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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서 말씀과 함께 하는 기도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 하는 기도는 이교도인들이 하는 기도와 같은 것인지요. 그렇지 않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지요. 기독교와 이종교가 신앙이 다른데, 각각의 신앙으로 구함에 있는 기도는 같은 것이겠습니까?
기도(祈禱)는 사전적인 뜻이 신에게 원하는 바를 고하고 그 일이 성취되기를 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뜻에서 보듯이 기도는 ‘구한다’는 것인데, 무엇을 구하는 것인가 하면 원하는 바를 구하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 그 원하는 것 – 세계의 평화, 남북통일, 병 고침을 비롯한 건강, 사업 성공, 가족의 안녕과 화목 등 - 을 신에게 고하고서 그 고하는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기도이며, 또한 이교도인들이 가져나가는 기도입니다.
기독교에서의 기도는 그러한 기도에 있는 것이 아닌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에서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해 나가실 뜻하신 정한 일에 믿음이 있게 하신 바에 의해 그 믿음에 있는 것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의존하며 순종에 있는 것에서 있게 될 일을 구함에 있는 것인데, 그 구함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제자들에게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것으로 기도하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이방인의 기도를 들어서 그러한 기도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떤 기도에 있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제자들이 있어야 할 기도, 제자들이 해야 할 기도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에, 기도에 있기 위해서 알아야 할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것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내용을 이어주는 연결어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은 앞서 말씀하셨던 외식하는 자인 바리새인의 기도와 같이, 그리고 중언부언하는 이방인의 기도와 같이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이제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기도를 좇아서 그 기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해 주시는 것에서 알려주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말씀은 이제 그들이 해야 할 기도로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할 것인지를, 그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따라서 오늘날의 우리 또한 우리가 해야 할 기도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그 기도에 예수님의 제자가 있어야 했으며, 우리 또한 있어야 기도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며 가르치신 기도는 ‘주기도문’으로 불립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기록된 문장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는 것은 기도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셔서 그 기도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도의 정신은 기도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기에 마음과 생각을 두고 받들어 섬김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에서 알려 주신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고 여기에서 나오는 생각을 가져나가며 이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에 있음을 기도로 가져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의 정신에 있다는 것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고 잘 생각하여 그 뜻하신 바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이것을 여기에서 말씀해 주신 내용을 통해서 원리적으로 잘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인 이 ‘주기도문’을 잘 배움으로써 제자들이 해 왔고,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기도가 무엇인지, 어떤 기도에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먼저 우리를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기도에 있을 수 있게 하신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기도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에서 제자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무리로부터 따로 불러낸 제자에 한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들이 누구이기에 이들만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기도에 있을 수 있는 것인지요.
예수님이 제자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13)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의 내용과 그 의미를 보다 올바르게, 곧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주기도문의 원문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과 그 의미에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번역 성경인 한글성경<개역 또는 개역개정>으로는 어떤 경우에서는 그 정확성을 간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에 성경 원문에 의해서 주기도문을 풀어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인 하나님의 아들들 속에 계신 -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여 거룩하게 되어지며,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다스림)가 우리를 다스리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하나 된 것같이 땅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하늘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 –그리스도 - 을 주옵시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빚(죄)을 탕감 받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빚진 자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는 것으로 증명됨을 알게 하시고,
우리가 인간적인 것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첫 시작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입니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NIV, KJV에 의한 영문으로는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라고 되어 있어 ‘하늘’을 뜻하는 단어인 ‘heaven’이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의 원문에서 ‘하늘’에 쓰인 단어는 복수형이 사용되었습니다. 해서 영어로는 ‘ heaven(s)’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들’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관사가 붙어 있으며, 이것의 앞에는 ‘~안에’(in)를 뜻하는 전치사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에’는 “(그) 하늘들 안에”를 의미합니다.
주기도문에서 이렇게 ‘하늘(들 안)에’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에서 일까요?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 ’하늘(heaven)을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 곧 ’창공‘, ’공중‘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는 단순히 ’하늘(sky)‘ 개념에서가 아닌 ’권능‘과 ’영광‘의 나라, 곧 하나님이 계시는 곳(나라)의 개념에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쓰이고 있는 성경 원문에서의 ’하늘‘은 앞에서 본 바대로 복수형 ’하늘들‘이며, 이것은 공간적, 장소적 의미에서의 ‘하늘’(heaven)에 한정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갖고 있는 하늘에 대한 관점인 (1)푸르디 푸르고 맑은 하늘과 (2)그 위의 하늘의 개념인 우주의 공간으로서의 하늘, (3)그리고 그 위의 가장 높은 곳의 세계로서의 하늘인 하나님이 계신 하늘(하나님의 나라)이라고 하는 여러 하늘을 뜻하는 것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학자들이 가져온 견해는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제자들이 대하는 하나님은 공간적으로 하늘에 계신 분을 대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차원이 다른 초월적이며 존엄하신 지극히 높으신 분을 대함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처럼 하나님을 대할 수 있음은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그들의 주가 되심으로 그들을 ‘그 아들’과 함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아 주신 까닭입니다. 해서,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에게 거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아들’과 함께 ‘(하늘의/하나님의)아들들’에게 거하십니다. 이러한 것에서 주기도문에서 ‘하늘’이 복수로 말해지고 있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구함에 있게 하신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은 초월성과 존엄성을 지니신 분이심을 의도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분이신가 할 때‘그 아들 안에 계신 분’이시며 또한 ‘그 아들’과 함께 하는‘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 안에 계신 분’의 개념에서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인‘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안에 계신 하나님’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요,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며 믿는 자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 구함에 있게 하신 기도의 원리를 따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안에 계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 있는, 그래서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하나님의 아들들인 모든 믿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아버지께서 어디에 계시는가? 하는 사실을 다루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의 시작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하늘들 안에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말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설명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를 가르치실 때는 그들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가르치십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그래서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자만 하늘들 곧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입니다. 그 하늘들 안에 그들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육체인 사람으로서는 하늘들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할 자격도 없고,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기도는 받지도 않으십니다. 주기도문의 첫 말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자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밝히면서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께서 어떤 자들의 기도를 받으시는지를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 있는 자는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주기도문에서 가장 앞에 나오는 서두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아무나 주기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인 ‘주기도’에 있으며, 따라서 그들만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 따른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인 ‘주기도’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으므로 그분과 함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무리인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 - 만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하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기도‘에 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 보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에 있어 나갈 것을 알고, 그 성취를 위해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 믿음을 가지니 죄 용서의 구원을 베푸시고 세상 끝 날까지 시험과 악으로부터 지켜 보호하시는 은혜에 두실 것을 깊이 신뢰하고 따름에 있는 기도에 있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기도에 있게 하신 구함이 그대로 이루어짐에 있으니 그것이 주님이 구하게 하신 기도의 응답입니다. 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너희는 그들과 같이 기도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는 내가 가르친 기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해 주신대로 헛된 엉뚱한 기도에 있어나갈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 우리가 구하는 기도가 있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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