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會1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전날부터 하늘을 가리던 구름은, 기어이 이날에 큼직한 함박눈을 쏟고 있었다. 함박눈은 바람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맡기어 바람이 가는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고구려 진영과 백제 진영에도 같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아침에, 그 함박눈으로 온통 하얗게 변한 그곳에 서서 관미성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긴 칼을 옆에 차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관미성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내가 바라보는 관미성은 수많은 깃발들이 꽂혀 있었고 그 깃발들은 세찬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관미성의 그 수많은 깃발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활동력 있고 힘 있게 펄럭이고 있었다. 관미성 성벽 위는 많은 군사들이 북적대고 있었고 추위를 이기기 위해 놓은 화로에서 나오는 연기로 회색 색깔이 짙었다. 그 연기는 깃발들처럼 세찬 바람에 마치 지렁이가 꿈틀대듯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관미성이 있는 관미령의 절벽 아래는 얼음을 머금은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물들은 절벽을 때리며 하얀 거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절벽에 부딪혔다 다시 돌아온 물들은 빈 쌀알처럼 물 위를 맴돌다가 서서히 없어지곤 하였다.
관미성 주위에는 크고 작은 전함들이 움직이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전함의 크기가 크던 작던 노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안에 대규모의 인원이 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미성 주위의 전함들은 관미성 본성의 명령을 받고 언제 나타나 공격할지 모르는 고구려 군으로 인해 그 경계가 더욱 심화되어 있었다.
관미성에 고정되어 있던 사내의 눈은 자신의 시야에 키가 크고 얼굴이 검으며, 머리칼이 긴 한 장수가 들어오자 그 장수가 들어오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 장수는 사내에게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폐하, 장수들이 다 모여 폐하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광개토태왕은 잠시 교도의 눈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말하였다.
“갑시다.”
진사왕의 이상한 광기를 접한 사자가 돌아오자 관미성은 이상한 기운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진사왕이 실성한 듯 웃은 얘기, 맹부를 알고 있다는 얘기, 말을 한 필 내렸다는 얘기 등은 관미성의 장수들의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자가 왕을 알현하고 나올 때 궁 안으로 들어가던 한 여인의 존재도 장수들의 의구심을 더욱 키워주었다.
고구려 군에 맞서기 위해 관미성에서는 대책 회의가 자주 열렸는데 그 사자가 돌아온 이후 대책 회의는 고구려 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자리가 아니라 진사왕의 광기를 논하는 자리로 변질되어버렸다. 대책 회의만 했다 하면 온통 웅성거리는 소리로 사위는 시끄러웠고 쓸데없는 소리로 시간은 낭비되고 있었다.
관미성의 성주 맹부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관미성을 이끌어야 할 지 여러 모로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 진사왕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맹부가 힘을 내어 먼저 손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사왕은 그 손을 뿌리치고 뿌리치다 못해 그 손에 검은 똥을 부어버렸다. 그리고 왕의 광기 어린 행동과 한 여인의 등장은 맹부의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였다.
맹부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다가 밖에 큰 소리를 내질렀다.
“모든 장수들을 이곳으로 부르라!”
고구려 군의 장수들은 막사에 모여서 차근차근 관미성을 칠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다. 그곳에는 노련미를 겸비한 지혜의 장수 여노, 뛰어난 수군 운영으로 ‘물귀신’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조양, 차가운 얼굴로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황룡군수 장숙구, 서역인의 후예로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고 있는 교도 등 천하의 중심 고구려에서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자, 모든 장수들은 눈앞의 하얀 멧돼지를 유난히 빛나는 맥적으로 만들 방도를 찾아보셨소?”
태왕이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는 옥좌 위에서 여유 있는 자세로 말했다. 태왕의 그 말에 장수들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태왕도 그런 장수들의 미소를 보며 입가를 살짝 들어 올려 보았다.
“…교도 대모달은 회의(會議)를 시작하라.”
“예, 폐하.”
태왕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교도가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막사의 한쪽에 있던 기다란 지도를 펼쳤다. 그 지도는 관미성과 그 일대의 지도였다. 그 지도를 보는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태왕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관미성은 백잔에 있어서 도읍 다음으로 중요한 성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관미성에는 백잔의 사나운 수군이 대부분 밀집되어 있고 또 그 위치가 백잔의 도읍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이옵니다.”
교도는 관미성에 대한 기초 부분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 막대를 들어 지도를 짚으며 다음 말을 시작했다.
“관미성은 관미령이란 사면이 바다와 절벽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섬의 고개 위에 위치하여 있사옵니다. 관미령은 말 그대로 빗장의 고개라는 뜻으로 접근하기조차 힘이 드옵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썰물 때에는 관미령이 육지와 연결되는데 그 연결되는 토양이 단단해 갯벌이라는 것이옵니다. 따라서 썰물 때에는 육군의 접근이 가능하옵니다.”
막사는 침묵만이 존재한 듯 보였다. 침을 조용히 삼켜도 다른 이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교도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밀물 때에는 육군의 접근이 불가능하므로 수군으로 접근하여 공격하는 것이 필요하옵니다. 그런데 관미성에 주둔해 있는 백잔의 수군은 상대하기 쉽지는 않사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수군 대장 조양 대모달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옵니다.”
교도는 그 말을 하며 조양의 눈과 자신의 눈을 마주쳤다. 조양은 그 행동의 의미를 알고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관미성 점령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수군과 육군의 절묘한 합공이옵니다. 수군과 육군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잘못 되었을 시에는 관미성 점령은 거의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옵니다. 그리고 이 전투는 장기전이 될 것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최소 20일을 잡으셨사옵니다. 따라서 충분한 군량이 있어야 할 것이옵니다. 이상이옵니다.”
말을 마치고 교도는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다음은 조양 대모달이 수군의 공격 계획에 대해 말하라.”
“예, 폐하.”
태왕의 말에 조양 역시 고개를 숙였다가 교도가 서 있던 자리로 나왔다. 그가 지도 한 장을 넘기자 새로운 지도가 나왔다.
“지금 수군은 패수 하구에 정박해 있사옵니다. 관미령과 멀리 떨어진 패수에 수군을 정박시킨 이유는 관미성 수군의 시야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함이옵니다.”
조양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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