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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 치악산 상원사(雉岳山 上院寺)를 찾아서 ③
- 전각 둘러보기 1 -
방에서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마냥 있다가는 사진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밖으로 나 와 도량 내의 전각과 주변을 담고자 했습니다.
안개 걷힌 일주문 모습
안개가 걷혔다 해도 순식간에 또 자욱해지니 변화무쌍합니다. 안개가 걷힌 순간 종각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정파님과 일주문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다시 담아 본 삼존불
일주문에서 바라본 범종각
소나무가 있어 운치를 더해 줍니다.
대웅전과 범종각 모습
원주실 위로는 심검당(尋劍堂) 오른쪽은 대웅전입니다.
축대 밑의 밭
대웅전(大雄殿)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불기 2532년(1988) 경덕스님에 의해 재건되었습 니다. 안에는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여기에 주련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靑山疊疊彌陀窟(청산첩첩미타굴) 첩첩한 푸른 산은 아미타불 법당이요, 蒼海茫茫寂滅宮(창해망망적멸궁) 망망한 푸른 바다 부처님의 적멸보궁 物物拈來無罣碍(물물염래무가애) 물물은 오고 감에 걸릴 것이 없는데 幾間松亭鶴頭紅(기간송정학두홍) 솔밭의 학머리를 몇 번이나 보았는가!
대웅전편액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
중앙에 본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 (普賢菩薩)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보현보살은 행원(行願)을 상징 합니다.
신중탱화(神衆幀畵). 불기 3,015년(1988) 11월15일 봉안.
신중탱화화기(神衆幀畵畵記)
화기를 보면 『佛紀 三千十五年 戊辰 十一月 十五日 神衆幀畵點眼于雉岳山 上院寺 奉安 證明 宗正性徹和尙. 金魚 柳川 蓬萊. 供司 朴古敬. 住持 敬悳和尙』
이 화기를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불기 3,015년(1988) 무진년 11월 15일 신중탱화가 치악산 상원사에 점안하여 봉안되 다. 증명법사 종정성철화상. 금어 유천 봉래. 공사 박고경. 주지 경덕화상.』
여기서 불기가 3,015년으로 되어 있음을 봅니다. 서기로는 1988년입니다. 올해는 불기 2555년입니다. 이것을 환산해 보면 불기 2532년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우리나라 는 과거 불기를 전자와 같이 썼습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 지금의 불기를 쓰지 않고 북방의 불기를 써왔습니다. 그러니까 북방의 전통적인 불기는 기원전 1,027년 갑인년 4월 8일에 탄생하여 기원전 948년 임신년 2월15일에 열반하셨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불기를 썼습니다.
그 근거는 《전등록(傳燈錄)》에 있습니다. 전등록은 불교가 어떻게 법등(法燈)을 밝혀 왔 는지 알려 주는 중요한 책입니다. 이에 이르기를,
『보요경(普耀經)에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시니 땅에서 금련(金蓮)이 솟아 발을 받들자 동서남북으로 각각 칠보씩 걷고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아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시니 때는 주소왕(周 昭王) 24년 갑인(甲寅) 4월 8일이었다."』
이에 근거하여 북방불교에서는 불기 3000년설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1956년 제4차 세계 불교도대회가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 열렸는데 나라마다 불기가 달라 통일하기로 결의 하여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하였습니다. 불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상식방을 열 어 보세요.
두 아이가 부처님께 그릇에 흙을 담아 공양하는 모습
법당에 있는 벽화인데 담아 보았습니다. 두 아이가 흙을 가지고 소꿉장난을 하며 놀다가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자 공양을 올린다며 흙을 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아 부처님전에 공 양을 올렸는데 부처님은 이를 어여삐 여기시고 흔쾌히 받으시고 장차 훌륭한 사람으로 성 장할 것이라 예언하셨습니다. 두 아이는 그 공덕으로 한 아이는 왕이 되고 한 아이는 장 군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난타여인의 등공양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에 국왕으로부터 부호, 선남선녀들이 장엄한 등불을 달았는데, 이에 가난한 여인 난타도 등불을 달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머리를 잘라 겨우 동전 두 닢으 로 기름을 사서 등불을 정성스레 밝혔습니다. 새벽에 목련존자가 등을 거두기 위해 나가 보니 마침 세차게 불던 바람에 모두 꺼졌으나 오직 가난한 여인의 등불만 남아 빛나고 있 있었습니다. 그래서 끄려고 하였는데 꺼지지 않아 애쓰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이를 보시고 "그 등불은 너희 힘으로는 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매우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를 한 것이 기 때문이다." 그러시면서 부처님께서 이 연인에게 미래에 등광불(燈光佛)이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셨습니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 옆의 계곡
여기의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하는데 많이 녹아서 이와 같습니다.
안개 속의 산신각입니다.
산신각은 대웅전 뒷편 좌측에 높이 있습니다. 산신각이 독립적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여기에 주련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靈山昔日如來囑(영산석일여래촉) 그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받아 威振江山度衆生(위진강산도중생) 강산에 위엄 떨쳐 중생을 제도하고 萬里白雲靑嶂裏(만리백운청장리) 만리 뻗은 흰구름 푸른산 봉우리를 雲車鶴駕任閑情(운거학가임한정) 구름 수레 학을 타고 한가로이 지내시네.
산신각 편액. 구당(丘堂) 선생의 글씨
구당 여원구(丘堂 呂元九) 선생은 1932년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한 서예가이며 전각자로서 전국전각학회 명예회장이며 국새(國璽)를 전각했다고 합니다. 특히 사찰ㆍ고궁 등의 현판 을 많이 썼고,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 등을 쓰고 돌에 새긴 불심 깊은 세예ㆍ전각가입니 다.
칠성탱화. 불기 2539년(1995) 7월 7일 봉안. 금어(金魚) 봉래(蓬萊)화상.
산신탱화
화기가 가려져 있어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칠성탱화와 같은날 봉안되었을 것 같습니다. 산신 옆의 호랑이가 녹호(綠虎)로 특이합니다.
산신각에서 바라 본 모습
☞ 다음은 제 4부 전각 둘러보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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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치악산 상원사 잊지못할겄 같네요 올라갈때는 힘들었지만 고즈넉한 산사에있으니 아무생각도 업고 마냥살고 싶은마음 뿐이니 백우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_()_
모두 치악산 상원사에 오르더니 내려오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푸근하게 맞아 주신 스님과 환한 길상님이 계셔서 그럴 것입니다. 다시 가 보자고 하네요. 눈 덮인 산길을 걷고 싶다고... _()_
상원사 전각과 담긴 뜻 잘 봤습니다. '솔밭의 학머리를 몇 번이나 보았는가'... 백번을 보았다고 답한 자 몇이나 될까요 _()_
철새인 학
감사합니다. 저 대웅전 주련과 산신각 주련은 나중에 주련의 향기에 다시 올려 볼 예정입니다. 저 학두홍을 제대로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_()_
계곡물도 꽁꽁 얼었는데 텃밭에 남은 채소(배추 같아 보입니다만)는 괜찮을까 몰라요 길상님이 계신 곳이라 그런지 정감이 가는 절입니다. _()_
상원사에 사는 배추는 강인한 체력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운무가 변화무쌍해서 신비감을 더해 줍니다. 방안에 그림 하나가 방을 밝혀 주고 화분의 한송이가 방을 향기롭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_()_
오시는 등산객 1박하시는 모든 분들이 아좋다 배추는 얼지않았는데 지금은 눈속에 꼭꼭 숨어서
백우님 사진 설명까지 수고 하셨습니다._()_
그런데 왜 배추를 다 뽑지 않으셨나요 산에는 늘 영하의 날씨일 텐데.... 역시 상원사 배추는 체력이 강한가요 _()_
상원사 배추 모두 뽑아서 소금에 절여 두었다가, 소금기 살짝 빼고 부침개 만들어 먹으면 아주 맛있을것 같습니다. 비니초 생각_()_
배추가 가련하게 있으니 마음들이 배추에 가는군요. _()_
벌써얼음이저렇게 얼었나요
평지와 산의 차이지요. 진작부터 눈도 오고 얼음도 얼고...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