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가 가장 후졌다고 한다. 이는 "다른 분야에 비해 발전이 된 것은 없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듯 하다. 그래서 최근에 인구에 회자되어 국민들에게 공감되는 말이 ‘정치개혁’이다. ‘정치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리라고 보며 그래서인지 지금 국회 내에는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행태를 보면 '정치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당이나 제도의 개선으로 정치관계법을 떠올리며 또 이것만이 정치개혁의 전부인양 한다.
<b>정치개혁은 정치인개혁이 우선되어야</b>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개혁'이라고 하면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아무리 제도나 정치관계법을 개선하고 개정하여 보았자 지키려고 하는 의지가 없으면 말짱 '꽝'이다.
즉 '정치개혁'의 우선 대상은 '정치인'으로 '정치인의 개혁'만이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치인을 개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검증된 정치인을 국민들이 선택하여야 한다. 검증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많은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인터넷상에 자료를 올려 정치인을 검증하여 나가는 것이 첩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언론들이 행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과거나 가족들의 행적을 알게하는 것에 필자는 찬동한다.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를 '마녀사냥'으로 몰아 부치거나 또는 '일부의 사주를 받아서"라고 보는 인식은 극히 편협 된 사고방식이다.
해서 필자는 현재 정치개혁특위에서 활발한 활동을하고 있는 유시민의원의 '서울대 프락치사건'을 유 의원이 저술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책 제목에 빗대어 '거꾸로 보는 서울대 프락치사건'으로 해서 재조명 해보기로 한다.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b>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b>
프락치(fraktsiya)라 하면 넓게는 밀정, 첩자와 같은 뜻으로 쓰이며,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체나 분야에 들어가서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 근대역사에서 인구에 회자되어 널리 알려져 있는 프락치사건이 두건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1949년 의 ‘국회 프락치 사건’은 당시 국회 부의장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15명이 남로당의 지령을 받으며 의정 활동을 한 사건이고
다음이 1984년 일어난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당시 서울대 학생회장을 비롯하여 유시민 등이 서울대 캠퍼스에 들어온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 폭행한 사건이다.
왜 새삼스레 프락치사건을 되새김하는가?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이 당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일제강점기 36년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를 무산시키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고, '역사바로세우기'를 하여 친일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여당인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취임일성으로 박정희 대통령 군내 프락치론을 주장하고 나와 혹여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도 당시 정권이 학생회활동을 저지시키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어림도 없는 주장으로 당시 가해자였던 유시민 등을 민주투쟁열사로 둔갑시키지 않을까 우려해서이다.
1984년 서울대 프락치사건은 유시민이 1984년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의장으로서, 당시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들어온 민간인을 여럿이서 감금 폭행한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유시민은 1980년 ‘서울의 봄’ 때에 서울역 집회를 주도하여 계엄포고령 및 집시법 위반혐의로 구속·제적되었고 강제징집에 의한 군 생활을 거쳐 1984년 복학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두 번째로 구속·제적되었다. 당시 유시민 등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작성한 것이 바로 "유빠"들이 유명하다고 하는 ‘항소이유서’로 “이 시대 분노와 노여움이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할 수 없다”는 내용을 들어 유의원이 엄청난 민주화운동을 한 듯이 떠받들고 있다.
그러나 1985년 5월 27일 서울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에게 보낸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보면 요지에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고 하였고 내용에서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고 하여 스스로 무고한 민간인을 감금 폭행한 것에 대하여 죄가 있음을 시인하였다.
당시 유의원 본인 스스로도 "정권과 학원 간의 상호적대 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 명의 가짜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b>사실은 사실일 뿐</b>
결국 '서울대 프락치 사건'은 1984년 민간인을 정보기관의 ‘프락치’로 오인하여 폭행을 한 민간인 단순 폭행사건으로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며 1985년 서울지법 본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돼 복역한 것이다
지금도 1984년 정보기관의 ‘프락치’로 오인 받아 폭행당한 전모씨(48·구청 공무원)는 “유 의원이 사건을 왜곡 표현해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민·형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프락치’가 아닌 순수한 민간인 신분으로 억울하게 폭행당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유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식으로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유시민의원의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대한 견해를 볼라치면 유시민의 홈페이지(www.usimin.net)에 있는 '유시민 노트'에서 유시민 스스로가 자신과 주위에 대하여 소개를 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저는 살면서 조금은 다채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유신과 5공화국 시절 포악한 권력에 대들다가 감옥에도 두 번 가 보았습니다." 는 내용이다.
모르는 국민들이 이글을 보면 상기의 글에서 나타난 스스로의 고백에 포악한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감옥에 두 번씩이나 간 것처럼 하고 자신을 대단한 민주인사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한번은 폭력을 행사하여 감옥에 간 것이다. 무고하게 폭행당한 전씨가 인격권애 대하여 항의 할만하다.
무릇 정치인은 타인이나 제도, 법의 개선 또는 개정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감싸고 미화시키고자 하는 자신 마음속의 유혹을 극복하고 국민과 유권자들에게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 다가와야 진정한 정치인이라고 본다.
진정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변화와 개혁'을 이루려 한다면 '개혁'의 선도자를 자처하는 유시민 등 정치인부터 스스로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지, 말장난, 글장난으로 소수던 다수던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가 있어서는 개혁은 물 건너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