 빠른 속도에 휘감긴 도시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처럼 건조하고 황폐한 도시의 모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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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시집 '것들'을 펴낸 이하석 시인.
| | | 삶을 무심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증언한다.
이하석 시인이 그동안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두 가지 시적 특징, 자연과 문명의 관계에 극도의 비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문명을 비판하는 시선, 서정시인으로서는 희귀하게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시적 세계를 다시한 번 만날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용희씨는 "이하석의 시가 보여주는 일련의 냉정하고 서늘한 시선, 풍자적인 묘사가 담고 있는 일상의 견고한 어둠은 도시 삶의 정직한 묵시록적 기록"이라며 "이런 점에서 폐허의 거리에서, 잉여의 쓰레기와 과잉 속도 속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우리 삶의 뛰어나면서도 치열한 고백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학과 절망만 가득찬 것은 아니다. 문장 사이사이 숨어있는 희망의 언어들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표출한다.
"끊을 수 없는 사랑처럼 끈질기게/ 서로 연기 한 모금씩 피워서 나누어 가지길 기대하"(담배)고 있다. 이 때문에 '긴 나무 의자'에서 말하듯 "바람과 비에 바란 채/ 햇빛 속 하얗게/ 기다리고 있는 긴의자"는 "성실하게 앉아있"고 "때로 달빛이 물컵 엎지른 것처럼 쏟아져내려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인간과 관계한 사물을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절망적 전망, 나아가 삶에 대한 각성, 희망을 보여주고자 한다.
1971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 시인은 시집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고령을 그리다' 등을 펴냈다. 대구시문화상,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현재 영남일보 논설실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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